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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빌 언덕 Nov 12. 2018

교훈은 이제 그만

상담실 이야기

내 내담자중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서 교훈 찾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성장에 대한 욕구가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경험한 일을 나와 나누면서 늘 그 속에서 자신의 실수와 미숙한 점을 찾고자 했고, 내게 힌트라도 얻어 고칠 점을 발견하면 아주 신나했다.


"선생님 덕분에 오늘도 중요한 걸 깨닫고 가네요"

그는 이런 멘트를 자주 했다.


처음에는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고, 또 더욱 자꾸 성장해 나가고자 하는 그 사람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그는 상담자에게는 쉽고 착하고 성실한 내담자였다.


그런데 그와 만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나는 왠지 피로감과 지루함을 느꼈다. 내가 상담자인지, 선생님인지 헷깔렸다.


어느 날은 그 지루함을 도무지 참지못해 그에게 말했다.


"우리가 만나는 이 시간이 00씨는 재미있어요? 난 뭔가 좀 답답하게 느껴지네요?"


"선생님, 사실 저도 좀 뭔가 힘이 드는 느낌이예요"


항상 긍정적이기만한 내담자의 입에서 뜻밖에 처음으로 부정적인 말이 나왔다. 나는 너무 반가웠다.


"00씨 이야기는 교훈이 너무 많아요. 농담이나 흉보는 거나 아니면 잡담이나 그런 건 왜 없을까요?"


"상담 시간에 그런 걸 하면 예의도 아니고, 상담비용도 아까운 것 같고 해서요......"


그의 말을 들으니 조금 이해가 되었다. 어릴 때 그의 부모님은 그를 고생스럽게 키웠고, 그도 그 부모님을 늘 의식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인생에 있어 시간이든 돈이든 에너지든 뭐든 허투로 쓸 수가 없었다.


방향을 틀어 우리는 그가 한 주간 배운 새로운 교훈이 아니라 그의 교훈찾기 집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꼬리는 시간을 거슬러 부모님에 대한 감정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무거운 부채의식이었다.


그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 마음이 훨씬 편했고, 그러면서도 흥미진진했다.


거기에는 옳고 그름이나 정답이 없었고, 교훈보다는 그냥 나는 이렇게 살아왔어요하는 진솔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었다.


"00씨,  우리 대화가 왜이렇게 재미가 없었나 했더니 그동안 내가 00씨 부모님과 대화를 하고 있었네요~ 다음부터는 상담올 때 부모님은 그만 데려오세요ㅎㅎ"


내 유쾌한 톤의 농담을 그는 잘 헤아리고 이해했다.


"00씨가 부족한 점을 조금씩 고쳐나가는 모습도 멋있지만, 00씨는 그냥 봐도 멋져요.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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