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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빌 언덕 Dec 20. 2018

상담자는 누구인가

상담실 이야기

상담자는 누구인가?


상담자는 의외로 공감을 남발하지 않는다. 내담자는 힘든 이야기를 잔뜩 털어놓고 나서는 상담자가 격한 공감을 해주기를 기대했지만 상담자는 의외로 멀뚱멀뚱 쳐다보면서 "근데 공감이 잘 안되네요"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내담자가 기대도 안 하면서 털어놓은 이야기를 초집중해서 듣고 있다가 눈물을 뚝 뚝 흘리기도 한다. 내담자는 처음에는 그런 상담자가 일관성 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상담이 진행될수록 그게 상담자 나름의 의미 있는 어떤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상담자의 남발된 공감은 내담자의 잘못된 신념을 오히려 강화시킬 수 있고, 내담자가 정말 중요하게 돌아봐야 할 감정을 상담자의 감정 반응으로 가로막을 수 있다. 무엇보다 내담자가 진심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으면 공감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


상담자는 때로 쇳덩이같다. 내담자가 정제되지 않은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상담자를 향해 쏟아 놓을지라도 상담자는 의외로 담담하다. 마치 펀치백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담자의 미숙한 공격을 다 받아내면서도 그 시간을, 혹은 더 오랜 기간을 그 자리에 버텨줄 수 있다. 그러나 상담자는 내담자가 아무렇게나 상처 주어도 되는 사람은 아니다. 상담자는 자신이 상처를 받거나 부당한 비난을 받을 때는 어느 누구보다도 그것을 민감하게 알아채고, 또 그것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반응한다. 다만 반응이 곧 내담자에 대한 반격이나 비난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내담자와 내담자의 말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상담자의 예민하면서도 절제된 반응으로 인해 내담자는 오히려 자기가 타인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있는지 점점 더 분명하게 알게 된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애정과 관심이 많다. 상담이 끝나고 내담자가 상담실을 나가면 상담자는 남지만 그의 시선과 마음은 내담자를 뒤따라 함께 간다. 그가 자기 집에 들어와 방에서 문을 닫고 한 숨을 내쉬거나 혹은 엎드려 울지는 않을지 마음이 쓰인다. 혹은 그가 용기를 내어 변화를 연습할 때, 어려움에 맞서 전과 다른 노력을 해볼 때에도 옆에 있다. 그러나 상담자는 그가 내담자의 곁에 영원히 머물기를 희망하지 않는다. 상담자는 상담의 한계와 상담자의 한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담자는 팩트 폭행을 잘한다. 상담의 중요한 변곡점에 이르면 내담자로 하여금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다만 상담자는 상담자의 입을 통해 진실을 말하지는 않는다. 상담자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진실은 조언이나 훈계, 지적과 비난이 되기 쉽다. 상담자는 질문을 던지고, 진실은 내담자의 입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야 고백이 되고, 다짐이 될 수 있다. 다만 내담자가 진실을 마주하기를 두려워하여 꼼수를 부리거나 비겁한 변명을 하거나 엉뚱한 길로 도망가려 할 때 상담자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내담자를 강하게 붙잡는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방어기제를 잘 알기 때문에 내담자의 어설픈 속임수나 꼼수에 속지 않는다. 설령 내담자가 말로 진실을 다 인정해도, 그것이 내담자의 감정과 일치하는 진심이 아니라면 상담자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내담자는 상담자가 어떤 존재인지 천천히 알아간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만 친구가 해주는 공감과는 다르고, 나를 좋은 길로 이끄는 듯 하지만 선생님이 이끌어 주는 것과는 또 다르다. 나에 대한 애정은 흡사 부모님처럼 깊은 듯 하지만 분명한 선을 긋고 내 인생에 함부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그냥 '상담자'는 상담자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담은 분명 언젠가는 끝나고, 상담 관계도 반드시 종결을 맞는다. 상담실에서 아무리 울고 웃고 많은 것을 나누어도 그 관계는 상담실에서만 이루어진다. 많은 내담자들은 '상담자'라는 존재를 경험했다는 것을 특별한 감정으로 간직한다. 그리고 성숙해 나가는 많은 내담자들은 자기가 자신의 건강한 상담자 되기를 연습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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