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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Oct 11. 2022

하나의 인연이 끊어졌다.

모임의 해체, 회비가 돌아왔다.

 내 글에 심심찮게 등장하던 친구에게 손절을 당했다. 이래저래 생각해봐도  손절이라는 단어밖에는 적합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좁은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이라 남아있는 사람들이 적은데 그중 한 달에 한 번은 꼬박 모임을 갖던 사이니 내 절친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 친구에게 손절을 당했다.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지친 것도 있을 테고 서운한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왔겠지만 이렇게 손절이란 걸 당하고 보니 어째 너무 씁쓸하다. 매일 카톡으로 연락하고 서로의 일정을 반드시 공유하길 바라는 상대방의 노골적인 요청에 피곤하기도 했지만, 분명 좋은 날도 많았다.

 실업자가 되었을 때 사주었던 따뜻한 끼니, 생색내며 던져 주던 커피 쿠폰 같은 것들.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기억만 남는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한때 징글징글하던 인연이 아름답게 기억이 된다.


딱 1년 전, 그러니까 회사가 망하고 백수로 접어든 시기였다.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절망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우는 소리를 많이 했던  것 같다.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그들은 나의 마음을 모를 것이라며 질투도 했겠지.

 매달 나가야 하는 돈에 전전긍긍하면서 함께 모으던 회비를 돌려달라 했지만, 친구들은 일부만 정산해주면서 인연의 끈을 잡자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날이 선 상태로 전화통화를 하다 다투게 되었고  그날 그 친구의 말 한마디에 내 안에 인연의 끈이 끊어졌다.

 그 후로 두어 번의 형식적인 연락은 있었으나 이전처럼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고 우리 사이의 차가운 공기는 채팅창에서도 느껴졌다.


 괴롭던 날들을 지나 퇴직금도 어느 정도 처리가 되고 새로운 직장에 출근도 하게 되었지만 나는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치기 어린 자존심이었을 수도 있지만 나의 생활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단체방에서 명절 인사, 생일 축하인사 등이 형식적으로 오가던 사이. 그렇게 정산해 달라고 할 때는 꿈적도 안 하던 친구가 1년 만에 남은 회비를 말도 없이 정산해서 보냈다. 그리고 말없이 단체방 탈퇴.

 왜 나갔냐는 물음에 한참있다 돌아온 대답은 1년 동안 연락도 없는데 모임이 무슨 의미냐는 말이었다. 연락이 뜸했던 그 1년 동안 그녀는 이별을 준비했던 거다. 본인이 상처받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 일방적으로 관계를 정리하고 끝. 마지막까지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행동이 딱 그녀 같았다.


 내가 더 붙잡는다면,

조금 더 유지해 보자 한다면 이어질 수 있겠다 싶었지만,  어쩐지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매일 연락해야 하는 의미 아닌 의미에서 벗어난 것도 홀가분했고 나는 알지도 못하는 그녀의  회사 이야기를 더 이상 안 듣는 것도 좋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은연중에 나의 자존감을 갈아먹는 말들을 내뱉던 그녀들이 1년 동안 내 삶에서 지워지고 나니 조금 더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나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남은 회비를 돌려받고 나자 아주 홀가분해졌다.

묶여있던 돈이 돌아와서인지, 이제 정말 관계의 끝이라서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분명한 건 나의 기운이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1년 전 그날, 내가 먼저 관계의 종말을 시작했던 것도 같다. 그동안 마음 한편이 항상 무거웠는데 이 관계의 끝임을 인지한 지금은 아주 홀가분하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으니 언젠가는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는 인연들이겠지만, 내가 조금 더 단단하고 너그러워질 때까지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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