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숨을 쉬며 살아가듯 모두가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으며 킬링 타임(killing time)을 소비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를 넘어 삶의 일부로 고착된 듯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스멀스멀 이러저러한 정보들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굳이 접하지 않아도 되는 스팸의 홍수가 몰려오기도 하지만, 적당하면서도 철저히 준비하여 살모사 같은 스팸의 공격을 잘 걸러내어보면 괜찮은 정보들을 많이 건질 수 있다. 정보가 과다하다 못해 넘치고 넘치는 요즘이지만 그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며 나에게 꼭 맞는 정보를 찾아내기란 더욱 어렵고도 지지부진하기 일쑤이다.
그런데 가끔씩 이벤트에 참여하라고 권유하는 정보와 맞딱드리게 된다. 버라이어티 하면서도 하비 유니버셜 한 나의 취미 중 <이벤트 응모하기>가 분명 생명체처럼 팔딱거리며 존재하기에 그냥 무심코 지나치지는 않는다. 그 중에 그대를 만나듯 나 역시 수많은 이벤트 중에 나한테 딱 어울리고도 나를 위한 이벤트를 쉬이 건너뛰지 못한다.
신기하게도 로또 당첨은 5,000원 두 번이 전부였다. 그 5,000원이라는 애매하기 짝이 없는, 기쁜 것도 아니요 안 기쁜 것도 아닌 당첨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수십 만원은 쓴 듯하다. 로또 구입을 자주하는 편은 아니지만 우연히 로또 1등 명당을 지나칠 때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의 심정이 되는 것을 굳이 마다하지는 않으리라.
그런데 신기하게 이벤트 응모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만 같은 당첨신은 나에게 자주 손짓을 내민다. 최근만 해도 삼성 갤럭시노트 울트라 최신형 폰에 당첨되었다. 예전에는 아이패드도 당첨되고, 명품 신발도 당첨되고, 가방도 되고, 방송 프로그램에 응모하면 신기하게도 두 번에 한 번은 당첨되는 이벤트 당첨의 미다스 손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기 그지없고, 주위에서도 "진짜 이렇게 1등 당첨되는 사람이 있네요"라며 찬사의 언어를 마구 쏟아낸 적이 숱하게 있었다.
이번에는 힐링과 관련된 이벤트에 관심이 갔던 것은 사실이다. 7냥이 대환장 파티에서 잠시 벗어나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에서 쉬고 싶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요하게 글을 쓰고 싶었다. 왠지 잭 케루악도 글을 쓰고자 나만의 장소를 찾았을 것만 같고, 버지나아 울프는 아예 혼자만의 방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무라카미 하루키뿐만 아니라 조앤 롤링 또한 나만의 장소에서 차분하고도 사색으로 가득한 마음가짐을 다듬고 다듬으며 글을 쓰지 않았을까. 그런데 덥석 평소에 크게 관심을 두고 있던 <남의집 홈오피스> 이벤트에 당첨되어 3월의 마지막 주 평일 어느 날, 벚꽃이 반발한 서촌가를 거닐며 호모부커스라는 곳을 찾아들었다.
사실 경복궁을 정가운데 두고 오른쪽, 왼쪽, 앞쪽, 뒤쪽 다 헤집고 다니며 북촌도 가고, 삼청동도 가고, 광화문 앞길도 나빌레라 하며 걷고, 효자동도 이발소 찾느라 구석구석 뒤지고 다녔는데 왜 이리도 서촌은 낯설기만 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고즈넉하고도 슴슴한 기운이 들어 나와는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그리 길지 않은 벚꽃길을 몇 번이나 왕복으로 왔다갔다하며 새파란 하늘까지 마음껏 감상했는지......
평일에 쉬는 사람들은 이런 영화로운 혜택을 누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느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스마트폰이 내가 가야 할 길을 어찌나 정확하게도 잘 알려주는지 굳이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 눈만 잘 따라가면 된다. 입구가 넓었던 골목은 차츰 폭을 좁혀가기 시작한다. 꼭짓점이 있다는 듯이 점점 좁혀갔지만 스마트폰은 다시 옆길로 빠지라며 바짓가랑이 당기듯 더 좁은 골목으로 이끈다. 그 끝에 호모부커스라는 곳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옥의 기운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고, 평소 도시에서의 들뜬 기운을 걷어내고 은은한 기운을 받아들고 싶었다. 입구는 세로 지향적이었고 안뜰은 그리 넓지 않았고 오붓했다. 경복궁 한켠을 빛내는 경회루 앞마당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데 조금은 좁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더불어 사진의 힘에 다시 한번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사진에는 꽤 넓은 곳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요즘 노안이 심해져 가느라 그렇게 잘못 인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동시에 들기도 했다. 그래도 이 날은 나 혼자 이곳을 이용할 것이라고 호스트분께서 말씀해주시니 경회루 앞마당이라 굳게 믿고서 이곳저곳 샅샅히 구경하는 마음으로 쉬어야겠다다고 다짐했다.
대청마루에는 차가 아닌 커피가 구색을 잘 갖추고서 나를 맞이하고 있었고 충분히 어울린다고 느끼며 한 잔 손으로 받쳐들고서 내가 머물 공간으로 들어갔다. 책이 참 많았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책탑을 쌓고 있는 책,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인 책까지 각자의 성격에 맞게 제자리를 잘 차지하고 있었다. 한 권 꺼내어서 차분히 읽어볼까 싶었지만 두께의 압박이 세차게 밀려와 감히 엄두도 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원데이 이용권으로 누릴 수 있는 독서 타임은 아니었고, 대략 3~4일 정도 한옥 스테이를 해야 한 권 마스터할까 말까 하는 분량의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분위기와 위압감에 압도되어 차마 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쌜쭉거리듯 나의 자리에 털썩 앉을 수밖에 없었다.
글은 참 잘 써졌다. 오직 하나뿐인 이곳의 나를 위해 호스트분께서 잔잔한 피아노곡들을 셀렉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ASMR과 같은 몽롱함을 연신 몰고 왔으니 두뇌에 깊게 번진 알파파를 느끼며 한 줄, 한 줄 정성스럽게 써 내려갔다. 그러다 잠시 쉬게 되면 커피를 한 모금 홀짝거리며 대나무 창살이 성글게 박힌 유리창 너머를 소담스레 바라보곤 했다. 한편으로는 유리가 아닌 창호지가 덧대인 창을 기대한 나를 다그쳐야만 했다. '여긴 서촌에 위치한 현대식 한옥이지 조선시대 유적이 아니라고.'
나의 시간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벤저민 버튼의 시간보다 빠르게 달려나가고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루가 다르게 나이가 들어 하루가 다르게 시간이 잘 간다는 비과학적 사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더 빠르게 시간의 이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이 느낌적인 느낌의 느낌은 무엇이란 말인가. 금방 6시에 접어들고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니 입실 하고서는 줄곧 나만 이 공간에 가지런히 남겨져 있었다. 호스트분이 나의 존재를 잊어버리신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그렇게 흘러간 나풀나풀거리던 시간은 어느덧 퇴실의 찰나와 맞닿아 있었다. '어이쿠야, 잘 쉬다 갑니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차분하게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게 된 데서 커다란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7냥이 대환장 파티를 매일 숱하게 견뎌오며 억겁의 시간을 보냈는데 여기서는 다른 차원의 시간이 흐를 것이라곤 생각도 못 했으니.
한옥은 역시나 입실 때부터 마음가짐을 다르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나 보다. 그렇게 푹 쉬었다는 느낌이 잘 들었으니 말이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실내에서 차분히 나와 마주하였더니 퇴실 후 서촌의 길가에서 맞이한 벚꽃은 다르게 여겨졌다. 그것이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말이다. 굳이 상관은 없겠다. 한낮 입실 전에는 '아, 벚꽃 진짜 예쁘다'였는데, 해가 살며시 뉘엇뉘엇거리는 퇴실 즈음에는 '아, 곧 이 벚꽃들도 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뭣이 중헌디' 싶겠지만 그냥 뭐 그렇다는 것이다. 딱히 인문, 철학적 사색을 담은 표현은 아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