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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이응 Apr 08. 2022

일주일에 5만원으로
2병의 와인 마시기

2022년, 사람들과 함께 하는 혼술



2 bottles per week under KRW 50K (“2BPWU50”). 일주일에 2병의 와인을 5만원의 예산으로 마시기로 하고, 4주가 지났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기실은 집에서 혼술 하는 핑곗거리이다.  어쩌면 쉬쉬 몰래 해야 할 비밀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떤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했는지, 그리고 50주 동안 100병을 마시고 나면 어떤 배움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는지, 나중을 위해서라도 적어 놓아 둘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와인을 조금이라도 신경 쓰면서 마신 것이 2001년부터이니 햇수로는 20년이 살짝 지난 샘이다. 미국에서 1년 정도 생활을 할 기회가 생긴 덕에, 저렴한 가격으로 와인을 마실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 계기가 되었다. 뭔가 시작할 때 내가 매번 그러는 것처럼 [Guide for Wine Dummies 101] 같은 입문서를 읽었고, 미국에서도 좋은 와인이 만들어진다는 걸 알게 된 뒤에는 캘리포니아産 와인들을 많이 마셨다. 서울로 돌아온 뒤 한동안 못 마시던 와인을 다시 자주 마신 때는 스위스에서 대학원을 다녔던 2008년이다. 프랑스에서 가까운 지역이긴 했지만 1등급 보르도 와인을 마신 건 물론 아니었고, 대신 스페인의 리오하(Rioja)처럼 품종 및 제조방법에 대한 지역 통제를 받은 와인들을 주로 마셨다.


이제 다시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려다 보니, 아주 가끔씩만 와인을 마신 지난 10년 동안 내가 와인을 너무 편식해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사실 와인은 정말 많은 나라에서 많은 종류의 포도를 사용해서 다양한 스타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샤르도네이(Chardonnay)라는 품종의 포도로 만들어진 화이트 와인과 피노 느와르(Pinot Noir)라는 포도로 만들어진 레드 와인만을 골라 마시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능한 다양한 품종의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들을 공부하고 경험하기로 했다.




우선 두 병에 5만원의 예산을 잡은 것은, 우선 너무 비싼 와인을 마시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가벼운 주머니 사정 때문이다. 그래서 대략 1병에 10달러 정도의 가격이면 꽤나 좋은 와인을 살 수 있다는 걸 전제로 삼았다. 그다음, 수입절차를 통해 와인 가격이 높아지는 걸 감안해, 해외 가격의 2배에서 와인을 사는 것을 ‘득템’의 기준으로 삼았다. 보통 나는 “Wine Searcher”라는 앱을 통해서 와인의 해외 가격을 확인하고, 국내 가격과 비교한다. 여전히 2배 이상 높게 국내 가격이 결정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그러다 보니 국내 정가 대비 다시 할인 행사를 하는 와인을 주로 사게 된다. 이마트나 GS25에서 와인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일주일에 2병을 마시는 건, 비교 테이스팅 (tasting)을 염두에 둔 것이다. 혼술을 하는 상황이라 여러 병을 한꺼번에 열고 마셔볼 수는 없으니, 1주일 안에 비교할 만한 두 병을 고르는 것이 관건이자 또 하나의 재미이다. 확연히 다른 스타일의 와인들을 골라 비교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이번에 좀 더 재미있게 생각하고 있는 페어링 방법은 (1) 같은 품종의 포도를 사용한 두 종류의 와인, (2) 같은 와이너리에서 같은 포도 품종으로 만든 상급/하급 와인, (3) 만든 연도가 다른 같은 와이너리의 같은 와인, (4) 같은 와이너리에서 다른 포도를 사용해 만든 와인 등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내츄럴 와인과 기존 와인들과의 비교이다. 유기농 (Organic), 생체역학 (Biodynamic) 와인 등과 함께 내츄럴 와인은 비교적 최근 와인 제조의 경향을 보이는 카테고리이다. 이런 경향의 와인들을 이의 반대편에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와인의 맛을 추가하는 감미료를 활용하는 이른바 레시피 (Recipe) 와인들과 비교해보면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뭐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얻는 것이 있다. 와인을 마시는 프로젝트이니, 당연히 와인에 대해서 공부할 기회가 될 것이다. 우선 서로 다른 100종류의 와인을 사는 과정에서, 상황에 따라 어울리는 와인을 고를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지인들과 와인을 함께 마시다 보면, 한번 입에 맞는 와인을 기억해둔 뒤에 계속해서 같은 상표의 와인을 마시려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된다. 익숙한 것이 좋아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워낙 다양한 종류가 있는 와인들 사이에서, 이름만 보고 입맛에 맞는 와인을 골라내기에는 그 성공률이 너무 낮은 것이, 새로운 와인을 시도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와인을 고르다 보면, 뜻밖에 병 바깥에서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 병 모양에도 와인의 특징을 짐작할 수 있는 힌트들이 숨겨져 있다. 하나하나 감춰져 있는 정보를 모아서 병 안에 있는 와인의 맛을 상상해 보고, 병을 열어 결과를 확인하는 것도 와인을 마시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된다. 예산의 범위에서 같이 마실 친구의 취향을 맞추고, 함께 곁들일 음식과의 궁합을 생각해 몇 병의 와인을 고를 수 있게 된다면 나 스스로도 제법 대견할 것 같다. 


또 한 가지 연습하고 싶은 건, 와인을 테이스팅 하는 방법이다. 잘 정리된 테이스팅을 위해서는 타구 (唾具), 즉 입에서 맛을 본 와인을 마시지 않고 뱉어낼 스핏툰(spittoon) 이 필요하다. 와인의 알코올 농도 (alcohol by volume, ABV%)가 보통 12~14%이니, 5:5로 섞은 폭탄주와 비슷한 수준이다. 몇 모금 홀짝이다 보면 어지간한 것들은 다 맛있게 느껴질 정도로 취기가 오르게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와인을 맛만 보고 뱉어 버릴 경우는 거의 없으니, 술로 기분이 얼큰해지기 전에 정신을 집중해서 맛을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색깔을 보고, 향을 맡고, 입 안에서 알코올의 무게감을 확인하고, 혀에서 느껴지는 맛들을 구별해 내는 과정에 능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알아낸 와인의 특징들을 내가 다음에 찾아봤을 때나,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게 일상어로 정리하는 연습도 중요하다. 가끔 와인 테이스팅이라고 하면, 십여 년 전에 유행했던 일본 만화들에서 나오는 외계어 같은 뜬금없는 감상평이 오히려 심리적인 거부감부터 생기게 만든다. 와인 맛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이국적인 단어들도 큰 걸림돌이다. 흔히 접할 수 없는 과일들이나 서양 향신료들의 이름들을 들먹이며 맛과 향을 설명하면 좀처럼 무슨 말을 하는지 공감하기 어려워진다. 좀 더 평이하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을 사용해서 와인의 향과 맛을 설명할 수 있다면, 와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쉽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게 해야 와인 마시기라는 취미를 ‘그들만의 리그’에서 우리들의 놀이로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와인을 다시 마시기로 한 건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혼술이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다시 시작한 이 취미로 희망하는 건, 결국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이다. 3년 차에 접어든 전염병에 대한 걱정으로 직접 만나 식사하는 문화는 현격히 변화했다. 그 사이 나도 나이가 들어 이제 젊었을 때처럼 술자리가 잦지도 않다. 무엇보다 하루 밤에 몇 병씩 마셔 댈 만큼 내 간(肝)의 해독 능력도 예전 같지 않을 터이다. 그래도 와인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에 닿을 수 있는 방법은 또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SNS로 지금 마시고 있는 와인의 감상을 공유하고, 서로 추천하는 와인을 공동구매하고, 한병 다 마시기 힘든 와인을 당근마켓을 통해 모르는 동네 사람들과 나눠 마시는 일 같은 것은, 2022년의 한국에서 ‘사람들과 함께 혼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술은 잔을 부딪히고 나눠야 맛이다. 그 방법을 조금 비틀면, 지금도 그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저녁 약속이 있다. 지인과 약속 장소 근처의 와인샵에서 만나 서로 어떤 와인을 좋아하는지 이야기하고, 어울리는 와인을 한두 병 사서 근처 와인포차에서 함께 마실 생각이다. 나이가 있는 지인이신지라, 여전히 랜선 회식은 무리다. 그래도 뭐, 괜찮다. 부쩍 따뜻해진 날씨에 어울리는 화이트 와인으로 시작할 생각을 하니 벌써 어금니 안쪽으로 침이 살짝 고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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