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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뗌 Aug 24. 2015

아버지의 집

                                                                                               

 새벽에 까닭도 없이 잠에서 깨었다. 새침하게 달아나버린 새벽잠이 돌아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밤새 데워진 이불 밖으로 나가기도 내키지 않았다. 손 뻗으면 닿을 자리에 스마트폰이 있었으나  5.7인치의 화면 너머에 드글드글할, 5만 7천 명도 넘을 사람들이 곧장 떠오르자 새벽부터 그 화면 들여다보고 있기도 그만 끔찍해져 그만 두었다. 나는 그보다 차라리 멍하게 누워 들숨과 날숨의 수를 세며 꼼짝도 않고 있기를 택했다... 참기 힘든 요의가 몰려 올 때까지. 한 3분?                  


 후닥닥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와서 만난 새벽의 집은 고요하기보다도 괴괴했다. 어둠 위에 한겹 더 내려앉은 침묵은 고작 지은지 십 년밖에 안된 아파트에 기묘한 존재감을 부여한다. 사람이라곤  살기는커녕 가까이 온 적도 없이, 그저 이 상태 그대로 홀로 만년쯤 버티고 서있었던 것 같은 무거운 존재감. 그래, 콘크리트와 벽돌과 철근과 벽지의 혼합물 자체는 십 년 되었을지언정 그 위에 덮인 빛과 어둠만큼은, 말하자면 태초부터 존재했던 것 아닌가. 사람도 갖춰입으면 옷이 날개라는 칭찬을 받는 것처럼, 집이라고 다르리란 법은 없다.


 집을 덮은 어둠이 24시간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머리에도 차분하게 내렸는지, 내내 열에 들떠있다가 갑자기 정상체온으로 돌아온듯, 시원한 차분함이 찾아왔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할 필요 없이, 다리를 한껏 질질 끌며 천천히 부엌으로 걸어가 보리차를 한 잔 따라 마셨다. 여자애가 팔자로 걷는다고, 듣기 싫은 한숨을 크게 쉰다고 매질하는 훈육자는 이제 없는데, 나는 서른이  머지않은 이 나이까지도 한숨을 쉬다가, 무심코 짝다리로 섰다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뜨끔뜨끔하고 마는 것이다. 일부러 길게 길게 한숨을 쏟아낸다. 다리도 한껏 불량하게 꼬아 앉고서. 처음에는 일부러 쉬던 한숨이 저절로 쏟아져 나온다. 이제야 집에 왔구나.. 집에. 내내 밖을 떠돌다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 실향민이 된 심정으로 나는 한껏 한숨을 더 내쉬었다.


 최저임금 5210원, 당신의 시간에 대한  최저값이다.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내 아버지의 시간은 얼마였을까 헤아려보았다. 나는 아버지의 시간이 정확히 한 시간에 얼마인지는 어림하지 못했으나, 그 시간을 모두 합산해서 구매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기타를 칠 수도 있었고 등산을 할 수도 있었고 여행을 갈 수도 있었던 그 모든 시간을 팔아서 남은 것, 지금 내가 밟고 걷고 더듬고 있는 이 집. 이 집을 쌓는데 쓰인 벽돌 하나는 아버지의 몇 시간을 대가로 해서 이곳에 놓이게 되었나. 아버지의 집에서 먹고 자고 헤매는 나에겐 아버지의 시간이 몇 시간 소모되었나.


 하늘은 아직까지도 어두웠다. 가족들이 모두 깨어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고, 새벽녘 모두 잠든 시간에서야 후련하게 한숨을 쉬며 이제야 진짜 집에 온 것 같다고 안심하는 나는, 아마도 남은 일생을 아버지처럼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당신의 시간을 팔아서 먹이고, 당신의 시간으로 쌓아 올린 집에서 재워 키운 자식은 결국 새벽에 홀로 깨어 내 집은 세상 천지 어디에 있을까... 한숨이나 쉬고 자빠진 한심한 인간이 되었으니, 세상 모든 자식이 나와 같다면 세상은 온통 배신자와 배신당한자 천지일 것이 분명하다.


 안방에서 자던 개가 뒤늦게야 쪼르르 쫓아나왔다. 늙어 모질이 푸석하고 눈곱이 더덕더덕 붙었는데, 세차게 흔드는 꼬리만이 예전과 같았다. 허리를 숙여 개를 안아 올리자 귀를 찰싹 눕히고 저를 쓰다듬으라고 주둥이를 들이민다. 어이구.. 우리 애기가 언제 이렇게 할아버지가 됐어. 나는 그저 해가 뜨도록 하염없이 개만 쓰다듬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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