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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뗌 Aug 21. 2015

꽁치 대가리

20130509



 목욕을 마친 어머니가 곤히 잠든 깊은 밤, 정신의 절반쯤을 컴퓨터 앞에 내버려둔 채 멍한 손에 물잔을 쥐고 부엌으로 갔다. 싱크대 옆 가스레인지에 얹혀 있는 주전자를 기울여 졸쫄쫄 흘러나오는 보리차의 반짝임을 멍청하게 바라보는데, 어둠에 잠긴 싱크대 깊은 곳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과 눈이 마주쳤다.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 액정의 불빛으로 싱크대 속 하수구를 비추니 미끈미끈한 꽁치 대가리 세개가 붉은 살을 펼친 채 물기에 젖은 눈을 번떡거리고 있었다. 나는 새대가리보다 작은 대가리에 한쌍씩 어김없이 박힌 여섯 개의 눈깔을 바라보며 서서, 그놈들의 몸을 먹고 맞이할 내일을 생각했다. 그놈들의 잘린 대가리와 몸통을 이어 끊긴 숨통을 살려놓고, 다시 바다로 되돌려 보내는 상상을 했다. 그 세 마리의 꽁치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는 대가로, 끝없이 다가오는 내일로부터 영원히 도피하기를 꿈꾸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음식물 쓰레기통에 그놈들의 대가리를 처넣고는 다시 물잔을 쥐고 컴퓨터 앞으로 돌아왔다.

 옆방에서 어머니가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보다 훨씬 많은 내일을 사신 당신이 곤히 잠든 소리를 들으며, 더 많은 꽁치의 목을 베며 살아갈 더 많은 나의 내일들을 생각했다. 새벽이면 또다시 심해의 꿈을 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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