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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뗌 Jul 16. 2017

제주, 세화

장마 직전의 초여름

 물이 너무 많고 너무 맑으니 내가 알던 물처럼 보이지를 않았다. 그 안에 들어간 내 발도 내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넓지 않은 해변을 계속 왔다갔다 걸으며 물과 발과 모래만을 보았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곳에도 바다같은 하늘이 있었다. 나는 세화 해변에 서 있었다.


제주에 왔으니 이것을 봐야겠다, 저것을 해야겠다 했던 생각들은 전부 사라졌다. 사흘이 가기 전에 뭘 해도 해야만 한다는 초조함을 완전히 무장해제 시키는 풍경이었다. 계속 계속 사진을 찍었다. 이 모두를 나와 함께 집까지 데려가고 싶었다.


 제주 바다의 아주 작은 한 조각을 더듬는 사이 해가 저물었다. 하늘은 오렌지빛으로 뒤덮였고, 어디선가 낮은 종소리가 울렸다. 고맙게도 그 소리는 조악하게 찍은 핸드폰 동영상에도 담겨주었다.


음량을 키우시면 바닷소리와 종소리가 들립니다.


바다를 따라 난 길을 자박 자박 되짚어 숙소로 돌아왔다. 조용한 동네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마당 개들이 멀리 멀리 울리는 소리로 웡,웡, 웡.


전날은 비가 제법 내렸는데, 다음 날은 덜 했다. 침대에서 기어나와 식당으로 가니 맹한 얼굴의 라이언이 벌쭘하게 들어오는 손님들을 반겨준다.


감사하게도 이런 아침상을 받았다.


 아이 귀여워, 우걱우걱, 꿀꺽.


 
급하게 떠난 여행이라 숙소 역시 자세히 알아보지도 못하고 급히 잡았는데 동행도 만족해서 다행이었다. 크지 않은 게스트하우스인데, 잠자리는 물론이요 사소한 곳까지 어디 한군데 세심하게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숙소 두베하우스 : http://blog.naver.com/zzibi69/220506112416


해변에서 오는 길에 해녀 박물관이 있는 것을 봤었다. 가까운 거리라 샌들 당겨신고 해변 가는 길을 다시 걸었다.


 한때 해녀로 활동했던, 그리고 지금도 해녀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의 인터뷰를 보았다. 슬프고 지친 얼굴들.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위험했는지 이야기하며 젖은 눈들.


 박물관을 꾸민 이는 이곳에 방문하는 일반인들이 해녀의 삶을 일방적으로 동정하거나 신기해하라는 의도에서 그리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기있게 살아온 분들의 삶을 엿보고도 자꾸 그런 마음이 되어버려서 떠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해녀복을 입고 미인대회에 나가 격려상을 받은 이의 이야기가 마음에 콕.

미스관광 선발대회 - 제주도 해녀복장으로 등장한 문경숙양, 노력상 수상(1964.12.5 대한뉴스 제497호)

제주 관광객들에게 '해녀'는 인기있는 상품이다. 나도 해녀 캐릭터가 그려진 엽서 여러 장을 사서 주변에 나누어주었다.

해녀 박물관에서도 바다는 지척으로 보였다. 우리는 다시 해변으로 갔다.

 곧 시작될 성수기를 앞둔 동네는 하루 사이에도 뭔가 조금씩 바뀌어갔다. 사진에 찍힌 벤치는 전날 까지는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다. 한데 머무르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늘이 울듯 말듯 하다.

초밥집 표시 : https://store.naver.com/restaurants/detail?id=978453814

식사를 하고 나니 비가 다시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음 날은 세화에서의 마지막 날, 그리고 프리마켓인 벨롱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숙소에서의 두 번째 조식. 메뉴 뿐만이 아니라 테이블 매트까지 새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올해 첫 자두를 여기서 먹었다.

프리마켓 벨롱장 : https://goo.gl/UJ5eYk

사람이 많이 몰려들기 전에 재빠르게 한바퀴 돌고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카페 안녕 세화씨 : https://store.naver.com/restaurants/detail?id=96912875

마지막 날 드디어 해가 반짝 빛났다. 에메랄드 빛으로 해변이 온통 화사했다. 삼일 내내 세화 바다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제 바다와는 지척으로 떨어진 집으로 돌아왔지만, 가끔 창문 너머로 하늘을 보면서 제주 바다도 저렇겠거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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