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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뗌 Aug 29. 2015

낙지볶음

 

 시장에서 산낙지를 샀다. 멀리 중국에서 온 낙지들은 얇은 채반 위를 꾸물럭거리고 기어 다녔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다리가 없는 놈이 많았다. 저들끼리 뜯어먹었다고 한다.

 어머니와 나는 죄 다리가 쥐어뜯긴 낙지들을 보고, 얘들 전부 PTSD 낙지라며 웃었다.  


  

 PTSD 낙지는 만원에 네 마리였다. 유달리 고개를 빳빳이 들고 죽이 되어 널브러진 다른 놈들 위를 힘차게 기던 놈이 있었다.

  아저씨의 두꺼운 손이 그놈의 머리를 붙들어 비닐봉지로 옮겨 담았다. 거기에 죽은 놈을 하나 덤으로 얻었다.    


 부엌에 내버려둔 봉지에서는 계속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저놈들을 빨리 보내줘야겠다면서 어머니는 소매를 걷었다. 까끌한 스텐망에 놈들을 쏟아부었다.

 봉지 안에서 짓눌렸을 텐데도 몇몇 놈들은 다시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살아났다.  그중 한 놈과 눈이 마주쳤다. 우습지만 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아까 빳빳하게 채반 위를 기던 그 놈이었다. 검은 깨처럼 작은 눈알은 깜박일 줄도, 떨릴 줄도 몰랐다. 동정을 구할 방법 따위 모르는 작은 눈알 위로 꽃소금 한 줌이 팍 뿌려졌다. 38개의 다리가 일시에 기괴한 각도로 허공을 휘저었다.


 너희는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빨리 가. 어머니는 말했다.

걸레를 빨듯 빡빡 문질러 닦으니 진득한 점액이 거품과 함께 가득 배어났다. 스텐망을 빙글빙글 돌려가며 원심력으로 놈들을 치댔다.


 한 덩어리의 낙지는 흔드는 대로 내던져지고 구르고 긁히고 문질러졌다. 표피를 보호하는 점액을 무자비하게 벗겨낸 후에도 죽지 않고 살아서 몸을 뒤틀었다. 미끈거림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 작은 지옥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소금을 뿌렸을 때부터 이미 불구덩이에 던져진 고통을 느꼈겠지만, 그것도 고통의 정점은 아니었다. 마침 물이 끓었다. 아직도 모질게 살아서 움직이는 5마리의 낙지들이 화탕지옥으로 떨어졌다. 38개의 다리는 다시 한번 일시에 오그라들었다. 나는 그것이 생명의 징후가 아닌 신경의 기계적인 반사작용이길 바랐다. 그러나 낙지는 물에서 건져져 머리를 해체하고 온몸을 토막 낼 때까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야채를 양념장에 볶고 불을 줄인 후, 데친 낙지를 넣고 함께 볶았다. 죽은 낙지의 몸은  희고 통통했다. 우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낙지의 살덩이를 흰 쌀밥과 함께 푸짐하게 먹었다. 이빨에 씹히는 육질이 부드럽고 촉촉했다. 나는 최대한 혀끝에 느껴지는 미각에 신경을 집중하며 낙지 볶음을 남김없이 먹었다.


그 다음 끼니에도, 그 다음 끼니에도, 나는 식탁에 오른 동물의 몸을 계속해서 먹었다. 식후, 여유로운 커피 한잔의 테이블엔 사는 게 왜 이렇게 지겹고 고단 한지에 대한 나른한 잡담이 어김없이 곁들여졌다. 모든 것은 완벽하고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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