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 엔톡 라이브플러스
팀 스포츠를 무대에 어떻게 구현한다는 걸까. 위험한 발상이라고 여겼다.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선 스포츠를 보지 스포츠 드라마를 보진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성공적인 스포츠 영화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건 연극 아닌가. 개인 종목도 아니고 팀 구기 종목을 어떻게 구현하겠다는 걸까. 배우들이 유니폼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것이 자칫 우스워보이지는 않을까.
그런데 이 공연은 무려 프리미어 리그의 영국의 내셔널 시어터에서 만들어서 히트하고 올리비에 상까지 수상했다고 한다. 가장 심각한 축구 팬들이 많은 나라의 까다로운 자격 심사를 통과한 연극이라는 얘기다. 궁금했다, 그 방법이.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1막과 2막이 마치, 어벤저스 엔드게임과 인피니티워를 뒤집어 놓은 것 같다고. 이는 내용적 스포일러가 아닌, 비유로써의 표현이다.
러닝타임은 인터미션 23분을 포함해 190분. 1막만으로도 매우 완결성 있는 스포츠 드라마다. 상처가 있는 새 감독이 부임하여, 선수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관계를 이어주고 대표팀으로서의 동기부여를 주며 팀으로써 승리를 향해 달려가는. 인터미션 동안 생각했다. 2막에서 무슨 일이 생기겠구나.
감독은 팀에 부임하며 대표팀에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3막 구조를 빌어와, 대표팀의 목표 설정을 길게 새로 하며 멘탈 코치를 영입한다. 그들이 발견하고자 하는 일은 ‘공포를 직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포를 직시하기 위해선,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들은 통시적 공시적 관계 속에 존재하는 대표 선수라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러한 멘탈 코칭을 통해 그들은 이어지는 몇 번의 세계 대회 안에 1966년 월드컵 우승 이후로 없던 세계대회 우승을 쟁취하고자 한다. 그것이 그들이 새로 쓰고자 하는 ‘이야기’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뛰어난 이야기다. 그런데 2막에서 <디어 잉글랜드>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최고의 질문. ‘보통 이야기 2막에서 더 좋아지나?’ 현실에서 우리는 지속적인 상승만을 원하지만 이야기의 세계에선 그렇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인생을 이야기로 파악한다. 그들에겐 예상치못했으나 예상되었던 실패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 실패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팀의, 인간의 가치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 연쇄적 행위가 영국의 축구 국가대표팀의 것이었을 때, 영국 전체 또한 영향을 받게 된다. 그것이 <디어 잉글랜드>다.
최근 런던 여행에서 방문했던 내셔널 씨어터, 그리고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을 생각하며 흠뻑 젖어서 감상했다. 어쩜 이런 극본을, 어쩜 이런 연출을, 어쩜 이런 연기를.
되새긴다. 공포를 직시해야 한다. 통시적 공시적 관계를 믿고 계획된 자신을 믿고 수행해야 한다. 그럼에도 실패는 찾아온다. 비아냥도 찾아온다.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다. 승리가 아니라 그 과정이야말로 삶과 일의 가치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인간 사회 전체가 공감할만한 은유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삶의 3막 구조, 우리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