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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현 Mar 27. 2019

추위 속의 산책, 푼타 아레나스

칠레_푼타 아레나스

발파라이소 방문을 끝으로 산티아고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푼타아레나스로 넘어왔다. 칠레의 남쪽 끝에 위치한 도시, 산티아고와는 같은 나라이지만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는 도로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 굳이 차량으로 이동하려면 아르헨티나로 넘어가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애써 고생을 선택할 필요가 없어 비행기로 편하게 이동했다. 


편하게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를 타 푼타아레나스에 딱 하고 내리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산티아고가 덥거나 따뜻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가벼운 옷차림으로도 산책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면 푼타아레나스는 내가 가진 모든 옷들을 겹쳐 입어야 할 만큼 추운 세상이었다. 그런 추위에 걸맞게 도시의 모든 곳은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특별히 할 게 있는 곳은 아니다.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와 함께 남미 최남단의 도시임을 서로 주장할 뿐이다. (남미‘대륙’의 최남단은 푼타아레나스, 남미의 최남단은 우수아이아라는데 서로 유리 한대로 끌어다 쓴다.) 그런 곳에 도장 한번 찍어보려 왔다. 바닥에 쌓여 있다 찬 바람에 다시 날리는 눈발을 뚫고 영하의 추위 속에 산책을 나섰다. 


나름 알려져 있는 마젤란 공원으로 갔다. (아르마스 광장이지만 마젤란 동상이 있기 때문인지 마젤란 공원으로 널리 불린다.) 소박한 규모의 공원엔 마젤란 동상이 우뚝 솟아 있었다. 마젤란 덕분에 번성했던 시기가 있었던 푼타아레나스로서는 그를 기릴만하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사람은 거의 없고 기념품을 판매하는 노점만이 두셋 있었다. 작은 마그넷 하나를 산 후 발길을 돌렸다. 

Mirador라는 표지판만 보고 찾아간 곳에는 이렇다 할 전망대는 없었다. 언덕의 반대편으로 가니 집들은 줄어들고 평지에 먼 길만 있어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같은 길을 걷기 싫어 조금 돌아서 오다 운 좋게 푼타아레나스를 조망할 수 있는 언덕에 도착했다. 북적이지 않고 조용했던 도시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건물들을 통해 조금의 온기를 느끼려 노력하는 듯했다. 

멀리 보였던 바다를 가보지 않을 수 없다. 제설이 거의 되지 않은 바닷가에서는 눈을 밟는 특유의 느낌과 소리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이 바다는 마젤란 해협이다. 거친 바람과 물살로 드레이크 해협을 건너기 두려워하던 사람들로 인해 우연히 발견한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조용한 해협이라지만, 겨울의 바닷가는 어쩔 수 없이 바람이 세다. 눈 때문에 걷는 것도 불편하다지만, 몇 시간째 추위 속을 걷다 보니 좀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야 할 듯하다. 

예전부터 유명했겠지만 무한도전에 나와 더 유명해진 라면집을 찾아갔지만, 휴가로 인한 휴업상태다. 익숙한 따뜻함을 원했지만 어쩔 수 없다. 숙소로 돌아가 따뜻한 이불속을 경험해야겠다. 그리고 더 추운 곳으로 갈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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