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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현 May 08. 2019

그냥 걸어서 BA구경

아르헨티나_부에노스아이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내게 그다지 흥미 있는 도시가 아니다. 원래 도시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이곳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없으면 어쩔 수 없다. 그냥 나간다. 그냥 나가서 지도를 보고 뭔가 있겠다 싶은 기념비, 공원, 유적 등을 계획 없이 찾아다닌다. 그러려면 많이 걸어야 한다. 가방 속의 핸드폰과 물과 이어폰을 확인하고 신발끈을 다시 메고 숙소를 벗어난다. 어디부터 가야 할까.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렌디드. 원래는 오페라극장이었다지만 지금은 서점이다. 안에 카페도 있다. 누군가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서점 사진, 서점을 배경으로 한 셀카를 찍고 있었다. 지금은 서점이라기보다는 관광지다. 물론 이곳에서 책을 사는 사람들도 많다. 대부분 현지인으로 보였다. 서점이지만 아름다움이라는 것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는 이곳이 서점의 본질을 다 한다고 볼 수 있을까. 하긴, 서점이라고 아름답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오히려 그것으로 사람의 발길을 한번이라도 더 붙잡을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온통 읽을 수 없는 스페인어로 가득한 이곳에 한국 책은 없다. 일본 책이 있는 것을 발견했기에 그 부분이 아쉬웠다.



지도만 봐도 뭔가 볼거리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드는 장소가 있었다. 공원이 여럿이고 미술관, 박물관도 여럿이었다. 그러나 걷는 것이 조금은 힘에 부쳤을까, 내가 들어간 곳은 뜬금없이 공동묘지였다. 그동안 여러 곳을 다니면서 공동묘지를 간 적이 있었던가. 아마 이곳이 처음일 것이다. 

뭔가 상상 속의 공동묘지와는 다르다. 언뜻 보면 어떤 마을 같기도 하고 마을의 축소판 같기도 하다. 하나하나의 건물과도 같은 것들이 한 가족의 무덤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 노벨상 수상자 및 독립영웅 등 유명 인사들이 유명한 사람들이 묻혀있는 것으로 한번 더 유명해진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가문의 부를 뽐내려는 사후 전시장이 돼가고 있다고 했다. 씁쓸한 점이다.

묘지를 둘러보면 손쉽게 시신을 안치했을 관을 발견할 수 있다. 드라큘라가 나올 것 같아 섬뜩하기도 했다. 그런 기분을 참으며 묘지를 둘러봤다. 그래도 이 사람들은 적어도 외롭진 않을 것 같았다. 아르헨티나의 관광지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찾아오니 말이다. 반면에 혹시 휴식을 원하는 이들에겐 조금 시끄러울 수도 있겠다. 내가 죽으면 나는 이런 곳에 묻히고 싶을까? 


계속 걸었다. 공원으로 가 걷기 위해 걸었따. 대통령궁 뒤에 있는 이 공원(Reserva Ecológica Costanera Sur)은 뭐라 쉽게 부를 이름이 없었던 것 같다. 생태공원이자 습지공원이기도 하고 둘레가 10km에 달하는 큰 공원이다. 아무래도 전체를 다 도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공원을 반으로 딱 가르는 중간 코스를 선택했다. 그러나 딱히 볼 것은 없다. 바다로 불러도 무관할 플라타 강을 끼고 있었지만 날씨가 맑지 않은 탓인지 뿌연 풍경이 그저 그랬다. 이제 막 겨울이 지난 탓인지 다채로운 식생의 모습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만 이 공원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많이 볼 수 있었다. 

공원에서 나와 대통령 궁, 마요 광장을 들러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산텔모 벼룩시장 쪽으로 가보지만 시장이 열리는 날이 아니라 평범한 주택가의 풍경만 볼 수 있었다. 시장에서 합류한 숙소의 동행들과 마지막 코스로 카지노를 갔다.


세계 최대의 선상 카지노라는 그곳에서 20달러를 환전해 나름의 재미를 즐기다 모두 잃어버렸다. 옆에서 한참 어린 동생이 덜컥 50달러를 주며 더 해보란다. 내가 센트 단위의 베팅을 즐기는 사이 십 단위, 백 단위 베팅을 하다 순식간에 500달러를 따버린 녀석의 개평 같은 돈이었다. 베팅 금액의 차이에서 오는 비교, 자의는 아니지만 동생에게 손을 빌려야 하는 순간의 굴욕이 몰려왔고 극구 거부했다. ‘아 안되지. 뭐 이런 걸로 위축되고 그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결국 그 돈을 받고, 어차피 내 돈도 아니라는 생각에 막 걸었다가 건 돈 이상의 돈을 땄다. 비참함 속에 받았던 돈을 갚고도 남았다. 상식과 교양이 없음에 창피하고 주눅 들지라도 돈이 없음에 주눅 들지는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러나 다시 그 친구와 카지노를 가고 싶지는 않았다. 


카지노를 나오니 어둡다. 어둡지만 낮부터 하던 시위는 아직도 진행되는 곳이 있다. 부족하게나마 얻어들은 정보로는 급하게 공과금을 인상한 정부의 결정에 진행되는 시위라고 했다. 어디에서나 조금 더 잘 살기 위해 투쟁 중이다. 투쟁을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까. 투쟁이고 뭐고 이제는 너무 힘들다. 마지막은 걷지 않고 우버를 불렀다. 오늘은 너무 많이 걸었다. 꿀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걸으며 만난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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