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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현 May 15. 2019

빠지고 싶은 유혹의 이과수

아르헨티나_푸에르토이과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버스를 타고 19시간을 달려 푸에르토이과수에 도착했다. 아르헨티나의 마지막 일정이 될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라는 이과수 폭포가 있는 곳이다. 일단 마을을 살펴 적당한 곳에 숙소를 잡고 짐을 풀었다. 오후에 출발했던 것이 하루가 지나 아침에 도착했지만 바로 이과수 폭포로 가기엔 버스 안에서의 잠이 이동의 피로를 풀어주지 못했다. 더구나 날씨도 꽤 흐리고 가끔 비도 흩날리는 것이 무리해서 찾아간다 한들 멋진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푸에르토이과수는 폭포 구경 외에 특별히 할 만한 것이 있지는 않지만 산책 삼아 걷다 보면 이과수 강을 만날 수 있다. 강 건너편은 브라질이다. 그리고 강을 따라 하류 방향으로 가면 파라과이를 볼 수 있다. 물론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한강 폭의 반밖에 안 될 것 같은 이 작은 강이 세 나라를 가르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를 품고 있다. 비가 자주 내리는 이곳은 나에게도 환영의 비를 뿌려줬고, 가볍게 나온 산책은 숙소로 뛰어 돌아가는 것으로 끝이 났다. 


다음날, 여전히 하늘은 흐리다. 흐리지만 폭포를 보러 갈지, 하루를 더 기다려볼지 고민하며 숙소 앞에서 만난 꼬마와 사소한 장난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올려다본 하늘의 한 구석이 조금씩 개어가고 있었다. 폭포까지 가는데 30분에서 한 시간은 걸릴 테니 그 정도 시간이면 맑아지지 않을까? 그러길 기대하며 천천히 버스정류장으로, 그리고 버스를 타고 이과수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많이 갰다. 아직 구름은 군데군데 남아있지만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고 눈에 띄게 밝아졌다. 빛이 충분하면 그만큼 폭포도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드디어 이과수 국립공원 안으로 입장. 천천히 공원 안내도를 살펴보는데 트레일 코스가 꽤 여러 개다. 다 둘러보긴 힘들 것 같아 짧은 코스 하나만 먼저 돌아보고 하이라이트라 불릴 수 있는 악마의 목구멍을 찾아가기로 했다. 산책 코스엔 여러 개의 작은 폭포를 만날 수 있다. 작다고 표현했지만 다른 곳이었다면 메인이 될 수도 있을만한 규모의 폭포들이다. 

다른 곳이라면 메인이 될만한 작은(?) 폭포들

악마의 목구멍은 꽤 멀어 공원 안을 왕복하는 작은 기차를 타고 갔다. 마지막 역에 내려서도 10분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 이 길은 이과수 강 위에 설치되어 있어 폭포 이전의 강을 볼 수 있는데 잔잔함과 고요함이 잠시 후 만나게 될 거대한 폭포를 상상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걷다 보니 소리가 들렸다. 필시 폭포에서 나는 소리일 게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곳, 바로 이과수 폭포, 그리고 악마의 목구멍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위에 나도 두발을 내디뎠다.


애걔~, 실망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작았다. 도대체 얼마나 큰 폭포를 상상했던 거냐. 당연하게도 지금까지 본 그 어떤 것보다 크고 웅장했지만, 내심 더 대단하기를 바랐나 보다. 마음속 느낌과 달리 나는 오랫동안 폭포를 바라봤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포말로 인해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끊임없이 추락해나가는 물살은 나의 정신마저 그곳으로 추락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빠져나오지 못할 곳으로 빠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과 나 역시 물살과 함께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은 묘한 욕망이 공존했다. 햇빛과 함께 선명한 무지개가 떠오를 때는 두려움마저 잠시 희석되는 듯했다. 멍하니 폭포 앞 데크를 왔다 갔다 하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찍어보았다. 초광각렌즈가 아닌 이상 한 컷에 담기도 어려운 규모의 폭포였다. 처음 봤을 때의 감상과는 달리 점점 이과수 폭포에 젖어들고 있는 것 같았다.


젖어드는 것 ‘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젖을 시간이 되었다. 보트를 타고 이과수의 폭포 물을 직접 맞아보는 시간이다. 폭포 하류의 선착장에서 탑승한 보트는 이곳저곳 배회하며 브라질, 아르헨티나 양국의 이과수를 설명해주다 악마의 목구멍 방향으로 향했다. 그러나 조금 떨어져서 구경만 할 뿐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나도 봤지 않은가. 그 안으로 향했다간 살아 나오지 못할 것임을... 보트는 악마의 목구멍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상대적으로 작은 폭포를 향했다. 그리고 잠시, 그 폭포 안으로 들어가고 5초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나는 폭포수에 직격을 당했다.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는 흥분이 몸 밖으로 퍼져 나왔다. 완전히 젖어버렸지만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이럴 정도니 악마의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고픈 유혹이 생길 수밖에. 이렇게 실망과 유혹과 흥분을 모두 안겨 주었던 이과수였다.

폭로를 만나기전, 잔잔한 강의 모습과 폭포의 직전
무지개 뜬 이과수, 내 샌드위치를 뺏어먹은 코아티

젖은 몸은 나머지 트레일 코스를 돌며 천천히 말려 나갔다. 이과수 폭포뿐만이 아니더라도 조용히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르헨티나의 이과수를 봤으니 내일은 브라질의 이과수를 봐야겠다. 오늘 같은 다이나믹함이 브라질에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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