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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현 Aug 14. 2021

성냥 파는 할머니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명작 <성냥팔이 소녀>

 “이보시오 총각, 성냥 좀 사~”

 “아유~ 할머니 요즘에 누가 성냥을 써요. 이거 그냥 드릴 테니 집에 조심히 들어가세요.”

 어느덧 어두워지기 시작한 한 겨울의 저녁, 지하철 옆 입구에서 할머니 하나가 성냥을 팔고 있었다. 오래된 목도리를 아무렇게나 둘러멘 할머니는 어디선가 주웠을 법한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갑자기 함박눈까지 내려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빠지자 할머니의 마음은 그만큼 초조해졌고, 바로 앞에 지나가는 청년을 붙잡아 성냥을 팔려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안 팔린 성냥이 한 명 잡고 말을 붙인다고 바로 팔릴 리가 없었다. 

 “성냥을 왜 안 써! 그래도 성냥인데!”

 청년의 한 마디에 잔뜩 뿔이 난 할머니는 떠나는 청년의 뒤에 대고 고집스러운 소리를 외쳐댔다. 그리고는 청년이 건넨 오천 원과 손에 들고 있는 성냥을 바라보며 옛 생각에 잠겼다. 


 성냥은 할머니의 생계이자 미래였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도 가지 못하고 성냥만 팔아온 할머니다. 그래도 할머니는 성냥을 팔아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셋이나 낳았다.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성냥으로 세 아이를 모두 대학에 보냈고 결혼까지 시켰다. 성냥은 할머니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성냥을 쓰지 않는다니. 할머니의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엔 아이들마저 연락이 끊겨 다시 혼자가 된 할머니다. 할머니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성냥을 파는 것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생계도 미래도 자부심도 흔들렸다. 총각의 말처럼 성냥은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가끔 총각처럼 성냥을 사는 대신 천 원, 오천 원을 건네는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지금도 성냥불을 켜면 원하는 것들이 보일까?”

 오늘처럼 성냥이 팔리지도 않고 지독히도 추웠던 어렸을 적의 어느 날, 할머니는 추위를 달래기 위해 성냥 한개비 한개비에 불을 붙인 적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럴 때마다 따뜻한 난로와 맛있는 음식, 사랑을 듬뿍 주시던 할머니의 할머니도 보였었다. 할머니는 그 옛날의 순간을 회상하며 손 안의 성냥을 만지작거렸다. 


 할머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벽에 기대어 앉아 성냥불을 하나 켜보았다. 작은 성냥불이 크게 번지는 듯하더니 그 안에서 첫째 딸의 모습이 보였다. 첫째 딸은 졸업을 하자마자 바로 취업을 하고 월급을 받는 대로 생활비에 보태줬다. 하지만 이내 결혼을 하더니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정기적으로 오던 전화는 간격이 뜸해지고 할머니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는 결국 끊기고야 말았다. 성냥불이 꺼지며 딸의 모습도 사라졌다. 

 두 번째 성냥불에서는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려웠던 가정형편 속에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이리저리 사업을 하러 다니다 망하기도 여러 번, 겨우 안정을 찾고 가정을 이루며 그런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은 할머니의 집을 고쳐주기도 하고 가구를 다 바꿔주고 여행을 보내준다고도 했다. 모두 아들 쓰라고 사양도 했지만 아들은 고집대로 했고, 한편으론 아들이 잘 되어 가는 것 같아 내심 흐뭇했었다. 

 세 번째 성냥불에서는 막내딸의 모습이 보였다. 첫째와 둘째가 돈을 번다고 열심히 뛰어다닐 때 그러면 엄마는 누가 돌보냐면서 평생 엄마랑 살 거다라고 말하던 셋째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라며 남자 하나를 데려왔었다. 그러면서도 자주 찾아올 거라고, 엄마는 우리 엄마다라고 말하는 셋째가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웠다. 

 마지막이라 생각한 성냥에서는 먼저 간 남편이 보였다. 할머니가 성냥을 파는 동안 성실히 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르던 남편, 그 와중에도 애정표현을 아끼지 않던 남편은 공사장 일을 몸이 버티지 못했는지 이태 전에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이보시오 영감, 나도 좀 데리고 가다오. 지금 나에겐 애들도 없단 말이오.”

 꺼져가는 불빛을 향해 손을 휘젓던 할머니는 지금 보아 온 것들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옛날 성냥불을 켜던 그날 밤처럼 할머니는 다시 일어섰다. 성냥을 팔아야 했다. 그것이 할머니를 살게 하는 힘이었고 또 내일이었다. 그때 할머니를 향해 다가오는 두 남녀가 있었다. 할머니는 그들에게 성냥을 팔기 위해 말을 건넸다. 

 “이보게 젊은이들, 성냥 좀 사게나.”

 “네, 할머니, 성냥 다 사드릴 테니까 같이 집으로 가요.”

 할머니는 성냥을 팔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그러면서도 집으로 가자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갑자기 여자가 주저 않더니 할머니의 슬리퍼를 벗겨내고 가지고 온 운동화를 신겨주었다. 남자는 성냥을 다 사겠다며 할머니의 손에서 중국집 전화번호가 적힌 이쑤시개 상자들을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어, 누나. 엄마 찾았어. 걱정 안 해도 돼!”


 할머니는 처음 보는 남녀의 행동과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의아했지만 왠지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흐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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