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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니킴 Jul 30. 2023

사실 관심없으신 거, 다 알거든요

미국 사는 사촌 오빠가 가족들과 서울에 왔다고 했다. 


간만에 친가 쪽 가족들이 모여 강남 한 중식당의 룸을 예약해 둘러앉았다. 


나는 딱 중간층 연령대였는데, 가족 구성원들은 초등학생부터 70대까지 나이대가 다양했다. 자주 보지도 않는 여러 세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분위기는 당연히 어색했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명절에 모여야 할 명분도 없었다. 이제는 40,50대인 사촌 언니와 오빠가 사회인인 나에게 궁금할 거라곤 ‘결혼은 언제하냐’ 정도일 텐데, 요즘은 친척들이 모여도 취직, 결혼과 같은 얘기를 예전 만큼 편하게 함부로(?) 꺼내지 않게 됐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웨이터가 새우 완자탕을 서빙하는 동안 왜 모두가 모였는데 이렇게 조용할까 생각을 해보았다. 이 연령층을 모두 아우르는 재밌는 대화란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인 순간 만큼은 애써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란 결론을 내렸다.  


이 가족의 상황은 반전될 수도 있다. 


술을 좋아하는 고모부가 고량주를 시켜 잔뜩 마시고, 갑자기 길다란 식탁 테이블에 올라가 난동을 부린다면? 이 사람들은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이 해프닝이 발생했을 때 함께 있었던 사람들로 묶여 ‘그 때 고모부의 취중 난동’은 모임 내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자주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 정도 이벤트는 생겨줘야 모두가 재밌어 할 만한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사실 내가 상상해본 일이 현실이 된다면 더 이상 가족 모임 같은 게 없을 것 같긴 한데… 그것 또한 나쁘진 않은 결론이다. 


어느 평일 저녁, 퇴근 후 강아지 산책을 마친 다음 양치를 하며 유튜브를 켰다. 


피드에 SBS 8시 뉴스를 짜깁기한 영상 클립이 떴다. 20,30대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떨어지고, 부정적 인식이 더 높아졌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은 전혀 새롭지 않았다. 이후 저조한 출산율에 대한 정부의 대응책과 200조가 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었음에도 출산율은 OECD 국가 중 역대 최저라는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뉴스를 보려고 켰는데 새로운 게 없었다. 


그러다 어떤 장면에서 양치하던 치약물을 삼킬 뻔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관계자가 정말 신박한 통계 수치를 발표하는 중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출산율은 0.78명인데, 보건복지부에선 2025년의 출산율을 1.18명으로 예측한 것이다. 이어지는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니 이 때 70만명 정도 되는 우리나라 90년대생의 출산율이 피크를 찍을 거라 예측, 출산율이 오를 거라 기대한다고, 한 50대 정도는 되어보이는 공무원 아저씨가 발표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말이 될 수는 있겠는데 곱씹어볼수록 기가 찼다. 자신이 90년대생이라던 방송 기자도 ‘제가 바로 그 90년대생인데요,’라고 말하며, 정말 대책이 없는 것 같다는 취지의 멘트로 뉴스 보도를 마무리지었다. 


그러니까 이미 결혼하고 애 낳은지도 한 20년쯤은 된듯한 50대 아저씨들에게 ‘결혼과 출산’이 얼마나 와닿지도 않는 주제이길래 출산 인구가 증가할테니, 출산율이 증가할 거라고 발표하냔 말이다. 취직을 걱정하는 20대 대학생에게 60대가 수령할 연금이 고갈되는데 대책이 없냐 했을때, ‘그럼 인당 국민 연금을 더 걷으면 되지 않냐’ 수준의 답변을 들은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저출산을 고민하는 입법 관계자들의 ‘노잼’ 답변을 듣고 이 사람들로부터 제대로 된 대책은 절대 나올 수 없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다시 가족들이 모인 중식당으로 돌아오면.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어른들이 만날 때마다 ‘몇살이냐, 방학은 했냐, 무슨 과목 잘하냐’ 물어보는 게 싫었다. 나에게 관심도 없으니 매번 몇살인지조차 모르는 게 아닌가. 그냥 가만히 두면 밥이라도 더 맛있게 먹었을 텐데 말이다. 관심의 대상이 상대방이든, 어떤 문제이든, 내가 관심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질문과 답변의 디테일은 채워진다. 


안타깝게도, 관심있는 척만 하는 건 모두에 눈에도 관심 없어 보이는 게 뻔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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