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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연 Nov 03. 2015

'행복한 결혼'은 신화일 뿐일까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를 읽고

우리는 태어나 살면서 수많은 지식을 배우지만 정작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기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사랑을 하는 법, 부모가 되는법, 직장 동료들과 잘 지내는 법, 부모님과 잘 지내는 법 등등.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수많은 난관과 과제를 다 함께 헤쳐나갈 수는 없을까 .

알랭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

그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결혼'일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첫 눈에 만나 사랑에 빠지고 실망하고 헤어지거나 혹은 잘 풀려 결혼에 골인하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차고 넘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혼한 이후 이들이 행복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결혼 = 해피엔딩'이라는 등식이라도 있는 것일까?


결혼 13년 차인 나에게 연애보다 10배, 100배 힘든 결혼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그렇게 무모하게 결혼을 결정할 수 있었을까? 이 시대는 왜 이렇게 결혼을 권장하는 것일까? 혹시 나는 이 사회에 속아서 결혼을 한 것은 아닐까? 사랑해서 결혼한 그들은 모두 어디에 살고 있을까?


알랭 드 보통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작가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사랑 예찬론자였던 '알랭 드 보통'이 어쩜 이토록 현실적이고 섬세하고 잔인하게 결혼에 대해서 쓸 수 있었을까.


그도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 두 아이(여섯살, 여덟살)를 키우면서 '아이들의 태어났을때 매우 행복했지만, 그후 아이들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어 조금 덜 행복했다'고 할만큼 육아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세계적인 작가인 알랭 드 보통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인지 정말 궁금했고 내가 품고 있는 이 고민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애초에 우리는 결혼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갖고 있었고, 인간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남편이나 아내로부터 듣는 비판들은 대개 고통스럽지만 진실이다. 친구들 대부분이 나는 원래 참 좋은 사람인데 이렇게 죽자고 싸우는 이유는 오로지, 하필이면 바가지 긁는 저런 인간과 결혼한 탓이라고 여겨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암울할 가능성이 높다. 내 친구들은 나의 성격적 결함을 굳이 지적해줄 정도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뿐이다.
-「감정과 이성」 p.44 사랑의 기초(알랭 드 보통)


결혼이 사랑의 종착점이 아니라 18세기 이후 어느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경제계급인 '부르조아'가 정서적 욕구와 현실적 한계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위해 '영원을 서약한 단 한 사람에게 합법적으로 투자하여, 그로부터 최대의 성과를 거두고자 갈망하기'라는 해석은 가히 충격적이다. 결국, 우리의 결혼 생활은 고된 양육과 상당량의 가사일이 부여된 또 하나의 '노동'이었던 셈이라니......


19세기 유럽의 위대한 두 소설 '안나 카레니나'와 '보바리 부인'의 삶이 경제적으로는 안정되어 있지만 사랑 없는 결혼 생활에 갇힌 두 여인이 자실함으로써 '서로 융화될 수 없는 요소들을 하나로 묶으려는 새로운 사랑 모델의 모순적 특징을 극명하게 드러낸 예'라고 한 해석도 쇼킹하다.


결혼생활이 안기는 실망에 대한 해결책으로 외도를 생각하는 것은 결혼이 우리 존재 자체의 실망에 답이 되어줄 거라는 생각만큼이나 미성숙한 것이다.
 -「외도의 어리석음」 p.138

어떻게 보면 우리가 갖는 '행복한 결혼'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희박한 꿈인가를 냉정하게 해부하고 있다. 여느 소설과 달리 특별한 스토리 없이 잔잔하고 밋밋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결혼에 대해 이처럼 명료한 통찰을 제공해 준 책이 없었다.

종종 냉소주의자들은 행복한 결혼은 신화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렇게 섣불리 치부하고 단언할 수만은 없다.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긴 해도, 궁극의 결혼은 분명 존재한다. 결혼이 우리의 소망에 부응하지 말아야 할 형이상학적인 이유 같은 건 없다. 다만 상황이 우리에게 몹시 불리할 뿐이다.
-「감정과 이성」 p.35 사랑의 기초(알랭 드 보통)


보너스로 육아에 대한 그의 섬세한 조언도 무척 큰 도움이 된다. 아이를 대하는 방식, 자녀의 양육 방식, 육아의 고달픔, 가장으로서의 중압감 속에서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큰 용기를 필요로하는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지 모른다. 작가의 말처럼 이것이 '진지하고 성숙한, 조심스럽지만 보다 희망적인 답이 되길 바랄 뿐이다.'


오죽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조차도 결혼에 대해서 "냉엄한 상호 사상(寫像)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고 표현했을까. 결국 결혼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환상보다는 스스로 어떻게 결혼을 통해 행복해질 것인가 하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 아닐까?


결혼에 대해 아직도 더 궁금하다면 알랭 드 보통이 친구들과 2008년 문을 연 '스쿨 오브 라이프(School of Life, 인생학교)'가 한국에서도 11월부터 강좌가 오픈한다니 신청해 보자. (http://midorisweb.com/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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