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의 '불륜'을 읽고
부부 관계란 모든 인간관계를 통틀어 가장 난해하고 어려운 관계이다. 부부 관계는 모든 인간 관계의 기초가 된다. 이런 부부 관계에 권태가 찾아온다면?
처음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은 점점 식어버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일상을 함께 하면서 공동양육자로 건조한 삶을 살아가는게 대부분의 결혼 생활이다. 예전부터 생각해온 것이지만 턱없이 짧은 사랑의 유통기한에 비해 평생(짧게는 30년에서 길게는 50년까지) 한 사람과 의리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가 말이다. (이 책에서는 결혼생활에서 섹스는 처음 오 년 동안만 재밌다고 했다. )
어느 날 문득 나에게 삶의 권태가 찾아온다면 어떻게 할까? 결혼생활이 권태로워질 때 찾아드는 것이 바로 '불륜'이다.
세계적인 거장인 파울로 코엘료의 27번째 책 ‘불륜’은 '키 173cm, 몸무게는 68킬로그램,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옷을 입은 명망있는 신문사의 인정받는 기자'라는 직업, '가장 부유한 스위스인 300인'에 매년 이름을 올리는' 능력있고 성실한 남편, 두 아이를 두며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족스런 삶을 살아가던 삼십대 여성 린다가 어느날 갑자기 고등학교 시절 남자친구였던 야코프를 다시 만나면서 겪는 사건이 줄거리의 뼈대를 이룬다.
어떤 나이가 지나면 우리는 자신감과 확신의 가면을 쓴다. 이윽고 그 가면은 우리 얼굴에 달라붙어 떼어낼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더이상 울지 않는다. 아무도 듣지 않는 욕실에서 혼자 울 뿐. 사람들이 함부로 보고 이용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본문 70쪽)
그녀는 전날 인터뷰했던 작가의 "행복해지는 것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삶을 열정적으로 살고 싶어요. 위험한 일이지요.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절대로 알 수가 없으니까요"라는 말에 마음에 균열이 생긴다. "결혼 이후 시간이 멈춰버렸다"고.
"당신, 행복해?"라고 묻는 야코프와 사랑에 빠지다니...정말 바보같다.
"당신 눈에 뭔가 있어. 훌륭한 남편에 좋은 직업을 가진 당신처럼 예쁜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슬픔이 보여. 거울에 비친 내 눈을 보는 느낌이었어. 다시 한 번 묻자. 당신 행복해?"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뇌에 빠진 영혼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믿기 힘든 능력을 지녔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비애가 서로 섞이는 것이다. (...)아무도, 심지어 나의 기막히게 멋진 남편도 내게 행복한지 물은 적이 없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삶의 우울, 권태, 절망을 느끼고 지금껏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느닷없이 말이다.
이제 섹스는 밤에만, 가급적이면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마치 양쪽 당사자가 합의한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상대방이 그럴 기분인지 아닌지는 묻지도 않고. 섹스가 뜸하게 되면 의심이 생길 테니 의식처럼 지켜나가는 것이 최선이다. (본문 173쪽)
이 책에서 가장 내 마음을 뒤흔든 것은 바로 이 문장. 삶에 대한 이런 통찰과 담담한 읖조림 정말 공감이 간다.
누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겠어?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사는 거지. 부모가 선택해준 대로 사는 거고. 아무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애쓰잖아. 사랑받고 싶으니까. 그래서 자기 안에 있는 가장 훌륭한 것들을 억누르며 살아. 빛나던 꿈은 괴물 같은 악몽으로 바뀌고. 실현되지 않은 일들, 시도해보지 못한 가능성들로 남게 되는 거지. (본문 191쪽~192쪽)
이 책을 읽으며 린다의 심리를 마음속 깊이 공감하고, 함께 울고, 기뻐하고, 성장하며 마침내 진정한 인생과 사랑의 의미에 대해 깨닫게 된다.
어른이 되면 우리가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모든 것 - 사랑, 일, 신앙-이 감당하기 버거운 짐으로 변한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뿐이다. 바로 사랑. 사랑은 굴레를 자유로 바꾼다. (본문 182쪽)
린다 부부와 야코프 부부가 파티에서 아슬아슬한 만남(대화)을 가진 후 남편의 배려를 눈치 챈 린다는 다시 사랑을 회복하고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온다.
사랑을 하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여야 해. 사랑은 우리가 어릴 때 갖고 놀던 만화경 같은 거니까. 똑같은 건 없고 항상 변하지.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 행복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고통받게 되어버려.(본문 303쪽)
남녀간의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과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고나면 “나는 아무런 미래가 없는 성(性)적 관계가 아닌, 진정한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약간이나마 공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