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것에 대하여
잠시 시간 되시나요.
누군가 늦은 밤 사무실에 홀로 남아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현수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꿉꿉한 흙내음이 났다. 이름을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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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는 어떨까요. 엄지.
엄지손톱만 한 플라스틱 화분에 물을 준다며 호들갑을 떨던 지원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현수에게 신난 표정으로 말했다. 지원은 고등학교 앞 짱구가 그려진 작은 뽑기 기계에서 원래는 키링을 뽑으려 했었다며 이렇게 작은 씨앗이 들어있을지는 기대조차 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유난스럽게 늘어놓았다. 현수는 그런 지원의 얼굴을 보며 그녀의 오른쪽 눈 밑의 작은 점을 응시했다. 얼핏 보면 알 수 없는, 자세히 봐야 보일만한 애매한 크기의 점이었다. 저건 일부러 찍은 것일까.
흙내음을 따라 모니터 옆에 놓인 주먹 두 개는 더 들어갈만한 화분을 바라보며 힘들었던 군시절의 행군과 팀원들과 헤어지게 된 날 술에 취해 나뒹굴던 놀이터를 떠올렸다. 무더운 여름 한가운데에서 무거운 군장을 메고 산길을 걸을 때에도, 투자를 받지 못해 프로젝트가 난항을 겪을 때에도, 결국 그 상황이 종료되고 새로운 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현수는 알고 있었다. 클라이언트의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들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순간들도 결국은 지나가게 되어있음을 현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예정되어 있는 모든 끝맺음의 허무함을 겪다 보면, 결국 조금 더 보듬고 신경 써야 하는 것은 그 끝맺음까지의 순간들을 함께 견뎌내 준, 버텨내 준 동료들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선고받는 ‘결과’, ‘아웃풋’, ‘산출물’, ‘성취’ 같은 것들에 조마조마하며 매달리기보다 옆 자리의 동료가 잘 지내고 있는지, 그들의 안녕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유일하게 스스로가 지켜내야 할 무언가일 것이라 현수는 굳게 믿었다.
잠시 시간 되시나요.
하지만 지원이 저 문장을 뱉었을 때 현수는 지난 3개월 동안 그녀 나름대로 구축한 관성으로부터 빠르게 이탈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의실로 가시죠. 목에 걸린 문장을 겨우 뱉은 순간부터 복도를 걸어가는 순간, 그리고 불을 켜고 의자를 빼서 앉는 그 순간까지 예상되는 그녀의 고민들에 대한 해결책을 뒤적였다. 의자에 앉아 눈 밑에 완고히 자리한 점을 지나 그녀의 눈을 마주했을 때, 현수는 그가 뒤적대던 해결책은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 이미 그녀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검토를 마친 뒤였다는 것을 직감했다. 짧은 침묵 끝에 지원은 입을 뗐고, 대화는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차분히 말을 이어가다 결국 눈물을 보였으며 종국에는 흐느꼈다. 엄지는 맡아주세요. 대화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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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자정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사무실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손바닥만 한 새파란 잎이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다.
새로운 이름이 필요해. 사무실을 나오며 현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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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운명이고 성공과 실패는 운이다’ 라는 말을 가운데 적어둔 뒤, 인연을 위아래로 들었다 놨다 반복하고 노력을 양옆으로 저울질한다. ‘이 사람하고는 여기까지인가 이것도 운명인 건가, 난 노력했는데 충분하지 않았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더 있긴 했나 아니 그래도’를 반복하는 일상. 그 어느 것 하나 익숙해질 줄 모른다. 익숙해질 수 있나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