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연애하지 않을 권리
우연히 위클리 매거진으로 연재중인 <연애하지 않을 권리>를 보게 되었다. 오히려 연애를 시작하고부터 왜 연애를 하지 않았던 시절을 창피하게 여겼는지 의문이 들었기에 이 글은 더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하나하나 읽다보니 너무나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리디셀렉트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는 금광이라도 발견한 것 마냥 신나게 읽어 내려갔다.
"우리는 누군가의 애인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표지에 적혀있는 이 문구가 어찌나 와닿던지.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적이 없긴 하지만 우리나라만큼 연애와 결혼을 강요하는 곳도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계속 솔로였던 내게 집안의 어른들은 남자친구를 얼른 사귀라고 했고 남자친구가 왜 없는지 의문을 가졌으니까. 주변 친구들은 모태솔로로 살아가던 내게 너무 눈이 높은 거 아니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고 미디어에서조차도 끊임없이 연애를 해야하고 사랑받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며 내보냈으니 말이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나 또한 연애를 못하는 현실을 씁쓸하게 바라봤다. 짝남이 좋아하는 화장법, 소개팅 필승 화장법, 남자친구에게 사랑스럽게 보이는 패션 등 수도 없는 연애 관련 콘텐츠들이 쏟아졌고 주류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소비를 이어나갔다. 겉모습이 달라지면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꾸미는데 집착하곤 했다. 이 잘못된 습관은 결국 자기 혐오로 이어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하면 환상 속의 연애를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막상 연애를 시작하니 환상과 실제는 달랐다. 연애를 하면 인생이 환하게 필거라는 착각이 잘못됐다는 걸. 연애라는 게 달콤함만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대신 내적 성장을 하는데 집중하고 혼자서도 잘 사는 연습을 하면서 조금씩 편해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700일 가량을 연애하자 주위에선 무자비한 참견이 치고 들어왔다. 젊을 때 여러명 만나봐야 된다는 말부터 남친이 정규직 취직했으니 너는 먹고 놀면 되겠다는 말. 거기다 이제는 시집가야 되겠다는 말까지.. 나를 사람으로 바라보기 보다 남자에게 속해있는 하나의 물건처럼 취급하는 느낌이었다.
4천 년 전부터 여성에게 씌워져 있던 모순적인 역할을 깨닫고 그로부터 탈피하는 것, 자아실현의 꿈을 남에게 의탁하지 않는 것, 자신의 경력에 부합하는 지위와 권력을 성취할 수 없게 투명한 유리창으로 가로막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 자신을 비롯한 다른 여성들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주한 위 문장은 나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인생을 더 멋지게 살자고 꿈과 야망을 크게 품고 살아가자고. 남자친구에게도 선언했다.
연애와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연애를 한다고 해서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할거라고 기대하지 말자. 내 인생의 구원자는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니까. 백마탄 왕자님같은 구시대적 서사에서 벗어나 스스로 백마를 탄 장군이 되자. 나도 당신도 할 수 있으니까.
어떤 타인이 나를 전적으로 책임지기에는 나는 너무 비상하고, 까다롭고, 총명하다. 누구도 나를 완전하게 알거나 사랑할 수 없다. 오직 내 자신만이 나와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