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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성 Oct 02. 2021

기차 탄 풍경

KTX는 낭만이 없다

   

 KTX는 도대체 재미가 없다. 도깨비 대동강 건너듯 살 같이 달려만 가니 풍경을 볼 사이가 어디에 있으며 그 짧은 사이에 무슨 재미난 얘기가 생길 것인가. 소란스럽고 느려 터진 고향의 기차여행은 낭만 가득한 삶의 드라마였다.      


첫 여행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첫 번째 기차여행은 아마도 내가 일곱 살쯤 되었을 때였다. 멀리 산굽이 쪽에서부터 긴 경적을 울리던 기차 불빛이 어둠을 가르며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나는 엄마의 손을 잡은 채로 바라보았다. 기차가 들어오며 휙 끼친 바람이 내 얼굴에 부딪힐 때 비릿한 쇳내가 풍겼다. 내 작은 가슴은 불안과 기대로 콩닥콩닥 달음박질하고 있었다. 불안이 저 거대한 무쇠 덩어리가 서지 않고 지나쳐 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데서 오는 것이었다면 기대는 드디어 평양으로 간다는 사실이 가져다준 것이었다. 평양이 어떤 곳인지는 아직 잘 몰랐지만, 동네 형들이 내가 평양으로 간다는 사실에 몹시도 부러워했기에 나는 그곳이 좋은 곳이리라 짐작했었다. 90년대에 들어서며 악화된 전력 사정으로 인해 평양까지는 기차로 며칠이 걸리는 ‘먼 길’이었다. 여행이 얼마나 걸릴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략 이틀에서 이주 사이로 여행 기간을 추산했다. 혹시라도 기차가 열심히 달려 일찍 도착하면 사람들은 감사했고, 1주일이 넘게 걸리더라도 받아들였다. 어른들에게야 길어지는 기차여행이 고될 수도 있었겠지만, 하릴없이 어린 나에게는 기차가 멈추면 멈추는 대로 좋았고 달리면 달리는 대로 좋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바라본 불덩이같이 떠오르는 시뻘건 태양의 모습이다. 동해는 마치 출하를 앞둔 용광로처럼 끓고 있었고 태양은 커다란 차창을 거의 채울 정도로 커 보였다. 평양 여행이라고 했지만, 평양 기억은 거의 사라지고 기차를 타고 지나치던 전경들만이 기억에 조금씩 남아 있다.      


 해리서 털모자

 내가 다시 기차로 여행을 떠난 건 12살 되던 해였다. 그전에 평양 여행 갈 때와는 모든 게 많이 바뀐 시점이었다. 철도 형편은 훨씬 더 나빠졌고 겨울이었으며 게다가 혼자였다. 소학교를 졸업한 나에게는 두 개의 선택이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시골의 작은 중학교에서 공부할지 아니면 부모님 슬하를 떠나 할아버님 댁으로 가서 제1중학교를 다닐지 선택해야 했다. 부모님은 나를 떠나보내기로 결정했고 덕분에 나는 1,000리 길을 홀로 여행하게 됐다. 음산한 겨울이었다. 천장이 높은 역전 대합실은 냉장고처럼 추웠고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웅크리고 앉아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틀이나 기다린 어느 아침에 도착한 기차는 거무칙칙했고 유리가 없는 창문에는 추위를 막으려고 임시로 막아놓은 비닐 박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얼굴에 걱정을 가득 담고 플랫폼에 서 계시던 어머니 모습이 삼삼하다. 열차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열차가 정차하는 역마다 내린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올라탔다. 어떤 사람들은 선반 위에 올라가기도 했고 일부는 기차 천장 위에 올라앉아 가기도 했다. 북쪽에 있는 할아버님 댁으로 가까이 갈수록 겨울은 더 깊어졌다. 열차가 힘겹게 달리는 밤마다 창문에 쳐놓은 박막이 귀 따갑게 울곤 했고 그때마다 나는 몸을 움츠렸다. 그래도 해리서 털모자가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전에 평양에 계신 친척이 외화 상점에서 샀다며 선물해준 것이었다. 너무도 멋진 모자여서 친구들은 ‘딸라 모자’라고 불렀다. 까만 털에서 좌르르 윤기가 흐르던 부드러운 모자였다. 며칠 간의 여행에 지쳐서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모자가 없었다. 갑자기 설움이 북받쳤다. 주변 사람들이 너무 미워졌고 집으로 가고 싶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낯선 사람들과 서로 몸을 맞대고 며칠간을 함께 보내는 건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다. 기차가 허허벌판에 전기가 오기를 기다리며 서 있는 동안 서로는 서로에게 온기를 전해주는 난로가 된다. 또 저린 다리를 마음대로 펼 수 없을 때, 끈적하고 냄새나는 잔등을 내 코 앞에 들이대며 코를 골 때 옆 사람이 싫어진다. 그렇게 옆 사람에 감사하고 싫어하기를 반복하며 며칠을 부대끼다 보면 그들이 문득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그들과 헤어질 때쯤이면 서로가 어디서 어디로 가고 있으며 왜 가는지, 막내딸 이름까지도 알게 된다. 그해 2월 22일에 시작한 여행은 3월 8일에 끝났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나는 해리서 털모자를 잃어버린 대신 여행을 통해 갑자기 철이 들어버렸다.      


열차 피크닉 

 대학생이 된 이후로 기차여행을 할 기회가 부쩍 많아졌다. 여건도 많이 좋아졌다. 지정 좌석 제도가 도입되었고, 새로운 객차들로 교체가 되어서 더 이상 깨진 유리창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전기사정은 여전히 좋지 않아 여행 기간이 단축될 가망은 없었다. 집에서 먼 대학교에 가다 보니 한 달밖에 안 되는 방학의 절반은 길에서 보내야 했다. 기간이 길다 보니 도중 식사 준비는 여행 준비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게다가 기차여행에서 함께 가는 사람들 사이에 음식을 나누는 건 일종의 문화처럼 자리 잡았다. 음식을 많이 준비하는 게 능사는 아니었다. 겨울에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음식이 쉽게 변하는 여름에는 그럴 수 없었다. 처음 하루나 이틀 식사는 도시락으로 준비하고 그 이후의 식사는 국수나 빵 같은 건 음식으로 준비한다. 열차는 한쪽에는 3명씩 6명이 마주 보도록 배치되었고, 사이에는 접었다 펼 수 있는 작은 식탁이 설치되었다. 식사 시간이 되면 그 위에 서로가 준비해온 음식들이 펼쳐지고 아직은 서로 낯선 사람들 사이에 열차 피크닉이 시작된다. 누가 시작 사인을 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식사하는 시간은 서로 어슷비슷하다. 특히 저녁 시간에는 열차의 여기저기서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권커니 잣거니 술잔들이 오가고 사람들의 이야기보따리가 풀리기 시작하면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이 된다. 인터넷이 없는 사회에서 열차는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 모두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오락회, 해방공간의 축제

 술이 좀 거나해지면 누군가가 사람들을 향해 “여러분, 오락회 어떻습니까?”하고 크게 외친다. 그러면 합창이라도 하듯 여기저기서 “좋습니다!!”하는 취한 목소리들이 울린다. 오락회는 일종의 ‘장기 자랑’이다. 매 식탁마다 대화를 주도하는 이야기꾼이 있다면 매 열차마다는 오락회를 주도하는 오락회 책임자가 있다. 일종의 엠시인데 타고난 입담으로 대중의 환호를 유도하고 객차 전체를 오고 가며 끼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 분위기를 북돋는다. 객차 하나에는 100개 정도의 좌석이 있는데, 오락회가 시작되면 모두가 출연자이고 모두가 관객인 참여형 콘서트장으로 화한다. 오락회 소식이 퍼지면 다른 객차에서도 구경꾼들이 몰려온다. 일단 지목된 사람은 최선을 다해 자신이 가진 최고의 장기를 선보인다. 별의별 예상치 못한 기교들과 퍼포먼스들에 사람들이 감동하고 즐거워한다. 오락회가 진행되는 열차는 일종의 해방공간이다. 모두가 자신을 활활 태워 열정을 분출하는 이때만큼은 무엇이든 허용된다. 남조선 노래를 맛깔나게 부르고 김 씨 일가를 찬양하는 노래를 마음대로 개사해서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감 있는 이성에게 함께 춤을 추자고 요청하는 사람도 있다. 열차의 치안을 관리하는 승무 안전원이나 경무원들도 이때만큼은 모른 척 눈을 감는다.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점에 기차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오락회 때 사람들과 떼창을 부르던 생각이 난다. “마음 어진 백성들이 어이 칼을 들었나, 양반 놈과 한 하늘이고 정녕 살 수 없었네”로 시작되는 곡인데 북한 영화 “림꺽정”의 주제가로 당시 북한 정부에서 해당 곡을 금지곡으로 정했었다. 그 비장함 속에서 흐르는 반항의 분위기를 느끼며 전율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때로는 내가 겪었던 일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기차 추억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 갈피들에 끼워진 사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삶의 처절한 상흔들이 아문 자리에서 낭만이 손짓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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