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엘리트 출신 탈북민들의 남한 정착 현황을 소개한 기사를 보았다. 2019년 6월 탈북한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대리대사나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대리대사 등 북한 외교관 출신 인사들이 머물 직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리고 북한 법조계, 학술계에서 검사, 교수로 종사하던 엘리트들이 한국에서 3D 업종을 전전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실제로 몇 해 전에 의사 출신 탈북자가 건물 외벽을 청소하다가 떨어져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이러한 현실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남한사회에서 달라진 북 출신 엘리트들의 위상과 대우 측면이고 두 번째는 탈북민 정착의 현주소이다. 과거의 교육 배경이나 경험이 새로운 사회 적응의 자산이 되는 엘리트 층의 실태가 이러하다면 일반 탈북민의 경우는 더 말할 여지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북 출신 엘리트 계층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집단의 관점과 온도차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북한 출신 엘리트는 누구인가? 우리는 먼저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누가 엘리트인가. 일반적으로 엘리트라고 할 때 그 일반적인 정의는 수적으로 소수이고, 경제적으로 부유하며 사회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으면서 특정한 영역에서 대중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 혹은 집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북한 출신 엘리트의 경우 이 개념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북한 정권을 유지하는데 적극적으로 이해관계를 가지는 노동당 정치 엘리트 혹은 국가기관 및 군 간부로 한정해야 할까. 혹은 적어도 북한 정권으로부터 이익을 받았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북한 정권의 상황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고 기술간부, 사무원, 인테리층 관료들까지 포함해야 할까. 남한에서 북한 출신 엘리트라고 인정되는 사람들은 적어도 북한에서 고등교육을 받았고, 북한 노동당 및 정부의 요직에서의 경험으로 인해 남한으로 넘어 올 시에 북한 정권에는 손실이 되고 남한 정부에는 득이 되는 그러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존재들은 환영의 대상이었다. 특히 남북한이 체제경쟁을 열을 올리던 시절에는 이러한 사건 하나하나가 체제 승리를 내외에 과시할 수 있는 기회였고 정보당국의 입장에서도 큰 횡재가 되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이들을 '귀순용사'로 불렀다. 이들은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고 거액의 보상금과 주택 무상 공여, 직업 알선 등의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동구권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남북한의 체제경쟁이 더 이상 무의미해지면서 정권에 따라 북 출신 엘리트들의 운명은 갈렸다.
탈북 엘리트 자아 지난 시기 북한 엘리트들의 탈북 동기는 정치적 이유가 가장 컸다. 북한 체제의 미래에 대한 회의, 무시무시한 숙청의 공포, 자유를 향한 갈망 등이 엘리트들이 북한을 등지고 남한을 선택하는 주요 동기였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정치적인 이유 이외에도 더 나은 삶의 질이나 자녀들의 교육 등 새로운 동기가 엘리트들의 탈북을 추동한다. 인터뷰를 통해 자녀의 교육문제가 탈북을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힌 태영호 국민의 힘 의원이 좋은 사례다. 일반적으로 탈북 엘리트들은 남한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기대심리를 갖고 있다. '귀순용사' 시절의 대우에 대한 무성한 소문의 영향도 있겠지만, 자신들이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전문적인 경험이 어떤 방식으로든 남한에서 쓰일 수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기대다. 그건 제쳐 두고라도 이들 탈북 의도의 기저에는 자유시장체제의 경쟁에서 그들이 갖고 있는 배경이나 경험을 통해 탈북자 집단 내에서 상대적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일종의 자신감도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남한의 능력주의 사회 맥락에서 그들의 '쓸모'는 철저히 재검증된다. 그들의 상징적 가치, 실질적, 정보적 가치 외에도 이들의 '쓸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남한 정권의 성향이다. 북한 체제에 있어서 '눈엣가시'인 고위급 탈북인사들의 존재에 당혹감 느끼는 정권에서 그 '쓸모'는 대폭 감소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였다. 역대 최고급 엘리트의 비운은 탈북 엘리트들의 자아에 음울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정권의 시선 정권은 엘리트들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시장이다. 우선 북한 정권이 특정 엘리트의 탈북에 대해 보이는 반응은 해당 인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북한 정권은 의도치 않게 탈북 엘리트에게 남한 혹은 국제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 '자격증'을 발급해 주는 셈이다. 북한의 반응이 민감하면 할수록 '자격증'의 가치는 더 높아진다. 한국 정부는 그 '자격증'의 가장 큰 구매자이다. 미국과 일본, 서방 국가들에게도 그 '자격증' 소지자는 매력적이지만 북한에 대한 가장 큰 이해관계자는 역시 남한 정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태도에 따라 이 시장은 쉽게 불경기에 빠져들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장은 불경기의 정점에 있다. 앞서 언급한 기사의 내용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 정권과 대화를 시도하려는 정부에 있어서 탈북 엘리트의 존재는 말 그대로 '골칫거리'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꼭 어쩔 수 없는 일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우선 현 정부 이상으로 남북 교류가 활발했던 이전 정권들에서도 북 출신 고위 인사들은 국정원 산하의 연구기관들에서 자신들의 역할로 가치를 증명해왔다. 또한 탈북 엘리트들은 그들 스스로가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설사 그들에게 조용히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해도(직접 보고를 하지 않는 이상) 북한에서 어찌 알 것인가. 문제는 정권의 의지이지만 현 정권에 오히려 정반대로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모습이다. 더구나 작년 6월 16일 개성공단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폭파를 정점으로 남북관계의 경색 국면은 역대 최악의 수준이다. 결국 게도 구럭도 다 잃은 셈이 되었다. 그 와중에 북한 정권만 웃게 생겼다. 탈북민 커뮤니티의 시선 탈북민 커뮤니티에서 북 출신 엘리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미묘하다. 사실 일반 탈북민에게 위에서 말한 기사의 내용들은 별로 놀라운 일들이 아니다. 현 정권 들어 위축된 탈북민 커뮤니티의 심리는 지난 2019년 7월 탈북민 모자 아사사건을 통해 더욱 침통해졌다. 뒤이은 그해 11월 탈북청년 강제북송 사건은 탈북민들로 하여금 헌법이 부여한 국민의 지위에 의구심을 갖게 한 사건이었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덮친 지난해 탈북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한 층 더 심해졌고 코로나 블루가 커뮤니티를 배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현장과 물류센터를 전전하면서라도 일자리를 찾는 것은 많은 탈북민들에게 일상일 뿐 아니라 그마저 일부 탈북민들에겐 동경의 대상이기까지 하다. 내가 해당 기사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을 때 일부 탈북민들은 그것이 왜 기사거리인지 의아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 탈북민은 엘리트 탈북민에 대해서만 주목하는 데 대해 화를 내기도 했다. 일반 탈북민들의 눈에 북 출신 엘리트 계층은 누군가의 표현대로라면 북한에서 '떵떵 거리며 잘 살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돌아가는 특별한 기회는 커뮤니티 차원에서 공정과 정의의 문제로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엘리트 출신의 탈북자들은 자신들의 능력과 경험 자산에 기초해서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되고 정착에도 더 빨리 성공하는 것이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사회의 실질적 구성원으로서 정치적 시민권을 얻은 엘리트들이 탈북민 계층의 이익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한 권리, 혹은 특혜가 스스로를 위해 사용되는 경향이 있지만, 한편에서는 그것을 커뮤니티 차원의 의무로 인식하는 엘리트 출신의 인사들도 있다. 이민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낙수효과가 한 집단이 새로운 사회에 녹아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낙수효과'를 누릴 기회마저 차단되고 있다. 문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현 정부는 탈북민 문제에서 만큼은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 듯하다. 이전의 정권들에서 탈북 엘리트들에게 주어졌던 기회를 제거하는 것을 통해 평등과 정의, 공정을 실현하고 있으니. 북한 주민의 시선 한국 드라마 본방이 끝나기 바쁘게 평양의 아줌마들 사이에 회자되고 한류가 젊은이들의 패션을 선도하는 시대이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와 같이 남한에서 탈북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그런 콘텐츠들을 통해 남한에서 탈북민들의 처우를 파악하고 나아가서 만약 통일 시에 자신들이 받을 대우를 점쳐보는 것일 수 있다. 그들에게 북 출신 엘리트들이 남한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는 미래를 판단하는 중요한 시금석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북한 엘리트 계층에 있어서 이러한 이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이다. 자신들과 처지가 비슷했던 사람들이 한국에서 받는 대우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태영호 의원은 북한을 가장 빨리 확실하게 바꾸는 방법은 북한 엘리트 계층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변화의 가능성을 가장 많이 갖고 있고, 변화의 수단까지도 갖고 있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매우 중요하다. 2014년 드레즈 덴 선언이 공개됐을 당시 나는 북한에 있었다. 당시 북한 '노동신문'은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온갖 욕설로 드레즈 덴 선언을 비방했다. 하지만 그 상스런 논설을 통해 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직접 탈북자에 대해 언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었다. 탈북을 한창 준비하고 있던 때여서 그 논설에 실렸던 그 한 줄이 주는 의미는 엄청났다. 그걸 읽고 주변의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남한에 대한 확신을 공유하던 기억이 있다. 자료에 의하면 실제로 그즈음에 북한의 해외 주재 공관 입국자 수는 2013년 8명에서 2014년에는 18명으로 그 이듬해 해에는 20명으로 늘었다. 그런 의미에서 21대 국회에 북한 출신 국회의원이 2명이나 나온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매우 고무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 정부의 탈북민 정책에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탈북 엘리트들이 많은 것들 뒤로 하고 올라탄 배에서 그들의 운명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또 그들의 운명을 지켜보는 수많은 시선들은 또 어떻게 바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