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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Jan 02. 2024

60. 밤에 보는 특별한 만남

메트로폴리탄의 야간 관람

관람객이 모두 퇴장한 거대한 뮤지엄의 밤은 어떤 모습일까?


영화 '박물관은 살아 있다'에서 처럼 작품 속 인물이나 동물들이 텅 빈 박물관 안을 배회하며 저들 만의 속삭임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럴 리가 있겠어?' 하면서도 뮤지엄으로 가는 밤 나들이는 왠지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거 같은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야간 개장 하는 날의 메트로폴리탄 입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은 매주 금, 토요일 야간 개장을 한다. 

주중에는 저녁 5시까지, 야간 개장일은 밤 9시까지 거대한 뮤지엄을 오픈한다. 


뮤지엄의 방대한 작품들 감상으로 늘 시간에 쫓겼던 경험자들은 가능한 야간 개장일을 택해 방문해 보려 하지만 짧은 방문 일정을 가진 대다수의 이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야간 개장이 주는 혜택은 꼭 작품 감상 시간의 연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채광이 사라지고 조명이 켜진 뮤지엄은 묘한 느낌으로 관람객들을 품에 안기 때문이다. 


혹자는 예술품의 진가는 자연채광 아래서 봐야 한다고 하지만 어느 쪽이던 보기에 좋은 것이 아직은 좋다.

같은 장소, 그러나 주야에 따라 다른 느낌의 전시실이 된다.

야간 관람은 낮의 복잡함과 줄서기등에서도 조금은 해방될 수 있다.


상대적 호사를 누리며 작품 감상에 몰입할 수 있으니 거대한 뮤지엄의 야간 개장은 우리 같은 소시민 아트 러버(Art Lover)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의 시간이 되어주곤 한다.


마치 내 집의 거실에 걸어 놓은 작품을 감상하듯 여유롭게, 넉넉한 마음으로 거장들의 작품을 하나씩, 하나씩 음미하다 보면 때론 그 큰 전시실에 혼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마음이 부자가 되는 시간이다.

혼자 보는 전시실
고흐와의 독대도 가능하다.


가끔은 영화에서나 볼 듯한 드레스 차림으로 주말 저녁을 뮤지엄에서 보내려는 파티족들도 만날 수 있다. 

단순 식사가 아니라 은은한 음악을 연주해 주는 트리오와 수많은 명작들을 옆에 두고 하는 저녁 시간은 웬만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을 듯싶다.

그들은 작품 감상보다는 뮤지엄 카페와 친지들과의 수다(?)에 더 관심이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카페 앞의 대기줄은 낮 시간보다 오히려 더 길다. 

Petrie Court Cafe 앞에 길게 늘어선 대기줄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좋아하는 작품 앞에서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마네의 올랭피아 앞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

낮 시간 관람 같으면 시야를 가리는 관람객들의 뒷 모습에 짜증이 날 만도 한데 밤 시간 관람은 보는 이의 마음도 여유롭게 만드나 보다. 

작품을 배경으로 한 그들의 뒷 모습이 멋 스럽게 까지 보이니 말이다.


한적한 전시실의 의자에 편하게 앉아 마치 자신이 미술평론가라도 된 듯 작품에 대해 아는 정보를 모두 쏟아내고 열변을 토하는 모습들도 정감 있게 보인다.

엘 그레코 작품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관람객들

친구와 도란도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여유를 가질 수도 있고 아니면 조용한 전시실에 나 홀로 관람객이 되어 대가들의 작품을 모두 독차지하는 커다란 행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으니 거대한 뮤지엄의 야간 관람은 여러 모로 우리 에게 많은 기회를 주는거 같다. 

'마네, 드가전' 전시실을 독차지한 관람객

그러다 보면 '이제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시간'이 어느새 다가오고.


발길을 돌리기 아쉬워 좋아하는 작품 앞에서 멍 때리기를 하다 보면 이러다 뮤지엄 문이 닫히면 어쩌지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워낙 큰 뮤지엄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싱거운 생각에 발길을 재촉하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그 시간에 입장하는 이들도 있다. 

지금 이 시간에 들어와서 뭘 하려는 걸까? 

아마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들이 아닐까 싶다.

뮤지엄 클로징 타임에 2층 전시실로 유유히 입장하는 관람객들

얼마 전 메트로 폴리탄의 전시실 안내를 맡았던 이가 자신이 보는 뮤지엄에 관한 감상을 소소하게 적은 책이 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패트릭 브링리(Patrick Bringley)가 쓴 'All the Beauty in the World'가 바로 그 작품이다.

패트릭 브링리(Patrick Bringley)가 쓴 'All the Beauty in the World' 표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눈으로 메트로폴리탄의 거작들을 보면서 저자가 느끼는 그만의 감성을 부담 없이 적어 낸 것이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는 형의 죽음이라는 큰 슬픔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자포자기할 뻔했으나 수많은 예술품들과 교감하면서 인생을 다시 살아낼 희망을 가지게 된 본인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예술 작품 감상의 문턱은 그것을 보고 느끼는 관람자인 나에 의해 결정된다. 

작품에 대한 감흥은 오로시 나의 몫이니까 말이다.


클로징 타임에 뮤지엄을 나서는 찐 팬들


거대한 박물관의 야간관람은 자연 채광이 사라진 조명아래 좀 더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가 아닐가 싶다.

밀리거나 기다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투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널찍한 전시실에 가끔은 나 홀로, 많아야 2-3명이 운동장 같이 큰 전시실을 공유하는 큰 혜택을 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밤늦은 시간임에도 서로 얼굴을 알아보고 가벼운 눈인사를 나눌 수 있는 낯익은 얼굴들과 마주 칠 수 있는 것은 그들과 내가 같은 이유로 야심한 시간에 수시로 이곳을 방문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를 때마다 가볍게 흥분되는 메트로폴리탄 그레이트 홀의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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