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여신 '오로라(Aurora)'.
'새벽'이란 뜻의 라틴어로, 라틴어로는 '아우로라'라고 읽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에오스(Eos)'라고 부른다.
'오로라', '아우로라', '에오스' 모두 동일 여신이다.
밤의 장막을 걷고 아침을 여는 새벽의 여신인 '오로라'는 밤의 장막을 연보랏빛으로 물들이며, 태양신을 인도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아마도 이런 모습의 여신을 가장 잘 묘사한 작품 중 하나가 '귀도 레니(Guido Reni)'의 이 프레스코화 일 것이다.
로마의 유명 가문 '보르게제(Borghese)'가 지은 '팔라비치니-로스피글리오시 궁전(Palazzo Pallavicini-Rospigliosi)'의 천장화로 그려진 '귀도 레니'의 1614년 작품 'L'Aurora' 다.
그다음으로 자주 그려지는 여신의 모습은 미청년(?)과 함께 그려지는 모습이다.
'오로라'와 미청년 '케팔로스(Cephalus)'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사랑의 여신 '비너스'가 자신이 연모하는 전쟁의 신 '마르스'를 '오로라'도 연모한다는 것을 알고 '오로라'에게 저주를 내렸다고 한다.
그녀가 사랑하게 되는 인간 젊은이는 모두 불행해질 것이라고.
그 희생양이 미청년 '케팔로스'다.
'비너스'의 저주로 그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를 창으로 죽이게 된다는 야속한 신화의 이야기다.
작품 속의 '오로라'는 여신이기에 아름답고 신비롭게 표현되곤 한다.
그런데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오로라는 작품 속 그녀의 이미지 보다 더 신비로우니 가히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류의 푸른색 사진을 보면 '음! 오로라~'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제는 많이 볼 수 있는 사진이다.
누군가는 '힘들게 뭐 먼 길을 가느냐. 집에서 편하게 잘 나온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되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도 한때는 '그럼~'하면서 이런 의견에 동감하곤 했었다.
공연히 시간과 돈 쓰고 몸도 힘든데 편히 보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런 유혹에 빠지고 싶은 건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직접 가서 보고 나니 대자연이 만들어낸 이 작품은 직접 눈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대가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 일부러 뮤지엄을 찾아가고 어떤 경우엔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는 이유와 같은 이유다.
더구나 이 작품의 작가는 범접할 수 없는 초월적인 '대자연'이다.
물론 사람마다 의견차가 있으니 '꼭'이란 말을 할 순 없겠지만 그것을 표현할 단어나 마땅한 수식어가 딱히 떠오르질 않는 걸 보면 이 작품이 주는 임팩트가 어느 정도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싶다.
오로라가 과학적으로 어찌 발생하는지 대충 공부하고,
우리가 가는 옐로나이프 지역은 겨울 날씨가 영하 20도에서 30도 사이를 우습게 기록한다는 알고 싶지 않은 날씨 정보가 부담은 되었지만,
나사(NASA)가 정한 지구상에서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최고의 위치라는 설명과 2024년과 2025년은 20년 만에 태양 활동이 가장 활발하여 선명하고 환상적인 오로라가 관측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기사까지 읽고 나니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곳에 가기만 하면 으레 오로라를 만나는 줄 알고 보고 싶은 마음만 가슴 한가득 안고 떠난 먼 길.
그러나 과연 내 앞에 오로라의 장관이 펼쳐 질지는 오직 하늘의 뜻이란 걸 도착한 순간 이미 며칠째 머물고 있던 여행객들의 경험담을 통해 실감하게 되었다.
며칠을 머물고 있지만 아직 오로라를 보지 못했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막 도착한 여행객의 부푼 꿈에 찬물을 끼얹기에 충분했다.
정말로 운 좋게 대규모로 오로라가 발생하면 '서브스톰(Substorm)'이라 불리는 장관도 연출된다는데 그 정도까진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볼 수만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만 올려다보던 이에게 오로라는 그래도 맛보기를 해주는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오로라'를 처음 대면하던 날의 흥분은 지금도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신비로움은 왜 '오로라'를 '신의 영혼'이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하늘의 신들이 춤이라도 추듯이 순간순간 변하는 신비로운 자태는 말 그대로 보는 이를 '얼음'으로 만든다.
하늘 전체가 배경이니 '천상의 커튼'이라 부르는 것도 당연하지 싶다.
그냥 드리워진 커튼이 아니라 마치 춤이라도 추듯이 바람결에 살랑살랑 나부끼는 커튼이다.
밤하늘이 좁다며 그려내는 신들의 대작은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입에서 가는 탄식의 소리만 만들어 낼 뿐 다른 그 어느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첫 대면치고는 꽤 훌륭한 만남인 듯했다.
며칠을 오로라를 만나지 못했다는 여행객들은 마지막 날 이 만남으로 아쉬움을 덜게 되었다고 만족해했다.
만일 며칠 후 벌어진 오로라의 향연을 직접 안 보았다면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정도였다.
대박은 4일째 터졌다.
오로라 중에서도 한 달에 한번 정도 만날 수 있다는 강한 놈을 만났다.
한 달에 한 번이라고?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건가? 할지 모른다.
우리가 오로라를 보기 위해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일주일 정도인걸 생각하면 한 달에 한 번의 확률이 나의 일주일 안에 벌어진다는 것은 장담하기 어렵다.
이 만남을 갖고자 몇 년을 벼르고 학수 고대했던 이에 대한 배려랄까 그것을 단 4일 만에 만나게 되었으니 '꿈은 이루어진다'를 되뇌지 않을 수 없다.
변화무쌍하게 넓디넓은 하늘을 이곳저곳 누비고, 마치 신들의 축제라도 열린 양 춤을 추듯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가는 무엇이 급한 지 오래 머물지 않고 사라졌다가 다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밤하늘을 거대한 캔버스로 신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작품들의 향연이었다.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눈의 깜빡임 조차 아까운 시간이었다.
잠시 숨을 고른 하늘이 '또 보여 줘 볼까?' 하고 마음을 정해야만 다시 볼 수 있는 하늘에 그리는 신들의 그림.
많은 이들이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황홀한 작품들을 하나라도 더 카메라에 담기 위해 분주한데, 어떤 이들은 아예 넋을 놓고 탄성만 지르고 서 있다.
이런 장관을 어설프게 카메라에 담느라 아까운 장면을 놓칠 순 없다는 듯이.
이런 신비스러운 하늘의 작품을 핀란드 사람들은 '여우불(레본툴리:revontulet:foxfire)'이라 부른다고 한다.
신비롭기도 하고 '여우불'이라는 표현이 예쁘다.
그들의 민담에는 꼬리에서 불꽃을 만드는 여우가 나오는데 이 여우의 꼬리에서 불꽃이 튀어 만들어지는 게 오로라라고 생각한단다.
그런가 하면 죽은 조상들의 영혼이나 요절한 아이들의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지역도 있고 오로라는 맑은 날 나타나기 때문에 좋은 날씨를 예보하는 정령들이 나타난 것이라 보는 해석도 있다고 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믿기지 않는 광경이 만들어낸 여러 가지 해석들이다.
멋진 '오로라'를 부르는 또 하나의 이름은 '오로라 보레알리스(Aurora Borealis)'다.
'북극광(Northern Lights)'이란 뜻으로 새벽의 여신 '오로라'와 그리스어로 '북쪽'을 의미하는 '보레아스(Boreas)'를 합쳐 만들어진 단어다.
신화에서 '보레아스'는 북풍의 신으로 새벽의 여신 '오로라'의 아들이다.
작품 속에 '오로라'는 매우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여신으로 주로 그려지는 반면 '보레아스'는 큼직한 날개를 달고 풀어헤친 머리를 하고 있는 거세보이는 남신의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신화 속에서 그는 아테네의 아름다운 공주 '오레이티아(Oreithyia)'를 연모하지만 구애에 실패하자 그녀를 납치하게 되는데 주로 이 장면이 그려지곤 한다.
신화 이야기로 단골 주제라 날개 달린 남자가 여자를 납치하는 장면이라면 보레아스와 오레이티아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로라 보레알리스'는 특별히 북반구에서 볼 수 있는 '오로라'를 지칭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오로라의 아름다움은 추운 날씨만 아니라면 새벽의 여신 '오로라'의 모습에 더 어울리지 싶다.
그러나 인간의 작품과 자연의 신비로운 작품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아닐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나 눈앞에 펼쳐지는 하늘의 몽환적인 그림에 푹 빠졌던 순간은 지금도 현실감이 없다.
무엇이던 귀하면 특별하게 느껴지는 법.
누구는 자기 집에서 이 멋진 광경을 보았다고도 하지만 무슨 일이던 그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설렘으로 가득 찼던 여정.
떠날 때 보다 더 큰 설렘을 안고 돌아온 걸 보면 신들이 하늘에 펼쳤던 춤의 향연은 아마도 꽤 오랜 시간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