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문'이라 불리는 동굴
이걸 보러 리스본에서 자동차로 포르투갈 남부 '베나길(Benagil)'로 달렸다.
처음 사진을 본 친구가 '어~싱크홀이 하늘에 생겼네?'라고 했다.
'이걸 그렇게도 보는구나.'
늘 사물을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보는 친구라 같이 하는 여행은 예기치 못한 소소한 반전들로 재미를 더해 준다.
우리는 이의 없이 이번 여행의 'must see'로 이곳을 정했다.
리스본을 출발하여 무척 심심한 고속도로를 3시간여를 달렸다.
가는 길이 매우 단조롭다.
멋진 풍광이 있는 것도,
눈이 번쩍 뜨이는 광고 판이 있는 것도 아닌 그저 밋밋한 들판과 나지막한 구릉의 연속이었다.
지루함에 '공연히 이걸 보러 가자 했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간
그래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가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그럭저럭 3시간가량을 달려 묶기로 한 빌라에 도착하니 오기를 잘했다 싶다.
정말 말 그대로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그 하늘을 배경으로 곱디 고운 예쁜 분홍을 맘껏 발산하고 있는 꽃들의 향연.
유럽 남부에 오면 많이 보던 바로 그 꽃이다.
친구가 '이쁘다고만 하지 말고 이번엔 이름이라도 알고 가자.' 한다.
AI를 검색해 보니 '부겐빌레아(Bougainvillea)'라는 식물이다.
꽃처럼 보이는 분홍잎은 실제로는 '잎'인데 작은 꽃봉오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작은 꽃봉오리가 안에 있는 것을 보더니 '참 좋은 세상이야.'라며 친구가 엄지 척을 한다.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고.
그래서 '유독 남부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었구나.' 했다.
오늘의 목적지 '하늘의 싱크홀'로 가기 위해 서둘러 보트투어를 예약한 '포르티마우 해변(MARINA PORTIMAO)'으로 갔다.
석회암 지형의 해변 절벽으로 둘러 쌓인 해변가는 생각보다는 덜 부쩍였다.
늦가을이라 피크 시즌을 살짝 비켜간 덕이 아닌가 싶었다.
'하늘의 싱크홀'을 가려면 보트를 타거나 카약을 타거나 스탠드업 패들보드(SUP)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수영(?)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즉, 바다를 통해야만 내부를 볼 수 있다는 거다.
우리를 태울 보트 옆으로 많은 이들이 카약 탈 준비를 여유롭게 하고 있다.
보트 승선을 기다리던 연배가 있어 보이는 커플이 카약으로 바꿀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가 너무 몸을 사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드는데, '초보도 할 수 있다.'고 보트 선장이 무심하게 한마디 툭 던진다.
그러나 우리는 과감히 유혹(?)을 뿌리치고 예정대로 보트에 올랐다.
아가 둘을 데리고 온 부부와 카약을 고민하던 나이 지긋한 커플이 동승했다.
막상 바다로 나가보니 보기보단 파도가 거세었다.
잔잔한 듯 보여도 대서양 바다였다.
잘한 결정이었다.
신나게 보트를 타고 가는데 이 동네도 '코끼리 바위'가 있다.
처음 이런 바위를 프랑스의 '에트르타(Étretat)'에서 보았을 적엔 감동의 물결이었다.
여러 인상파 화가들이 그린 '코끼리 바위'를 본 후에 실물을 접견했던 터라 감동이 두 배 세 배로 증폭되었던 거 같다.
재미있는 것은 모네의 그림 제목은 'The Manneporte near Étretat'다.
직역하자면 '문 손잡이'다.
그들 눈엔 그렇고 우리 눈엔 코끼리다.
그러나 이제는 '흠~ 여기도 코끼리네.' 하며
'석회암 지형 해안가에는 코끼리 바위가 많아~' 하면서 친구와 고개를 끄떡일 정도의 여유가 있다.
그런데 이곳엔 한술 더 떠 '악어 바위'도 있다.
석회암 지형인 '베나길' 해안은 파도의 침식 작용으로 기기묘묘한 절벽과 동굴, 바위들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 많아 보는 재미가 솔솔 하다.
보트 탄다고 멀미약까지 먹은 친구는 멋진 경관에 넋이 나가 멀미를 느낄 경황도 없이 너무 신나 버렸다.
'하늘의 창', '천국으로 가는 문'등 많은 멋진 수식어로 불리는 우리의 목적지 '하늘의 싱크홀'은
동굴 위쪽에 뚫린 거대한 구멍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이 가히 '천상의 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멋진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것도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 맞나?'
너무 멋진 광경에 흥분해서 물으니,
위를 올려다보느라 눈도 못 떼면서 친구가 혼자 말처럼 중얼거린다.
'당연하지!'
그야말로 사진보다 실물이 훨 났다.
자연의 거대한 작품은 조그만 보트를 타고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잊지 못할 광경을 보여주었다.
한 배를 탄 동승자들은 서로서로 인증샷을 찍어주면서 예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모두 환하게 웃음을 주고받고.
웃다 말고 친구가 '저 위에 조그만 건 사람?' 한다.
정신 차리고 보니 정말 조그맣게 사람이 보인다.
그런 우릴 보더니 보트 선장이 동굴을 밑에서 보았으니 위에서도 보고 가란다.
'저것이 천국으로 가는 문이면 위는 천국?'
친구가 묻자 선장은 씩 웃으면서 '천국만큼 아름다워.'라고 한다.
선장이 말하는 그곳은 '세븐 행잉 밸리 트레일(Seven Hanging Valleys Trail)'로 유럽 최고의 하이킹 코스 중 하나로 뽑히는 곳이다.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7개의 계곡에는 숨겨진 해변들이 자리하고 있다.
시작점인 '마리냐 해변(Praia da Marinha)'을 출발해서 해변의 석회암 절벽 위를 끝없이 펼쳐지는 파노라마 풍경을 보며 걷는 편도 6km에 이르는 코스로 '발레 센티아네스 해변(Praia de Vale Centianes)'까지 가거나 아니면 마지막인 알판지나(Alfanzina) 등대까지 걷는 코스다.
걷다 힘들면 중간에 빠져나올 수도 있고 끝까지 갔다면 우버(Uber)나 볼트(Bolt)등 택시를 이용해 목적지로 가면 된다.
트레킹 중간에 '베나길 동굴'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보트에서 올려다본 곳을 걸어서 이번엔 내려다본다.
그야말로 이번엔 '싱크홀'이 되는 건데 벌금까지 명시된 커다란 위험 표지판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동굴 입구에 가까이 가서 보고자 애들을 쓰는 모습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아래서 올려다보았을 때 보다 동굴 입구가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
마침 동굴로 들어오는 보트가 보이는데 역시 장난감 보트처럼 조그맣게 보인다.
베나길 동굴과 이 트레일만큼 남부 포르투갈의 명소가 한 곳 더 있다.
'보네카 동굴(A Boneca)'로 유명한 '알가르 세쿠(Algar Seco)'다.
베나길 지역의 '카르보에이루(Carvoeiro)'라는 조그만 도시 근처에 있는 해안 절벽과 기암괴석 지대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가 묶는 빌라가 있는 동네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주인장은 빌라 바로 앞이 '알가르 세쿠'라고 지역 지도에다가 별표를 커다랗게 해준다.
무척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보네카'는 '인형'이란 뜻인데 바위 뚫린 두 개의 구멍이 마치 인형의 눈 같아 그리 부른다고 친절한 설명도 잊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침 일찍 가보라고 조언까지.
늦게 가면 'long line.'이라고.
그래서 일등 했다.
특히 이곳은 카르보에이루 해변의 절벽 위에 나무 데크로 된 '카르보에이루 보드워크(Carvoeiro Boardwalks)'를 만들어 놓아 경치를 감상하며 편하게 산책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드워크 아래 해변가 '알가르 세쿠'는 상당히 미끄럽고 굴곡이 많은 석회암 지형이라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알가르(Algar)'는 아랍어로 '동굴'이란 뜻이고 '세쿠(seco)'는 '건조한, 마른'이라는 뜻인데 그럼 '마른 동굴'이 된다.
이곳의 많은 해식 동굴들로 아예 지명이름으로 되었다는 설명이다.
석회암 지형은 늘 이렇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오는 길 내내 무료함과 특징 없는 볼거리의 연속이었던 여정의 끝에 이렇게 대박이 기다려 줄 줄이야.
물론 사진과 많은 리뷰를 보고 결정한 거였지만 기대 이상의 모습에 떠나오는 마음이 뿌듯하다.
오는 길 내내 말없이 운전에만 집중하던 친구는 '오는 길이 그리 무료했었냐?' 면서 다시 돌아가는 길 걱정을 한다.
천국으로 가는 문도 보았고, 천국만큼 아름다운 곳도 보았으니 좀 나을 거라고.
정말 여행의 감흥을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멀리 리스본 진입을 알리는 '바스쿠 다 가마 다리(Ponte Vasco da Gama)'가 보인다.
'인천대교보다는 짧지만 길이 17.2km의 유럽에서 제일 긴 다리.'라는 AI의 똑 부러지는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는 끝이 안 보이는 긴 다리 위로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