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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제품에 관하여

by 안성욱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가치있는 것은 없다. 적어도 제품에 한해서는 그렇다.


제품은 사용됨을 전제로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물리적인 사용이든, 아니면 추상적이거나 감정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든 간에, 제품은 쓰이는 순간을 가정하고 창조된 무언가이다. 사용을 통해 가치를 창출해내도록 고안된 것이기 때문에, 제품은 누군가에게 쓰이지 않으면 덩그러니 존재할 뿐이다. 누군가에게 인지되는 것 자체가 존재의 이유거나, 만든다는 사실 그 자체에 제작자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한은 말이다.


제품은 쓰임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는 사용 자체가 의미 있다는 것과는 다르다. 사용은 제품이 의미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상황 혹은 맥락일 뿐이며, 그러한 과정을 거친 제품이 모두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제품에게 사용은 가치를 만들어낼 기회일 따름이다. 그리고 제품은 그 기회를 잡아야 한다. 짧거나 긴 그 순간을 바탕으로 사용자에게 줄 수 있는 무언가가 바로 제품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제품의 가치는 사용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다.


그래서 제품을 제작할 때에는, 그 목표가 존재 혹은 제품의 완성에 있지 않아야 한다. 당연하게도,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냐에 초점을 두고 만들어져야 하며, 사용이 그런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하나뿐인 맥락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어떠한 가치를 줄 것인지에 탐닉하고, 그를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제품이 주는 가치란 어떠한 것인가? ‘쓰임'을 통해 제품이 창출해내는 가치는 일반적으로 편익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편익에 대한 판단은 감정적으로 끝을 맺을 수밖에 없다. 판단의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다. 본인이 합리적이라고 느껴지는 선택을 할 뿐이다. 그리고 편익을 따지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조건이자 과정이다. 그리고 욕구는- Maslow의 욕구 이론에 따르면, 1차 욕구가 감정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쟁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대부분은-충동이며 감정이다. 그러므로 제품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감정적인 무언가일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긍정 혹은 부정적인 감정인지는 아직 정의하지 못하나, 제품은 사용자가 어떠한 감정을 느끼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특정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결국 제품이 주는 가치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위 내용을 전제로 한다면, 제품의 평가는 사용자가 느끼는 감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써보는 것'으로써 느껴지는 감정에 대한 사용자의 해석이 제품의 가치를 결정짓는 척도인 것이다. 사용자가 느끼는 감정이 본인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제품의 가치도 긍정적으로 평가될 것이며, 사용자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여기면 제품의 가치 또한 절하될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만이 제품이 추구해야 할 바는 아니다. 사용자는 제품을 쓸 때 느낀 감정에 기초해 판단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 어떠한 환경이나 맥락 속에서 느끼게 되었는지, 또는 그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해 왔는지, 어떤 성장 배경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사람마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동일한 자극을 가해도,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사람마다 동일한 제품을 사용하더라도 각기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의 평가가 긍정적인지 혹은 부정적인지가 바로 제품의 가치를 정의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평가는 제품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뜨릴 수 있는 환경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수한 제품은 사용 환경이나 맥락마저 제한할 수 있거나, 혹은 그런 외부 요인에 구애받지 않는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보편적인 인간과 상황을 가정해, 사람이라면 겪거나 느꼈을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아직 언어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으며, 이제 제품을 사용해 봄으로써 만끽하게 될 그 감정에 말이다. 나아가 사용을 통해 촉발된 감정을 경험한 사용자들이 본인이 느낀 것을 어쩌지 못해 눈물범벅이 될 수 있을 만큼 스스로가 느낀 감정에 빠져들어야 함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한 감정을 느낀 사용자는 이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제품은 사용이라는 순간을 통해 세상에 더 많은 감정을, 사람들이 이제까지는 인식하지도, 그리고 느끼지도 못했던 순간을 창출하고, 그 경험을 하는 사용자 자신을 사용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무언가이고, 우수한 제품이라면 그래야만 한다.


제품을 설계하는 사람은 그러함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본인이 추구하는 바를 다른 사람이 제품을 통해 얼마나 비슷하게 경험하게 되는지, 누구나 그렇게 느끼게 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그로써 타인이 제품 설계자의 신념에 공감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을 늘려나가는 것이 제품 제작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품을 제작하는 자는 본인의 창조물을 사용하는 누군가를 더 나은 삶으로 만들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여기서 '더 나은'이라는 말은 오직 '선(善)'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이제까지의 삶에서 무언가를 더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이 '증가분'은 적어도 제품 제작자에게는 삶의 의미 중 하나가 될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제품을 사용한 누군가는 제품 제작자가 의도한 감정을 느낌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은 것임을, 그로써 그것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것임을 믿어야 한다. 그로써 세상 모든 사람들이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도록 본인의 모든 힘을 다해 만들어 나가는 것이 제품 제작자에게 주어진 소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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