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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플러스 인생 Jan 09. 2022

세 번째 이야기, 노숙 자경 (3)

노숙이 섬긴 첫 번째 황제는

노숙의 초반 행보를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노숙이 살던 동네가 서주 임회군 동성현이라고 했지요. 조조가 서주대학살을 자행한 것이 194년, 195년입니다. 주유가 거소현의 책임자로 오게 되자, 노숙이 전 재산의 절반을 줬다고 했지요. 정사 오서 주유전에 따르면 주유가 원술의 청을 거부하고 거소현으로 물러난 것이 198년의 일입니다. 정사 오서 노숙전에 따르면 노숙이 이 때 주유를 따라갔다고 합니다. 전 재산의 절반을 준 것도 198년으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주유의 베스트 프렌드, 손책은 이 때 이미 강동에 상당한 세력을 구축한 상황이었습니다. 주유와 손책이 함께 손잡고 말릉의 유우를 격파한 것이 195년이라고 나오니까, 주유는 손책과 협력하면서도 자신의 세력을 따로 유지하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노숙은 그런 주유의 밑으로 들어간 셈입니다. 손가의 사람이기 전에, 주유의 사람이었다는 뜻일 수 있겠죠.


노숙은 이 때 손책을 만나기도 하지만, 정식으로 임관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노숙이 확실하게 오나라의 신하로 데뷔하는 시점은 손책이 죽고 난 다음 손권이 리더가 된 다음의 일입니다. 추격대에게 활까지 쏘면서 서주를 떠나왔던 노숙이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할머니를 고향 땅에 안장하기 위해 다시 서주 동성현으로 돌아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서주에서 양주로, 다시 서주로...노숙도 어쩔 수 없이 당대의 유교 윤리를 따랐던 걸까요?


그런데 이 초반 행보에서 상당히 재미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노숙이 원술 밑에서 벼슬을 했다는 기록입니다. 




-첫번째 황제, 원술


노숙이 어쩌다가 원술 밑에서 벼슬살이를 하게 된 것일까?


노숙이 호족답지 않게 자기 땅까지 팔아가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지역의 리더로 발돋움 했다고 말씀드렸죠. 그렇게 노숙이 지역에서 유명세를 타자, 소식을 들은 원술이 노숙을 고향인 동성현의 장으로 임명한 것입니다. 


가만, 그런데 원술이 서주를 지배한 적이 있나? 서주 전체를 지배한 적은 없지만 원술이 근거지로 하고 있던 양주와 서주는 꼭 붙어 있고, 원술은 도겸과는 우호 관계를 맺었지만 유비, 여포가 서주를 차지하고 있을 때는 계속해서 서주를 차지하려고 애썼습니다. 국경이 명확하게 그어지던 시대가 아니다보니, 서주의 일부 지역이 원술 세력으로 편입됐다 떨어져나갔다 하는 과정이 반복됐을 것입니다. 


바로 노숙이 원술 밑에서 벼슬을 하고, 다시 원술을 떠나 주유에게로 갔다가, 다시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또 서주로 돌아오게 되는 과정이 당시 세력지도가 끊임없이 바뀌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노숙이 원술을 떠나 주유에게로 간 시점이 198년이라고 했죠. 그 시점까지는 노숙이 원술 밑에서 벼슬을 했다는 뜻입니다. 노숙을 쫓아온 추격대는 원술의 병사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원술은 바로 삼국지 군벌 가운데 처음으로 황제를 자칭한 군벌로 유명하죠.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고 중나라를 건국한 시점이 바로 197년입니다. 


노숙은 '황제' 원술 밑에서 벼슬살이를 했던 겁니다. 




-원술 밑에서 노숙이 내린 결론은


원술이 황제로 등극하는 걸 수많은 신하들이 말렸다고 나옵니다. "노씨 집안의 미치광이" 노숙은 과연 원술을 말렸을까요, 아니면 그런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어떤 기록도 남아있지 않기에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섬기는 군주가 황제가 되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노숙이 깨달은 게 있었을 겁니다.


바로 한나라는 이제 정말로 돌이키기 어렵다는 판단입니다. 


원술이 황제로 등극한 건 여러 면에서 무리수처럼 보입니다. 결국 그는 여러 세력에게 공격받다가 끝내 꿀물 타령이나 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습니다. 다만, 동탁이 임명한 황제인 '헌제'를 인정하지 않으려 들던 원소와 달리 원술은 분명 처음에는 헌제를 구출해야 한다는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돌변해 한 왕실의 반역자가 된 건, 195년 이각과 곽사의 손아귀에서 탈출한 헌제가 거지꼴이 돼서 광야를 떠도는 사건이 발생한 다음이었습니다. 황제가 길바닥에 나앉게 됐으니, 정말로 국가의 권위가 추락했다고 본 것이죠.


서투른 황제 등극은 원술의 내리막길로 이어지긴 했지만, 노숙은 이 시점에 이제 더 이상 한나라의 충신으로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결론지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신생 황제 밑에서 벼슬도 해봤고 말이죠.


그러나 조조가 헌제를 확보하고 한나라의 권위가 여전하다고 주장하면서, 원술은 역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노숙은 미련없이 역적이 된 원술을 떠나, 새로운 정치그룹을 찾아갑니다. 


바로 200년, 손책이 죽은 뒤 강동의 리더로 등극한 손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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