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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플러스 인생 Jan 16. 2022

(3) “김건희, 원하지 않는 시점·형태로 전화 녹취”

1월 14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1. 원본기사


“김건희, 원하지 않는 시점·형태로 전화 녹취 된 것”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0&oid=056&aid=0011195028



2. 무슨 말을 했을까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윤석열 대선 후보의 아내 김건희 씨 관련 녹음 파일에 대해 “본인이 원하지 않는 시점에 원하지 않는 형태로 전화 녹취가 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대표는 오늘(14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상대를 신뢰하는 상황에서 했던 대화를 보도에 이용하는 것은 국민들이 봤을 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 이상 기사 본문



3. 삼국지에도 이런 에피소드가 있나요?


권력자의 '배우자 리스크'는 삼국지에서도 자주 나오는 소재입니다. 소설이긴 하지만 삼국지연의에서 동탁이 몰락하는 건 초선이라는 여성을 두고 여포와 삼각관계에 빠졌기 때문이고, 동탁의 뒤를 이은 이각·곽사 역시 부인들의 자존심 싸움에 휘말려 내분을 일으켰다가 황제를 놓쳐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배우자를 통해 은밀한 서신을 작성했다가 이것이 공개되는 바람에 피해를 입는 경우라고 한다면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가 겪은 사건이 2개 있습니다. 모두 당대의 최고 권력자 조조를 상대로 벌어진 사건입니다. 


'밀서'는 어찌 됐든 작성한 사람 입장에선 '녹취'된 것과는 다르게 분명히 누군가에게 전달하려는 의도를 갖고 만든 문건이지만, 공개되는 것이 꺼려진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3-1) 동귀비 밀서 사건

우선 헌제의 후궁 중 한 명인 동귀인이 있습니다. '귀인'은 황후 바로 아래 품계를 뜻하고, 동귀인의 아버지가 동씨 가문 출신인 동승이었기 때문에 '동귀인'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사람입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동승이 동귀인의 오빠로 나옵니다. 황제의 처형이지요. 실제 역사에서는 황제의 장인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황제를 손아귀에 넣은 조조의 권력이 날로 강해지자, 내부에서 조조를 상대로 '되치기'를 해보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 동승입니다. 헌제는 장인(소설에서는 처형)이 그래도 믿을만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를 불러 옥으로 된 허리띠를 하사합니다. 소설에는 옥대를 받고 돌아가는 동승을 보고 조조가 쎄한 기분이 들어 옥대를 자신에게 달라고 하는 극적인 장면도 나옵니다. 동승은 옥대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지 못했으니 조조에게 그냥 옥대를 주겠다고 말해버리죠. 생각보다 순순히 옥대를 내놓는 동승을 본 조조는 잘못짚었나 보다 하고 옥대를 돌려줍니다. 


그러나 그 옥대 안에 들어 있는 건 황제의 밀서였습니다. 내용은 조조의 주살. 헌제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정권 제1인자를 살해하라는 지시를 하달하는 엄청난 정치적 수를 둔 것입니다. 동승은 자신의 측근들을 소집하고, 조조 밑에 어영부영 더부살이하고 있던 황족 유비도 끌어들입니다. 소설에는 여기다 추가로 서량의 마등도 포함시켰다고 나오는데, 정사에는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에이, 설마 옥대에 밀서를 넣어주는 그런 짓을 진짜로 했겠어? 그거야말로 소설이겠지? 아닙니다. 옥대에 밀서를 넣어줬다는 건 의외로 정사에도 기록된 사실입니다. 놀랍게도 권력자들은 그런 짓을 합니다. 


김건희 씨도 이런저런 문제 있는 내용을 통화로 말했을 순 있습니다. 옥대가 들통났으니 밀서가 공개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그 안에 '조조 주살'급의 내용이 들어 있느냐, 없느냐가 되겠지요. 바로 오늘 밤, MBC 스트레이트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서기 200년, 조조가 아직 원소와 결전을 치르지 않았던 시점에 이 계획은 들통나 쿠데타 관련자의 삼족이 처형됩니다. 이때 처형당한 사람이 수백 명에 달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황제의 아내인 동귀비가 이 계획을 알고 있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어쨌든 그녀도 연좌제로 처형됩니다. 이때 동귀비는 헌제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는데, 황제가 아이만 살려줄 수 없겠냐고 조조에게 빌었지만 조조는 "후환을 남겨둘 수 없다"라며 끝내 죽여버립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보다 극적입니다. 마등이 서량으로 돌아가고, 유비가 조조 밑을 떠나 서주로 독립하면서 조조를 죽일 수 있는 군벌들이 사라지자, 실의에 빠진 동승은 앓아눕고 맙니다. 그런데 동승의 병을 돌봐주던 태의, 그러니까 황실의 의사 길평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조조의 두통도 돌봐주고 있었습니다. 조조에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었단 이야기지요. 동승은 길평과 공모해 조조를 독살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거사 바로 직전에 동승은 자신의 노비였던 진경동이란 자가 애첩과 불륜관계였다는 걸 알고 불같이 화를 냅니다. 노비를 죽일까 했다가, 그건 너무 심하다는 말을 듣고 40대의 곤장만 치고 끝냅니다. 진경동은 목숨을 걸고 탈출해 조조에게 암살 소식을 전달합니다. 그 뒷 이야기는 실제 역사와 같습니다. 나관중 선생답게 끝까지 쫄깃하지만 여러모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요.


3-2) 복황후 밀서 사건

두 번째 사건은 동귀비보다 윗사람, 황제의 정식 황후였던 복황후가 겪은 일입니다. 200년, 동귀비가 아이를 밴 채로 맞아 죽는 걸 본 복황후는 황제의 권위가 추락할 대로 추락했다는 생각에 본인도 목숨의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아버지 복완에게 보낸 밀서에서 '황제가 동귀비의 복수를 원하고 있으니, 조조를 주살해달라'는 내용을 적었습니다. 


동귀비 때는 분명 황제가 보낸 밀서였지만, 복황후의 밀서는 황후가 보낸 밀서입니다. 황후가 보낸 밀서도 결국 황제와 소통해서 작성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황제가 시켰다는 척을 하면서 황후가 혼자 작성했을 수도 있습니다. 


김건희 씨가 통화에서 어떤 말을 했든, 윤석열 후보와 소통한 결과일 수도 있고 본인이 독단적으로 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죠. 이 부분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입니다. 


복황후 사건으로 돌아가면, 황후가 혼자 독단적으로 이런 일을 계획하긴 어려웠을 듯합니다. 그러나 헌제는 바로 조금 전 자기가 보낸 밀서로 인해 대단한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사실, 조조가 죽이고 싶은 건 황제였겠죠. 황제가 자기를 죽이라는 지시를 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자기 손으로 황제를 죽일 수가 없으니 황제 옆사람들을 모두 죽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황제가 한번 더 밀서를 썼다가 들킨다면? 그때는 조조도 더 참을 수 없었겠죠. 황제는 이런 점을 고려해서 두 번째 밀서는 황후에게 쓰라고 지시하지 않았을까요.


동승이 참혹하게 죽는 걸 본 복완은 딸의 밀서를 실행에 옮기지 못합니다. 그는 심지어 그 편지를 조조의 측근인 순욱에게 갖다 줬다는 기록까지 있습니다. 기록의 신빙성은 다소 의심받기는 합니다만, 나중에 조조의 미움을 사 자살하게 되는 순욱이 이 편지를 조조에게 숨기면서부터 두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해석도 존재합니다. 


3-3) 밀서 사건의 결론

동귀비, 복황후 사건은 둘 다 절대 권력자 조조와 그에게 대항하는 황제 권력이 부딪히며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동귀비는 사건에 그리 깊게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결국 화를 당했고, 복황후는 주도적으로 일을 추진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합니다. 이 두 사건 이후 조조는 황제의 주변인들을 모두 정리하고, 자기 딸 3명을 시집보내 황제를 자기 가족으로 둘러싸버리고 스스로 외척이 됩니다. 


녹취록 공개를 바라보며 유념해야 할 대목이 또 있습니다. 삼국지 만화 <창천항로>에서 복황후 밀서 사건이 터지자, 조조의 책사였던 유엽이 조조에게 "밀서를 공개하지 말고 덮으시라"라고 조언합니다. 밀서를 공개하면 법에 따라 황후가 처형당하게 되는데, 복황후가 죽으면 자연히 그 아래 있던 조조의 딸이 황후로 올라가게 되니, 사람들이 "조조가 천하를 사유화하기 위해 계략을 꾸민 것이다"라고 공격받기 좋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조조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조조를 공격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정치하기 쉽다"라고 말하며 그냥 법대로 황후를 처형하라고 지시합니다. 


조조야 그렇게 넘어가긴 했지만, 결국 <창천항로> 세계관에서는 조조의 이런 결정들이 모이고 모여서 반조조의 정치적 흐름으로 이어지고, 조조에게 반발하는 유비 정권의 성립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김건희 녹취록'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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