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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플러스 인생 Jan 23. 2022

(4) 김건희-도사, “선수들은 다 아는 이야기"

1월 22일 건국대 조용헌 교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1. 원본기사


https://m.khan.co.kr/politics/election/article/202201220913001#c2b




2. 무슨 말을 했을까요?


조선일보는 지난 1월 9일 조용헌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석좌교수의 장기연재 칼럼인 ‘조용헌 살롱’의 1330회 연재 ‘둔갑술과 검법’ 칼럼을 포털에서 삭제했다. 칼럼은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윤석열 캠프에도 도사들이 포진되어 있다. 그중의 하나가 J도사. 승려로 있다가 환속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손바닥의 ‘王’자도 이 도사 작품이다. J는 가끔 면접도 본다. 네모진 얼굴을 지닌 어떤 참모를 발탁할 때도 면접을 보면서 남긴 코멘트. ‘당신은 의리가 있는 관상이니까 윤 후보를 도와도 되겠다.’”


논란이 됐던 손바닥 王자가 윤석열 캠프에 포진한 J도사의 작품이라는 주장이다. J도사는 건진법사 전모씨를 말하는 것일까. 1월 17일 조용헌 교수와 통화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조선일보 ‘둔갑술과 검법’ 기사를 왜 네이버에서 삭제했나.


“윤석열 캠프에서 J도사 부분은 틀리다고 항의했다고 하니 어쩔 수 있나.”


-J도사는 전○○인가.


“그렇다. 그것도 아니라고 (윤 캠프에선) 주장하던데.”


-王자도 당시 해명이나 지난 1월 16일 공개된 김건희 녹취록을 보면 동네주민 할머니가 써준 것이라고 하던데 왜 J도사라고 확신하는가.


“나는 그렇게 알고 있는데 물증을 들이밀 수 없는 부분이니까. 본인들이 아니라는데 어쩌겠는가. 그런데 도사 이야기가 그렇게 회자되나.”


-그렇죠. 오늘 세계일보 보도를 봐도….


“알 만한 선수들은 다 아는 이야기다.”/ 이상 기사 본문




3. 삼국지에도 이런 에피소드가 있나요?


MBC 스트레이트의 '김건희 7시간 녹취록 보도'는 2회로 예고됐지만, 1회로 그쳤습니다. '한 방'이 부족했다는 평가와 함께, 사생활을 들추는 관음증 저널리즘이라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이른바 '김건희 걸크러시' 반응까지 나오면서 "MBC가 윤석열로 줄 갈아탄 것이냐"라고 비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건희 씨가 꺼낸 말을 하나씩 뜯어보면 생각보다 문제가 많다는 지적도 뒤따랐습니다. 그중 지금까지 가장 큰 장작으로 타오르고 있는 것이 '도사 이야기'입니다. 


건진법사, 무정 스님... 이런 무속인 이야기가 상기시키는 건 당연히 대한민국 시민들의 최순실 트라우마입니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이지 대통령 배우자를 뽑는 선거는 아니지만, 만일 대통령 배우자가 생각보다 캠프에 깊숙이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무속인에게 지배받고 있다면, 결과적으로 민주공화국은 무속인에게 지배받게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서기 200년대인 중국에서도 당연히 이런 무속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3-1) '무속신앙' 도교의 뿌리, 황건적

수학의 정석에서 집합과 명제 부분만 새카매지듯이, 초반만 들춰본 삼국지에서 기억나는 게 이 부분이죠. 바로 한나라를 때려 부시겠다고 들고일어난 황건적이 외치는 주문 같은 문구, "창천이사 황천당립"입니다. 


풀이하면 푸른 하늘은 이제 죽었으니, 마땅히 누른 하늘이 설 때다, 이런 뜻인데요. 목화토금수, 오행의 순환에 따라 푸른색 정권의 운명이 끝났으니 황색 정권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니, 역성혁명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라 볼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한나라를 대체한 위나라, 오나라는 모두 첫 연호를 황초, 황룡이라고 붙였습니다. 오행사상이 그만큼 일반화된 이야기였다는 뜻이고요. 한나라가 망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유비의 촉나라만 염흥, 즉 여전히 한나라의 적색이 불타고 있다는 의미를 살린 연호를 쓰게 되지요. 


그런데 어떤 학자는 오행에 따르면 진나라는 백색(나무), 한나라는 적색(불)이었고, 뒤이어 황색(흙)이 오는 건 맞는데, 그러면 왜 적천이사가 아니라 창천이사라고 했겠냐? 라면서 황건이 이야기한 '창천'은 오행이 아니라 유교였다고 지적합니다. 유교가 신앙처럼 숭상하는 푸른 하늘을 타도하고, 도교에 기반한 황색 정권을 만들려고 했다는 거죠. 


이렇게 보면, '황건적의 난'은 유교를 상대로 도교가 일으킨 종교전쟁의 맥락으로도 읽힙니다. 


삼국지 시대에 부흥했던 장각의 태평도, 장로의 오두미도는 모두 도교의 분파로 해석됩니다. 장각을 중심으로 먼저 봉기한 황건적은 관군에게 일찍 진압되고 말지만, 수십만 명 규모의 황건적 잔당들은 조조에게 항복해 '청주병'이라는 제국의 전쟁기계가 되죠. 


장로 역시 나중에 조조에게 항복하는데, 조조에게 포교의 자유를 약속받습니다. 이 종교는 중국 민중들에게 자유롭게 침투해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무속신앙' 역시 희한하게도 도교를 표방하지요. 어쩌면 "창천이사 황천당립"을 외쳤던 삼국지 시대 황건적의 이상이, 현대 대한민국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건지 모릅니다. 


3-2) 이각, 부하들보다 무녀를 우대하다

이각과 곽사, 기억나십니까?


삼국지 초반, 황제를 멋대로 폐위시키고 흉폭한 마왕으로 군림하는 동탁, 그 밑에 세트로 묶여 있는 부하 장수들이 이각, 곽사, 장제, 번주 네 사람이지요. 동탁이 여포의 반란으로 죽은 뒤에도, 이각 등은 재반란에 성공해서 다시 황제를 손에 넣습니다. 생각보다 오랜 기간 수도를 지배했던 무장세력이지요.


장제, 번주는 구색 맞춤으로 끼워준 느낌이고, 이각과 곽사가 아무래도 메인입니다. '삼국지연의'에서 황제를 억류하고 있던 두 사람은 다름 아닌 배우자 문제로 트러블이 생기게 됩니다. 곽사의 부인이 자기 남편과 이각의 부인이 바람이 났다고 의심해서, 이각과 곽사의 사이를 갈라놓게 되죠. 


이각과 곽사가 편을 갈라 싸우자 관중 지역이 전부 결딴이 나고 견디다 못한 황제가 탈출하는 일까지 벌어지는데, 이를 '삼보의 난'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두 사람 가운데 이각이 길흉화복을 전부 여자 점쟁이에게 물어서 결정했다는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황제는 나중에 두 사람을 화해시키기 위해 이각에게 대사마, 일종의 국무총리급 벼슬까지 내려주는데, 신이 난 이각은 이게 모두 무녀들이 치성을 드린 덕분이라며 여자 무속인들에게 금은보화를 뿌립니다. 이각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온 장병들은 '우리의 노력이 무녀보다 못하단 말이냐'며 이각에게 반기를 들게 되죠. 


이 에피소드가 역사에는 없지만, 소설 '삼국지연의'에는 들어가 있다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나관중이 삼국지 연의를 쓴 건 1300년대 명나라 땝니다. 삼국지 시대로부터 천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까마득한 과거죠. 그런데 그때 사람들도 정치 지도자가 무속에 빠지는 걸 부정적으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심지어 아랫사람들이 들고일어나는 계기까지 되고 만다고 비판하고 있는 거죠. 


3-3) 무녀 말 듣고 안보정책 결정한 유선

유비 아들 유선의 경우는 더 심합니다. 장판파에서 조자룡이 구해 온 아기 기억하시죠? 어릴 때 별명이 아두잖아요. 유비가 집어던져서 머리를 다쳤다는 둥 그런 말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좋은 군주였다는 재평가론도 있는데, 무속인의 영향을 받았다는 대목도 나옵니다. 


서기 263년, 위나라가 드디어 촉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전쟁을 준비합니다. 최전방에서 위군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던 제갈량의 후계자, 강유는 황급히 황제 유선에게 전갈을 보내 '한중 방위전략'을 가동하라고 합니다. 평지에서 산지로 들어오는 좁은 길을 막아 상대의 진격을 저지하는 방어 전략입니다. 


그런데 이 방위전략은 가동되지 못합니다. 황실 권력을 쥐고 있던 환관, 황호가 유선에게 '적이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무속신앙이 초래하는 가장 끔찍한 장면 그 자체입니다.

 

삼국지 정사 촉서 강유전 "황호는 귀신이나 미신의 말을 믿고 적군은 끝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유선에게 이 일을 진행시키지 말라고 했는데, 신하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황제가 '비선실세' 무속인의 주장을 듣고 국가 안보 정책을 그릇되게 결정했는데, 이 사실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정책결정 라인은 그 정보 자체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국가 안보와 관련된 비밀 정보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위나라 종회군이 빠르게 진격해 오자 촉군은 중요 방어 포인트를 잃은 채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 전쟁의 결과 촉나라는 멸망하고 맙니다. 촉나라가 망할 때, 주요 장수들과 병사들은 험지에서 마지막까지 결사항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후방으로 적군이 침투하자 황제 유선은 발 빠르게 항복을 결정하고 맙니다. 


국가 전체의 역량과 합리적 결정이 아닌 무속신앙에 의거한 정치 지도자가 얼마나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지, 유선의 사례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3-4) 무속인 이야기의 결론

삼국지 시대는 서기 200년대. 삼국지연의가 나온 명나라는 1300년대입니다. 그 뒤로 천년에 가까운 시간이 더 흐르고 과학이 진보해도, 여전히 무속이 횡행하는 걸 보면 인간 세상이 그렇게 많이 달라지진 않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41732


일반인이 무속에 심취하는 건, 고단한 인생사에 지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려는 의도로 이해할 수 있겠으나, 정치지도자의 경우는 결국 위와 같은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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