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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플러스 인생 Jan 28. 2022

(5) "삼국지에 촉나라가 없으면 삼국지가 되겠는가"

1월 20일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1. 원본기사


https://m.siminilbo.co.kr/news/newsview.php?ncode=1160285046337056




2. 무슨 말을 했을까요?


설 연휴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간 TV 토론이 진행될 예정인 가운데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이 20일 “양자토론은 국민들의 선택권을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누가 봐도 지금 3자 구도로 가려고 하는데 만약 삼국지에 촉나라가 없으면 삼국지가 되겠는가”라며 “이분들은 삼국지를 원하지 않는 것이고 두 당이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 이상 기사 본문




3.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국민의당 안철수.


초반에는 대선이 이재명vs윤석열 양강구도로 치러질 것 같았지만, 두 후보가 네거티브 파문으로 지지율이 답보상태에 머무르는 동안 안철수 후보가 약진하면서 급기야 3자 구도로 재편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양당이 설 연휴를 앞둔 TV 토론을 '1위와 2위, 둘이서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선거법에 따른 법정토론에는 평균 지지율 5퍼센트를 넘는 후보들을 함께 출연시키는 게 의무이지만, 그 외 언론사가 추가로 진행하는 토론회는 이런 의무가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을 노린 겁니다. 


국민의당은 물론 '3위를 빼놓고 토론하는 게 어딨냐'며 토론회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어제 법원이 양 후보만 출연하는 토론회에 제동을 걸면서, '다자토론' 구도가 성립됐습니다.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이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삼국지'를 언급한 대목이 눈에 띄는데요. 제3지대로 떠오른 안철수 후보를 유비가 세운 촉나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조조의 위나라, 손권의 오나라, 유비의 촉나라로 갈린 '삼국지', 당연히 촉나라가 없이는 '삼국지'는 안 되겠지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국민의힘 측에서 '지상파에서 안 하면 된다'며 31일 국회 양자 토론회를 다시 제안하고 나섰군요. 어떻게든 이번 대선을 '삼국지'가 아닌 '양강구도'로 재편하려는 노력인데, 이런 노력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주목해봐야겠습니다. 




4. 이게 제대로 된 비유인가요?


이번 '대선 삼국지'에서 따져보고 싶은 건 이겁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측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자기들을 '유비, 촉나라'에 비유하는데 이게 맞을까요?


현재 대한민국 국회 구성을 봅시다. 

'파란색' 더불어민주당 172석, '빨간색' 국민의힘 106석, '노란색' 정의당 6석, '초록색' 국민의당 3석 등입니다. 어디 보자, 빈말로도 '삼국지'란 말은 못 쓰겠군요. 안철수의 국민의당, 형편없이 쪼그라들었습니다. 거의 완전한 양강구도죠.


장판파에서 조조군에게 쫓기며 처자식도 버리고 도망치던 유비의 모습, 기억나시죠? 그러나 간신히 목숨을 건진 유비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조조'의 깃발을 높이 들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유비는 황제에게 밀서를 받았기 때문이죠. '역적' 조조를 처단하라는!


그래서 '적벽대전'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명분을 쥔 유비, 병력을 가진 손권이 힘을 합쳐 '최강' 조조에 맞서 싸운 삼국지의 하이라이트. 여기서 조조의 천하통일은 좌절되고, 천하는 셋으로 나뉘어 50년 더 전쟁기를 겪게 됩니다. 


"약자이지만, 명분을 쥔 제3세력, 유비의 촉나라를 빼놓지 말라"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의 호소는 대략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로 보입니다. 그럴듯하죠?


심지어 삼국지 게임으로 유명한 KOEI 사에서는 위나라를 '파란색', 오나라를 '빨간색', 촉나라를 '초록색'으로 컬러링 하거든요. 색깔까지 딱 맞아떨어지죠. 국민의당에서 이런 것까지 알고 한 소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삼국지 매니아의 눈에는 이런 점이 밟힙니다. 


자, 유비의 촉나라와 손권의 오나라는 협력을 해서 조조의 위나라에 맞섭니다. 그런데 나중에 관우가 왜 죽었죠? 손권이 유비를 배반하고, 조조에게 납작 엎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나라는 촉나라와의 관계를 끊고, 일시적으로 위나라와 화친을 한 시기가 있습니다. 조조가 쳐들어 오면 유비와 동맹을 맺고, 유비가 쳐들어 오면 조조와 동맹을 맺은 것이죠. 


손권은 조조, 유비 둘 다와 협력할 수도, 갈등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비와 조조가 동맹을 맺는다? 이건 절대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죠. 


자, 이런 구도를 현재 대선구도에 적용시켜 봅시다.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좋을 때 언론이 끊임없이 생산한 기사가 뭐였죠? 네, '단일화는 언제?' 라는 질문입니다. 안철수+윤석열이면, 후보가 누구든 이재명에게 이긴다는 여론조사가 계속 나왔으니까요. 안철수 대표는 계속해서 '안일화'를 외쳤지만, 실제로 안 대표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서울시장 선거 때 단일화한 경력이 있죠. 


안철수 후보는 한 때 민주당 계열 정당에 몸 담고, 현 대통령 문재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운 적도 있는 사람입니다. 서울시장 선거 때는 박원순 후보에게 자리를 양보했고, 대통령 선거 때는 문재인 후보에게 자리를 양보했죠. 


즉, 안철수 후보는 더불어민주당과도, 국민의힘과도 연대한 적이 있고, 연대할 수 있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어떤 세력이 겹쳐지지 않나요? 네, 저는 안철수 대표의 행보가 손권의 오나라와 더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절대 연대할 수 없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조조와 유비의 비유에 더 어울리죠. 


안 후보가 박원순, 문재인에게 연달아 양보한 것은 형주를 빌려주고, 익주를 차지할 기회도 양보한 손권의 양보와 겹쳐지고, 더불어민주당에서 나온 뒤 오세훈과 단일화했다가 다시 불화를 겪는 행보는 손권이 위나라에 항복했다가 다시 갈등하는 과정 같기도 합니다. 


삼국지에서 자신을 약자에, 주인공인 유비에 비유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망입니다. 하지만 매번 그 비유가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주인공' 유비의 결말은 어땠나요? 결코 승자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고군분투하다 처절하게 패망하는 이야기...꼭 그런 인물에 자기 세력을 비유해야 할까요?


천하의 대세를 손에 쥔 '위나라, 조조'는 언제나 대한민국 제1당, 대통령을 보유한 여당이 가져갈 수 있는 포지션입니다. 이 여당에 도전하는 야당, 그것도 제1야당은 항상 도전자인 '촉나라, 유비'의 포지션을 가져갈 수 있죠. 


'오나라, 손권'의 매력은, 딱히 중원을 차지하려고 애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손권이 주유 다음으로 중용했던 책사, 노숙은 손권을 만나자마자 "한나라는 이미 가망이 없으니, 스스로 천자의 자리에 오르시라"고 하며 천하통일이 아닌, 천하분권을 제안합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양당제 구도로 정리될 수 없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시민들의 구성체입니다. 지난 대선 투표율, 2016년 총선 결과를 보세요. 제3당, 제3후보가 항상 소환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겠지요. 


그래서 '삼국지'는 언제나 계속해서 한국 정치에 소환될 겁니다. 그리고 힘이 약한 제3세력은 언제나 자신을 유비라고 설명할 텐데요. 저는 그 사람들이 자신을 '오나라, 손권'에 비유하는 날을 기다립니다. 


천하통일은 글렀다, 양당제도 글렀다. 다당제 구도로 가자. 제3세력이 언제나 상존하는, 끝까지 멸망하지 않고 버티는 오나라가 각광받는 시대로 가자. 


다음번엔 좀 더 정교한 '삼국지' 비유를 기다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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