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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플러스 인생 May 06. 2022

세 번째 이야기, 노숙 자경 (4)

"손권님, 황제가 되십시오"

<유엽과 주유 사이에서>


황제를 참칭한 원술을 떠난 노숙. 그가 곧바로 손권을 자신의 주인으로 고른 건 아닙니다. 조금 갈팡질팡한 기록이 남아 있어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고향인 서주를 떠나서 여강까지 내려와 주유를 만났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니까 갑자기 다시 서주로 돌아가버리질 않나...


여기서 뜻밖의 인물이 등장해 노숙을 유혹하는데 바로 유엽입니다. 유비보다 더 진한 황제의 혈통에다, 조조군에 합류해 나중에 조예까지 보필하는 오랜 신하죠. 노숙하고 절친한 사이였다고 나옵니다. 이 유엽이라는 사람도 초창기에는 약간 군벌과 정치인 사이에서 묘한 지위를 왔다 갔다 하고 있던 사람이거든요. 그가 이런 제안을 합니다. 저기 여강 지역에 정보라는 사람이 지금 만 명의 사람을 모아서 세력이 상당히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노숙! 나와 함께 정보에게로 갑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이 정보는 손견을 섬겼던 손 씨 집안의 유명 장수, 한당 정보 황개 3총사에 들어가는 그 정보가 아닙니다. 역사에 이름이 안 남아 있는 정보입니다. 그런 사람조차 1만 명의 세력을 형성했다고 하니... 그 시절엔 이렇게 새별처럼 떴다가 지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겠죠. 


노숙이 유엽의 말을 듣고 그리로 가려고 마음을 굳혔다고 나와요. 그러면 유엽 라인을 타게 됐을 거고, 종국적으로는 위나라의 신하가 됐을 가능성도 있었던 겁니다. 


그때, 노숙의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맡고 있던 주유가 적시에 개입합니다. 지금은 주인을 잘 골라야 될 때이다, 정보 따위가 아니라 우리 같이 손 씨 집안을 섬기자.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죠... 주유의 설득에 노숙이 넘어갑니다. 


이 선택에 의해서, 노숙은 영원히 자기의 길을 손권의 오나라로 잡게 됐죠. 



<손권님, 황제가 되십시오>


그래서 노숙은 드디어 주유를 끈으로 삼아 손권에게 출사를 하게 되는데요. 정확한 시점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손책이 죽고 손권이 군주로 데뷔한 게 한 200년쯤이니까 노숙은 최소 200년 이후에 출사를 한 겁니다. 적벽대전이 208년쯤이니까, 노숙은 그때 손가를 섬긴 지 10년도 안 된 상황이었던 거예요. 


노숙을 만난 손권은 20대 초반의 굉장히 젊은 군주였죠. 형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세력을 떠안게 된 상황에, 이 청년 군주는 자기가 어떻게 해야 되겠냐고 노숙에게 묻습니다. 


노숙이 여기서 하는 말이 굉장합니다. 풀 텍스트로 인용해봅니다. 


"옛날 한고제(高帝)가 마음을 다하여 초의 의제(義帝)를 존중하여 섬기려고 했으나, 원하는 대로 얻을 수 없었던 것은 항우(項羽)가 해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조조는 옛날의 항우와 같습니다. 장군께서는 어찌 환공과 문공처럼 될 수 있겠습니까?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 왕실은 다시 일어날 수 없고, 조조는 신속하게 제거되지 않습니다. 장군을 위한 계획은 오직 강동을 차지하고 천하의 변화를 살피는 것입니다. 기업의 규모가 이와 같으면, 또 의혹을 초래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북방에는 진실로 힘써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힘써야 할 일이 많을 때를 이용해 황조(黃祖)는 소멸시키고, 나아가 유표(劉表)를 공격해 장강 유역을 차지하여, 자기 소유로 만든 연후에 제왕이라고 칭하고, 천하 통일을 꾀하는 것, 이것이 한고제의 사업이었습니다." 


한 황실은 다시 일어날 수 없고, 조조는 신속하게 제거되지 않는다. 


손권, 강동에서 황제가 돼라. 


이거 반역자나 할 법한 말 아닙니까? 도저히 고루한 유학자의 언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노숙하고 비슷한 생각을 했던 주유, 제갈량과 비교해보면 그 생각의 파격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주유도 강동에서 시작해서 서천을 정벌하고, 천하를 둘로 나눠 조조를 상대하고자 했죠. 그러나 주유는 이세삼공의 한나라 충신 집안이었습니다. 한나라를 회복시킨다는 장굉의 '한실광보' 명분에 근거한, 엄연한 '한나라 살리기' 운동가였습니다. 


제갈량은 더욱 심하죠. 손권의 오나라도 반역자 집안이나 일단은 조조를 잡기 위해 동맹을 맺고, 서천에서 궐기해 위나라를 토벌한 다음 오나라는 '위대한 한나라'에 합류하라는 명분으로 무릎 꿇린다는 작전이었습니다. 주유보다 더 심한 '한나라 수호자'를 자처했죠. 


그런데 노숙은 지금 처음 만난 손권에게 곧바로 한나라를 무시하고 강동의 황제가 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노숙의 나이,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차세대' 지식인의 느낌이 나죠. 


이런 발상의 유연함은 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일까? 비교적 먼 거리에서 중원의 갈등을 관망하고 있었던 강동, 형주의 지식인들과 달리, 중원 지역에서 활동하던 노숙이 좀 더 한나라의 멸망이라는 현실을 뚜렷이 인식한 것은 아닐까요. 특히 원술 정권에 동참해서 그 흥망성쇠를 지켜봄으로써 더 이상 한나라라는 대의명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홀가분한 인식을 얻게 된 것은 아닐까요. 


원술이 노숙에게 준 자유가 그를 더 큰 전략적 사고로 연결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역시 "노씨 집안의 미치광이" 노숙입니다. 



<한나라의 신하가 아닌 손권의 신하>


당시까지만 해도 강동 지역의 주류 지식인 집단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강동의 이장' 즉 장소와 장굉으로 대표되는 '한나라 복권 세력'이었습니다. 


장소는 '안의 일은 장소에게, 밖의 일은 주유에게' 의논하라고 손책이 손권에게 유언으로 남긴 바로 그 사람이죠. 심지어 어떤 기록에서는 손책이 '손권이 부족하면 그대가 정권을 잡으라'며 마치 유비가 제갈량에게 탁고하듯 유언을 남겼다는 설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이 장소가 노숙을 엄청나게 싫어했다고 나와요. 노숙이 겸손하지 않고 불만스러움이 많다, 어리고 거칠어서 중용해선 안 된다. 이렇게 몇 차례나 비난했다고 나오는데 이게 단순히 노숙의 성품을 공격한 것일까요? 


노숙이 가지고 있는 정치사상이, 장소와 장굉이 가지고 있던 사상과 너무나 달랐던 겁니다. 그 정치적 방향으로 손권을 계속 끌고 가려고 하니까 여기에 대해서 견제하는 목소리를 낸 거죠.


반면 손권은 노숙의 말을 듣고 속으로 웃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겉으로는 "그런 말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말이다"라고 답한 뒤에 노숙을 후하게 대접했다고 나오죠. 손권은, 결국 자신이 아닌 황제를 섬기고 있는 강동의 지식인 집단보다, 확실하게 당신을 섬기겠다고 나선 난세의 젊은 지식인, 노숙이 진짜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손권의 신임, 주유의 추천을 받으며 정치적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던 노숙이 드디어 삼국지연의에 데뷔하는 시점이 다가옵니다. 


바로 적벽대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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