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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플러스 인생 Jun 12. 2022

세 번째 이야기, 노숙 자경 (6)

노숙 인생의 하이라이트, 익양 대치

<위태로운 유손동맹, 일촉즉발 천하삼분>


노숙과 제갈량의 활약으로 유비, 손권은 같은 배를 탔습니다. 조조의 천하통일도 일단 좌절됐습니다. 


그러나 노숙의 외교적 상황은 점점 더 어려운 상황으로 가게 됩니다. 바로 천하의 남은 땅, 익주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 때문이었죠. 


우선 손권이 부하 장수들과 함께 촉나라를 먼저 정벌하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촉나라는 유비의 촉나라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유장이 차지하고 있던 익주 지역입니다. 


손권이 있는 강동에서 서쪽의 익주로 지나가려면 중간에 유비가 차지하고 있는 형주를 지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유비가 손권군을 가로막죠. 삼국지연의에는 없고 정사에만 있는 내용입니다. 


유비의 주장은 "유장은 나의 종친이기 때문에 차마 손권이 그걸 공격하는 건 내가 눈 뜨고 볼 수 없다, 정 손권이 만류를 뿌리치고 공격하러 간다면 머리 풀고 산에 들어가 버리겠다"


유비가 같은 유 씨라는 명분을 들어 손권을 가로막자 하는 수 없이 손권군은 병사를 물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 유비는 유장의 초대를 받아 익주로 들어간 다음, 2~3년의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자기가 익주를 집어삼켜버립니다!


손권이 이 장면을 보고 격분해서 "늙은 도적놈이 나를 속였구나!" 하고 외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빈정이 상한 손권은 제갈량의 형 제갈근을 파견해 익주를 차지했으니 형주를 내놓으라고 합니다. 형주는 유비, 손권이 적벽대전에서 승리하면서 얻어낸 땅입니다. 절반은 손권이, 절반은 유비가 가졌지요. 손권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어려운 처지에 있던 유비에게 머물 곳이나 마련해준 것인데, 유비가 익주까지 집어삼키며 엄청난 규모의 군벌로 성장하자 위협감을 느낀 것입니다. 


그런데 유비는 "나중에 북쪽의 양주 땅까지 얻으면 그때 가서 형주를 돌려주겠다"는 답변을 내놓습니다. 손권은 유비가 형주를 돌려줄 생각이 없다는 확신을 갖게 돼버립니다. 그러니까 노숙이 구축하고 있는 평화 외교 라인의 결정권자, 도장을 찍어줘야 되는 손권과 유비 사이의 적개심이 굉장히 높아진 거예요. 


그리고 익주를 병탄해서 천하를 조조와 둘로 나눠서 싸운다라는 이 '천하 이분계'는 사실 주유가 살아생전에 생각했던 작전이었거든요. 주유라는 걸출한 전쟁 영웅을 계승하는 오나라의 장수들 입장에서는 주유의 큰 그림을 무너뜨린 유비, 그리고 제갈량이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손권은 여기서 외교관, 노숙 대신 장군, 여몽이라는 카드를 뽑아 듭니다. 여몽은 군사를 휘몰아 형주의 3개 군을 함락시킵니다. 화가 난 유비도 군사를 몰고 오고, 관우를 파견해 오나라와 격돌합니다. 바야흐로 유손동맹이 완전히 파투 날 위기에 빠진 겁니다!




<우리 편도 달래고, 상대 편은 어르고>


여몽은 원래 학식이 부족한 장수였지만 열심히 공부를 해서 "오하의 아몽이 아니다" 즉 "예전의 그 무식한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경탄을 이끌어낸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높은 평가를 내놓음으로써 여몽의 인지도를 높여준 사람이 바로 다름 아닌 노숙입니다. 여몽은 노숙이 키워준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그러나 여몽은 노숙과는 상당히 대치되는 외교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조조는 우리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게 입증됐다. 유비와 협력할 게 아니라, 필요하면 공격해야 한다. 이것은 천하통일을 노리는 게 아니라 오나라 지역을 차지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그야말로 오나라중심주의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천하를 노리기보다 일단 오나라 지역을 점거하는데 만족하라고 했던 노숙의 초기 아이디어와도 크게 다르지 않지요. 하지만 노숙은 항상 그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노숙은 언젠가는 조조를 무찔러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오나라의 안위도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몽은 일단 눈앞의 이득을 챙길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유비와 척을 지고 어떻게 조조를 상대할 것인지에 대한 복안이 있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노숙은 이렇게 안으로는 실망한 군주와 분노한 장수들을 계속해서 다독여가면서 밖으로는 촉나라와 또 다른 외교 협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왜? 유비와 손권이 싸우면 웃는 건 조조이기 때문이죠. 


노숙은 양측의 병사를 일단 멈추게 하고, 적군의 지휘관 관우에게 칼 한 자루만 들고 독대를 하자고 합니다. 

노숙 인생의 하이라이트, 익양대치입니다. 




<노숙 인생의 하이라이트, 익양대치 단도부회>


익양 대치... 이 장면도 삼국지연의에서는 노숙을 실제 역사와 전혀 다르게 묘사하고 있는 대목이지요. 


삼국지연의에서 오나라가 관우를 술자리에 초대해 죽여버리려는 흉계를 꾸미는데, 관우가 용감하게 홀로 술자리에 오더니 취한 척 노숙을 끌어안고 일어서버려 오나라 장수들이 차마 관우를 죽이지 못하고 그냥 살려 보내는 긴박하면서도 통쾌한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노숙의 역할은 한심한 인질에 불과하죠. 


그러나 실제 역사는 전혀 달랐습니다. 


양군이 이미 전투를 벌이고, 동맹이 백척간두에 올라선 상황에, 천하삼분의 입안자이자 유손동맹의 실무자였던 노숙이 유비에게 사실상의 전권을 일임받은 관우와 1대1 담판을 짓게 된 것이죠. 


병사들을 물리고, 칼 한 자루만 들고 만나자고 한, 그야말로 담판이었습니다. 


노숙은 지금은 정말로 뱃속을 열고 만나야 될 때다, 심중에 있는 이야기를 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전쟁을 막을 수가 없다... 굉장한 결단이죠. 노숙이 아무리 무예의 자신이 있다 해도 상대는 관우입니다. 자칫하면 배신당할 수도 있는 범의 아가리로 걸어서 들어가는 노숙... 담대한 사람이죠. 


두 외교관이 어떤 식으로 담판을 지었는가 이제 유비 쪽의 기록과 오나라 쪽의 기록이 약간 다르긴 합니다만 노숙 쪽에는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우리 군주는 유비님이 힘들 때 토지를 빌려줬는데, 어찌해서 형주의 반만 돌려달라고 그랬는데도 돌려주지 않습니까"라고 노숙이 이야기를 하니까, 관우 쪽에 앉아 있던 어떤 사람이 "영토란 덕 있는 사람에게 속하는 것일 뿐 어찌 영원히 소유하려 하느냐"라고 끼어들었다고 나와요. 


이건 기록이 좀 이상하죠? 단둘이서 만난다고 그랬는데 옆에 관우 말고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삼국지연의에서는 주창이 끼어들었다는 식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이때 이 말을 들은 노숙이 "벽력 같은 소리를 질러 질타했고, 언사와 안색이 매우 절절하자" 관우가 일어나서 "이것은 국가의 일인데 이 사람이 뭘 알겠습니까?" 하면서 끼어든 사람을 떠나가게 했다고 나옵니다. 


관우가 자기편을 오히려 꾸짖었다고 나오죠. 이게 무슨 뜻일까? 


지금 노숙이 여기에 온 이유는 유비와 손권이 땅따먹기 하자는 게 아닙니다. 지금 두 세력이 싸움을 벌이기 일촉 즉발의 상황인데 싸움이 벌어지면 조조가 득을 보기 때문에 우리가 두 세력이 연합하고 있는 큰 목적을 다시 상기시키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온 거예요. 


근데 이 깊은 뜻을 모르는 촉나라의 어떤 무명의 장수가 야, 우리도 힘이 세니까 땅을 차지할 수 있어. 이런 굉장히 좁은 소견을 내보인 거죠. 마치 오나라의 여몽처럼요. 거기에 대해서 노숙이 화를 낸 겁니다. 


지금 나는 우리 세력에 주유의 복수를 하겠다고 하는 장수들, 관우를 죽이겠다고 하는 손권을 다독여가면서 지금 와서 외교적 담판을 지으러 왔다. 뭘 위해? 우리 두 세력의 공존과 공익을 위해! 근데 당신은 여기서 땅따먹기 하는 이야기를 꺼내? 너는 그런 수준의 얘기를 할 거면 이 테이블에 끼지 마라! 


그래서 노숙은 "벽력같이 질타"한 거죠. 오나라의 땅을 얻기 위한 목소리가 아니라, 이것은 대국을 읽고 있는 전략가의 목소리인 겁니다. 


그리고 관우는 그 목소리에 호응하죠. 관우도 이 전체적인 판세를 읽고 있는 대전략가였던 셈입니다. 


이어서 노숙이 관우를 꾸짖으면서 "지금 우리는 도와준 대가를 달라고 하는 건데, 이것은 의에 어긋나지 않고 도리에 맞는 말이며, 군대가 흐트러졌는데 이길 거라 생각하느냐" 이런 말을 하는데 이게 춘추좌씨전에 있는 말입니다.


근데 이 춘추좌씨전이 뭘로 유명하죠? 관우가 그렇게 좋아하는 책이잖아요. 관우는 앉아 있을 때 항상 춘추좌씨전을 손에 들고 있었고 틈만 나면 읽어서 구절을 암송했고 그래서 관우가 그림에도 보면 춘추좌씨전을 왼손에 들고 있는 걸로 나옵니다.


네가 그렇게 자주 잃는다는 그 경전에도 이렇게 나와 있잖아 명분이 있는 군대는 이기고 명분이 없는 군대는 진다고 너는 지금 명분이 없는 군대를 끌고 와서 우리한테 협박을 하고 있는 거야 자기가 자주 읽었던 텍스트를 기반으로 얘기를 하니까 관우가 여기서 이제 말문이 막히게 되는 거죠. 


"관우는 이에 답하지 못했다..." 노숙이 아주 근사한 설득의 기법을 보여준 겁니다. 


이렇게 해서 유비와 손권은 상수를 경계로 해서 형주를 나눴다, 이런 말이 나옵니다. 오나라는 자신들이 점령했던 땅의 일부를 다시 돌려주고, 두 세력은 군대를 물립니다. 


이 협상이 성공한 덕분에, 유비는 대군을 이끌고 막 익주로 쳐들어 올 태세를 갖춘 조조군을 막으러 돌아갈 수 있었죠. 그리고 한중에서 대결전을 벌여, 마침내 조조를 패퇴시킵니다. 이것이 한중공방전, 그리고 유비는 한중왕에 등극합니다. 


유비를 한중왕으로 만든 데 노숙의 공이 적다고 할 수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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