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습니까? 'B급' 장수라는 느낌은 안 들지요. 최소 A-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은 품격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이게 바로 최근 노숙이 재평가를 받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직접 병사를 이끌고 승리했다는 기록이 많지는 않으니 '통솔력' 능력치를 높게 줄 수는 없지만, 엄연히 오나라 수군 대도독으로써 전군을 이끌고 위나라, 촉나라와 대치했던 사람인만큼 80 이상은 받을 만한 자격이 있고, 관우와 당당히 익양대치에 나섰다는 점이 특히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입니다.
무력은 조금 아쉽지요. 방패를 꿰뚫는 궁술을 선보이며 추격대를 돌려세웠다는 기록도 있는데... 아무래도 직접 병장기를 들고 전장을 누빈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에 손해를 본 것 같습니다. 56으로는 정말 관우와 검으로 붙었다면 처참한 최후를 맞겠지요.
지력, 정치력은 모두 탁월한 식견과 대국을 읽는 시야를 인정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제갈량, 주유급으로 쳐주지는 않는 것 같지만 모두 아쉽지 않을 만큼 평가를 받았다 하겠습니다. 한 순간에 주군의 마음을 사로잡고 적국의 군주와도 협상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매력 89로 반영됐습니다.
조조군이 쳐들어와도 당황하지 않는 '침착', 손권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전쟁을 결심하게 한 '독려', 어려움에 처한 주유에게 곳간을 털어준 '조달', 그만한 재력을 보유할 수 있었던 '부호', 직접 동네에서 젊은이들을 모아 병력으로 육성했던 '동원'까지 모두 노숙에게 어울리는 개성이 부여됐습니다. 외교의 달인답게 외교 정책 '종횡술'을 최고레벨인 5까지 부여받았고, 어린, 방원, 학익 등 주로 수비적인 진형을 보유했습니다. 고유 전법은 대군 앞에 무너지려 하는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상태이상을 해소하는 '명찰추호'. 적벽에 불을 지른 '화시'와, 병사들을 회복시키는 '치료' 그리고 도독답게 해전기술도 보유했습니다.
자신의 선배인 주유, 후배인 여몽과 비록 정치노선은 달랐으나 굳건한 오나라의 도독들답게 끈끈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제갈량과 다리를 놓아준 동료 제갈근과도 깊은 관계입니다. 정사에서 유엽과 친했고, 한 때 그가 섬기자는 군주를 함께 섬길 뻔도 했다는 일화에 어울리게, 유엽과도 좋은 관계로 설정됐습니다.
여러모로 재평가받고 있는 노숙입니다.
<뛰어난 외교관, 위대한 대전략가>
노숙이 살아 있을 때, 촉과 오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서로 좀 빈정 상한 일이 있더라도 협력하지 않으면 둘 다 망한다라는 분명한 정치적 비전을 가지고 있는 대전략가가 오나라에 없었더라면
촉과 오는 이미 싸움을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노숙이 맡았던 역할은 바로 그런 역할이었죠.
그런데 이 노숙이 서기 274년, 향년 46세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적국의 재상, 제갈량이 장례식에 참석해 애도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적국의 장수가 죽는데 왜 눈물을 흘리겠습니까? 주유가 죽었을 때 과연 제갈량이 눈물을 흘렸을까요. 그런데 노숙이 죽었을 때 제갈량은 정말로 눈물이 나오는 상황인 거예요.
왜? 촉과 오가 비록 내부적으로는 전쟁을 하고 싶더라도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거두고 함께 협력해서 위나라에 맞서게 하는 그림이 나와야만 저 강력한 위나라를 상대할 수 있는데, 그 대전략을 이해하고 내부에서 부하 장수들을 다독이면서 혹은 억눌러 가면서 그 비전을 관철시킬 수 있는 대정치인이 노숙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실제로 그 이후 불과 몇 년 안에 노숙의 뒤를 이어서 오나라의 군수 통수권자가 된 여몽은 촉나라에 대해서 전혀 다른 정치적 비전을 가지고 있었죠. 관우의 뒤를 공격해서 형주를 탈취하고 관우도 죽여버립니다. 그 결과 유비는 이릉대전을 일으켜서 오나라를 대규모로 침공하게 되죠.
오나라는 육손의 활약으로 비록 유비군을 막아내긴 했으나 양군의 신뢰가 크게 무너졌고, 제갈량이 꿈꿨던 촉나라 오나라의 공동 공격, 즉 위나라를 서쪽과 동쪽에서 동시에 공격해서 병력을 분산시키고, 뛰어난 전쟁 지도자를 두 곳에 다 존재하게 할 수 없게 함으로써 나머지 한 곳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한다는 융중대라는 전략은 결국 구현되지 못했습니다.
노숙이 한 10년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그러면 형주를 중심으로 촉나라 오나라가 다툰 일도 없었을 것이고, 위나라가 거기서 어부지리를 얻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유비가 그렇게 비명횡사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심각한 경제적 물질적 타격을 입고 촉나라의 국력이 기우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최소한 촉나라와 오나라가 결국 순서대로 몰락해가는 이런 무기력한 패배는 경험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삼국지를 성립시키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라는 걸 노숙의 인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노숙에 대해 마지막으로 남겨져 있는 기록입니다.
"겉을 꾸미지 않았고 공사에 걸쳐 검약에 힘썼으며 저속한 취미에 손을 대지 않았다. 군대를 통솔할 때는 잘 정돈해서 명령이 반드시 지켜지게 했고 진중에서도 서책을 놓지 않았다. 담론에 뛰어났고 문장도 뛰어났으며 생각은 깊고 원대하여 다른 이의 몇 배가 되는 총명함을 갖고 있었다. 주유 이후의 세대에서는 노숙이 제일가는 인물이었다."
주유 이후, 노숙을 넘어서는 대전략가가 나오지 않았다...
눈앞에 전투를 이기는 게 아니라 협력과 연대 때로는 자기 진영의 목소리까지 억눌러 가면서 큰 싸움을 이기게 만드는 밑그림을 그릴 만한 사람이 노숙 외에는 없었다...
나중에 손권은 노숙을 저평가하거든요. 여몽은 나에게 형주를 얻어주었지만, 노숙은 관우를 이기지 못했고 형주를 유비에게서 뺏어오지 못했다...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 혹은 너무 미운 세력과 동맹을 이끌어내려는 사람, 협력과 연대를 통해서 더 큰 적과 싸우려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별로 인기가 없죠. 왜냐하면 촉나라 입장에서 위나라는 이길 수 없는 상대지만 오나라 정도는 좀 때려잡을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오나라 입장에서도 지금 위나라는 좀 상대하기 어렵지만 촉나라 유비 정도는 우리 밥이었는데 제한테 왜 우리가 고개를 숙여야 돼요? 이 사람들을 설득하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적을 상대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 있어요.
근데 노숙은 그걸 해냅니다. 그 대가로 삼국지연의에서는 바보 취급을 받았고 자기가 섬겼던 군주한테는 저평가를 받고 적국이었던 촉나라 사람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됐죠.
그런데 아슬아슬한 현실을 살아가야 되는 우리 입장에서는, 눈앞에 작은 복수심을 채우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더 큰 걸 생각해서 소탐대실하지 않고 생존해야 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노숙의 삶에서 더 배울 것이 많지 않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노숙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지지자들이 또 있어줘야 노숙 같은 대전략가가 활약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노숙 자경의 삶을 되돌아봤는데요. 재밌으셨길 바랍니다. 촉나라 두 명을 했고, 이제 오나라 한 명을 했으니까, 오나라 두 번째 인물을 생각해서 오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