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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뭉 Sep 07. 2020

만족의 기준은 누가 정하나

자기 만족도 결국 타인에 기대어 있다.

결혼을 앞두고 이래저래 바쁘고 정신이 없다. 이것 저것 결정할 것이 많아 복잡하기도 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변에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아 여러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만큼 괜시리 고민스러워지는 순간들이 있다.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잘 못 보기 마련이다.

그저 만족하며 살겠거니, 잘 살고 있겠거니.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유난히도 관심이 많은 몇몇의 사람들은 그만큼 남들이 어떤 걸 사는지, 어떤 걸 먹는지, 어떤 걸 입는지 알고 싶은 것 같다. '자기만족' 이라면서도 그렇게 모든 검색어 뒤에는 '추천'을 붙인다. 왜일까?


내가 찾은 이유는 이렇다.

평균을 넘어서는 도전에 대한 민족적 두려움. 장애와 차이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적 인식은 '튀는 것', '경쟁에서 지는 것'에 대한 혐오마저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한 세상 속에 잠식되어 살아갈 땐, 어떤 결정이든 그게 오롯이 나의 책임이라는 생각은 무거운 사슬과 같이 느껴진다. 대학교 과도, 신혼집 아파트도, 육아용품도, 교육교재도. 이 모든 것들에 '추천'을 받아 인터넷에 검색하여 찾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촘촘히 전국민 네트워크화된 나라라니! 참으로 마케팅하기 좋은 나라다.


그러나저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과연 내가 어떤 것에 만족하는지 찾기 어려워서.


평균에 크게 벗어나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해 온 나는, 특별히 결혼의 과정에서 더 큰 고민에 빠져 버렸다.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생겼고, 그와 함께 있고 싶어서 결혼을 하기로 했다. (이것은 '남들만큼 살려고'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남들만큼은' 하고 싶을까.


이를 벗어나기 위해 먼저는, 선택의 연속들 앞에서 내가 만족하기로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는 그 결단들이 크게 흔들리는데, 바로 비교할 때다.

비교우위든 비교열위든, 비교하다 보면 더 좋아 보이는 것을 발견한다. 

내가 잘 몰라서, 내가 잘 안 찾아봐서, 내가 돈이 없어서.. 여러 이유를 들어 나를 탓하며 그 결단들을 무너뜨린다. 마치 무너지라고 주문을 외우는 사람처럼 나의 결정을 못 물러 야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하면서는 평균을 찾기가 어렵다. 누가 말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들은 다 '이 정도면 괜찮다'는 평가이다. 내 상사가, 내 동료가, 내 부하직원이 나를 그렇게 평가한다면 만족할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타인의 평가에 기준을 삼아 평균값을 산출해내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사실, 일에서야말로 평균에 맞으면 어느 정도 만족해버리는 것도 성장을 저해하는 나태함 아닌가. 

그러나 평가가 없는 일이 얼마나 맨땅에 헤딩하는 것 같은지, 안개 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은지를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어두운 터널을 헤드라이트도 없이 휴대폰 불빛에만 의지해 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인간의 본성이라 했던가. 나에게 없는 것들에 대해 탐하게 되는 욕심이.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불안함이, 나에게 없는 것들에 대한 탐심을 더욱 키워간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나 자신의 기준이 명확하기를 바란다.

불안과 초조함에 끌려 가는 삶일지라도, 내 기준에 대해 긍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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