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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샬럿 Sep 01. 2015

떠오른 얼굴

Here, There and Everywhere :: 어느 겨울의 그리움


  사람의 잔상이란 또 다른 누군가로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남은 미온이란 시간이 거듭된대서 사리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나는 어느 겨울의 지하철에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주 오래 좋아했던 이를 가까스로 정리하고 난 후. 든 자리의 흔적도 없이 지웠으리라 생각한 터였다.




  그날은 아주 추웠다. 남쪽에선 좀체 겪을 일 없는 매서운 바람이 시종 양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도서관에서 뜨거운 입김을 뿜으며 책을 읽다, 피부에 드리워오는 날선 한기에 그만 두 손을 들어버렸다. 여느 때보다 조금은 일찍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저녁 라디오가 흘러나왔다. 그 시간의 라디오는, 하루의 전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닮았는지 어딘지 노곤한 구석이 있었다. 익숙한 노래들을 따라 곱씹듯 음을 음미하다 무언가 시작되었고, 눈이 번쩍 뜨였다. 폴 매카트니의 매력적인 러브넘버였다. Here, There and Everywhere.




  <Here, There and Everywhere> - The Beatles
  To lead a better life
  I need my love to be here
  Here, making each day of the year
  Changing my life with a wave of her hand
  Nobody can deny that there's something there
  There, running my hands through her hair
  Both of us thinking how good it can be
  Someone is speaking, but she doesn't know he's there
  I want "HIM" everywhere
  And if she's beside me I know I need never care
  But to love her is to need her
  Everywhere, knowing that love is to share
  Each one believing that love never dies
  Watching her eyes and hoping I'm always there
  I want "HIM" everywhere
  And if she's beside me I know I need never care
  But to love her is to need her
  Everywhere, knowing that love is to share
  Each one believing that love never dies
  Watching their eyes and hoping I'm always there
  I will be there, and everywhere
  Here, there and everywhere



  뜨인 눈으로 들어온 풍경은 새삼스러워 보였다. 마주 보기 객쩍은 얼굴들이 이른 땅거미를 이고 저마다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퇴근길 지하철 좌석엔 낯선 어깨들이 밭게 모였다. 살갗 모서리가 부딪는 그 공간에선 초췌한 얼굴들이 시선의 사벽을 둘러싸는 법이었다. 지친 얼굴들이 형광등 아래서 적나라했다. 미세하게 깜빡이는 불빛을 따라 무심한 눈과 앙다문 턱이 점멸하고. 칼칼한 시선들이 텁텁한 허공을 맴돈다. 차갑게 얼어붙은 얼굴들이 처진 어깨를 더욱 내리누른다. 언제나 그런 모습이었건만, 그 공간이 유별나게도 컴컴해보이는 날이었다. 어릴 적 미술학원에 쪼롬이 서 있던 습작 같은 석고좌상이 떠올랐다. 부감 이외에는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았던 다비드 넷, 비너스 셋 따위들.

  속삭이는 듯한 폴맥의 노랫소리가 잔흔을 남기며 멀어지고, 무의미한 소리들이 이어졌다. 라디오를 끄자 적막이 찾아왔다. 그 순간 문득, 얼굴이 그려졌다. 눈을 들어 마주한 창에 희고 까만 얼굴이 도장처럼 찍혔다. 멀건 어둠으로 보얀 윤곽이 겹치더니, 말간 얼굴이 도렷하게 피어올랐다.


  익숙한 노래를 따라서 이렇게도 쉽게 떠오를 사람이라니. 그는 내 마음에서 난 적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기 어린 온기가 코 끝을 따갑게 맴돌았다. 그림자에마저 체온이 있는 사람이었다. 다문 입으로 그의 이름을 따라 혀를 굴리면 어느새 입 안이 촉촉해지곤 했다. 지하철 안은 춥고 건조했다. 그가 보고 싶었다. 유별나게 추웠던 어느 겨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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