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쓸데없는 상위비전 TMI ㅎ
1년 띵가띵가 놀다가 일 복귀한지 2달 되었다. 놀았던 1년의 시간이 그립기는 커녕, 그런 시절이 있긴 했었나 싶게 다 까먹어 버렸다. 여전히 우리 팀과 일하는 것이, 창업자분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제일 재미있고 큰 기쁨을 준다.
워낙 다이나믹 스타트업 월드라, 겨우 1년 없었을 뿐인데 달라진 점들이 꽤나 있었다. Open AI 가 몰고온 The whole new AI world 가 제일 큰 변화겠지만, 그보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고 신나는 변화는 아래의 두 가지.
1) 뷰티,엔터,푸드 등 소비재브랜드 영역에서 유능한 인재들의 창업이 늘어났다는 점. #외국어능통 #관련직장출신 #좋은학력 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창업자분들의 소비재브랜드 창업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K-콘텐츠 덕분으로 한국브랜드의 글로벌 신뢰도,선호도가 올라갔고, 그로 인해 ‘소비재창업’을 통한 기회의 크기가 내수only 에서 글로벌, 특히 소득수준이 높은 선진국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이젠 좀 스케일이 나오네' 하고 생각한 인재가 몰리기 시작하고, 인재들이 모이니까 장사가 사업이 되고, 개인의 프로젝트가 회사가 되며 서로 경쟁하고 배우면서 전체 시장을 키워가고 있는 것 같다.
2)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창업자분들이 많아진 점. 최근 한 달간 만난 회사들 중 절반 정도의 회사가 여성대표님이 창업한 회사. Tech에 국한되어 있던 창업분야가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생겨나는 변화일 수도, 또한 소수의 여성창업자분들이 지난 십 수년간 보여준 소기의 성과들이 다른 여성분들에게 용기와 도전의지를 만들어줬기 때문일 수도, 혹은 여성의 사회진출 정도가 어떤 임계점을 넘어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 있겠다. (아니면 내가 몇 안되는 여성VC라서 오히려 그냥 나에게 더 연락이 많이 오는 걸 수도 있다 ㅎㅎ) 지난 두 달 간, 꽤나 다양한 영역에서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여성창업자분들을 만나는 경우가 잦았고, 대부분 '더더더' 잘하고 싶어 하시고 성취하고 싶어 하셨다.
위의 두 가지 변화들을 느끼면서 들었던 생각이 하나 있다.
내가 여성이라는 점 뿐 아니라 패션+헤어+말투+삶의 방식 들에서 오는 어떤 '투자자스럽지 않음'이 좋게 말하면 개성적이긴 했지만 투자하는 데에는 사실 도움이 안되었고 오히려 '일을 할 줄이나 알려나..' 편견을 스스로 자초한 면이 있어서, 그 편견을 넘어 잘해보려고 열심히 노력한 10년이었다면...최근 두 달간 창업가들을 만나뵈면서는, '오잉? 어라? 나의 이런 면들이 장점이 될...수...도?'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실제로 뷰티&패션&푸드 분야의 대표님들을 만나면 이런 '투자자스럽지 않음'을 더 친근하게 느껴서 경계심을 무장해제 해주시는 경우도 많고, 또한 여성대표님들을 만나뵈면 서로 많은 걸 이야기하지 않아도 싱크가 맞는 경우들이 많다.
그냥 계속 하다보니 이런 날이 오긴 오네, 하는 생각에 신기하다. 물론 잘 알아보고 좋은 투자를 하는 건 또 별개의 이야기지만, 그래도 약 10년 만에 ㅋㅋ 내 특성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금 신남 ㅎㅎ
그리고 TMI 하나.
VC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일하면서 현타가 올 때가 있을텐데, 그 때 나를 붙잡아줄 상위 비전 같은 거 하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마음에 담은 비전이 있었고 가끔 스스로 되새기면서 얼마나 왔나.. 하고 가늠해보던 것이 있다.
위의 내용이 바로 그 것. 8년 전에 했던 인터뷰가 아직 남아있길래 가져왔다. 지난 10년을 돌아보자면 (물론 내가 기여한 건 별로 없긴 하지만) 위에 적은 기대했던 변화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어서 신기하고, 누군가의 성공이 나의 즐거움일 수 있는 이 일을 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TMI 이지만, 앞으로의 10년 동안 현타올 때마다 생각할 또 하나의 상위비전을 추가했다.
평소 다양성, 밸런스에 남들보다 집착..을 좀 하는 편인데 내가 생각하는 어떤 방향으로의 다양성과 밸런스를 위해서는 '성공한 여성창업자 스타' 들이 더 많이 나오고 지금보다 더 대단한 규모까지 성장해주셔야 하며, 또한 자수성가로 부를 이룬 여성분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그로 인한 파급,낙수효과들로 인해 사회가 조금 더 다양해지고 밸런스가 잡힐 수 있다고 생각. 평소에도 자주 하고 있는 생각인데 이제는 조금 더 시도하고 노력해볼 수 있는 시절이 되지 않았나 싶어서 요렇게 브런치에 적어두고 가끔 스스로 상기해보고 노력해보고 싶다.
창업보다 수성이 훠얼씬 어려우며, 만족하지 않고 지치지도 않으면서 꾸준하게 계속 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와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옆에서 으샤으샤 해주는 존재가 그 힘든 여정을 같이가는 데에 꽤나 중요한데 여성창업자분들은 그 러닝메이트가 확실히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갑자기 자기PR해보면.. 4년 간 창업해 회사를 운영했고, 10년간 투자자로 스타트업 Scen에 있으면서 누구보다 창업자들과 많이 이야기하고 같이 해결하려 했고, 여전히 Scene에 있는 몇 안되는 여성이다, 그리구 계속 열심히 한다! ㅎ(자랑끝ㅎ) 보고 배운 것들을 '상위비전' 달성에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시장은 변화하고 특히 내가 속한 시장은 그 어디보다 휙휙 바뀌기에, 당당하게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라고 하려면 나도 계속 진화해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