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어지간히 함께 몰려다녔던 친구들이 있다.
남자 셋에 여자 둘. 썸이라도 타던 관계냐하면 그건 전혀 아니고,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 주야장천 어울려 다녔는데 평소에는 2~3명만 보기도 하고 3~4명만 보기도 하고 그때그때 시간 맞는 애들끼리 놀다가도 한 번씩 목적지를 정해 여행을 다닐 때 꼭 5명이서 움직였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내 생일을 핑계 삼아 또 여행 계획을 세웠었는데 목적지는 '월포'였다.
주로 밤낚시를 위한 여행이 많아 항상 날 저물어 출발을 하곤 했는데 그날도 날이 저물어 어두운 밤산을 배경으로 떠 있는 달을 보며 출발했던 기억이 난다. 월포에 도착해 숙소를 정하고 밤바다 해변에 모였다.
허구한 날 형제처럼 함께 쏘다니던, 마냥 철없던 친구들이 어울리지 않게 케이크에 장미꽃 스물네 송이까지 꼼꼼하게 준비해 분에 넘치게 낭만적인(?) 생일을 연출해주었다. 친구들이 준비해온 나무로 모닥불을 피우고 바라본 늦겨울의 밤바다는 그날따라 보름이 가까워 유난히 크고 밝던 달 때문에 더욱 그윽하게 보였다. 한참을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다 밤낚시를 할 친구들은 밤낚시를 하고, 나머지는 눈을 붙였다. 새벽에는 친구들이 끓여준 미역국 한 그릇을 뜨끈하게 먹고 생선 경매장에 구경 갔다. 생전 처음 보는 경매 광경에 넋을 잃고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돌아오는 길에 경주 민속공예촌에 들러 구경했는데 한 친구가 도자기 인형을 사줬다. 내 눈엔 틀림없는 공룡인데 다른 아이들은 거북이라고 주장한 그 인형이 그날의 추억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증거다. 브라운과 그레이가 진하게 섞인 몸통에 보라 점박이 무늬의 흙도자 인형.
그때의 친구들은 이제 하나 둘 모두 장가가고 시집도 가서 어느 친구는 여전히 가깝게 지내고, 어느 친구는 건너 건너 소식을 알고 지내며, 어느 친구는 아예 소식도 모른다. 뒤집으면 '메에~~~~' 울던 양인형도, 빨간색이 앙증맞던 책상 스탠드도, 다이어리니 립스틱이니 하던 그날의 선물들은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사라졌다. 다만 저 공룡 도자기 인형만 어떻게 남아서는 계속 내 사는 곳마다 따라다니고 있다.
좋았던 학창시절의 추억이긴 하지만 아주 특별한 추억도 아니고, 각별한 의미를 지닌 선물도 아니었는데 참 오랜 세월 함께하고 있다. 애지중지하며 아껴주지도 못했는데 있는 듯 없는 듯 늘 곁에 있었다 생각하면 "그 녀석 참..." 하며 한 번씩 쳐다보게 된다. 봄이 오면 또 한 번 사는 도시를 옮길 것 같다. 그 낯선 도시에서도 저 녀석은 나와 함께 있겠지.
조용히 해가 집니다. 새털 같은 구름도, 저 멀리 정지한 듯 멈춰있는 배도, 수면에서 반짝이는 햇살 가루도 모두 조용합니다. 찰싹찰싹- 고요히 숨을 고르는 파도의 잔물결 소리마저 고요하네요. 어느 순간 어둠으로 주변이 까맣게 물들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고픈 풍경입니다. 때로는 아무 소리도 없이 침묵하며 가만히 적막함에 젖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공룡 #도자기인형 #헨드릭 윌럼 메스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