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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달빛 Jul 18. 2017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붙이면 남'이 된다는 유행가 가사를 즐겁게 흥얼거릴 수 있어도 '미혼'과 '비혼'이라는 문자의 차이는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게 인지상정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미혼(未婚)’ 대신 ‘비혼(非婚)’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30대-싱글-여성이 되고 보니, 단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미완의 존재, 변수가 많은 사회인 취급당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은 의지를 담아 '비혼'이라고 한다. 이런 나를 향한 반응은 제각각이다. 당황과 비웃음이 뒤통수를 간지럽힐 때도 있고, 어떤 이는 "대충 의미만 통하면 되지, 까칠하게 따지고 있냐"라고 오히려 나를 타박하기도 한다. "그럼 아예 결혼할 생각이 없는 거야?"라거나 "그래도 애 낳을 수 있을 때 가야 할 텐데..."라는 걱정도 필수다. 그때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을 랩처럼 쏟아내며 상대를 설득하는 건 내 몫이다. 나는 왜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가 선택한 삶을 누군가에게 해명해야 할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만 정상 범주에 속하는가? 그런 구분은 누가 - 왜 하는가? 결혼 안 하는 것이 문제일까, 그걸 문제시하는 편견과 무례가 문제일까?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혼'은 낯선 단어였다. 그러나 1인 가구 비율이 25%를 넘어선 요즘에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회는 ‘생물’이다. ‘타임워프’하여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당연하게 여겨지던 제도나 관습도 사회 변화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며 그 변화를 감지하고, 읽어내고, 수용하며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는 이런 사회적 변화를 연구해온 일본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와 미나시타 기류의 대담집이다. 우에노 지즈코는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라는 책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비혼 페미니스트고, 미나시타 기류는 ‘함께 사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어서 결혼을 선택하여 두 아이를 낳은 페미니스트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졌으나, 공통의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너 나 할 것 없이 결혼하던 시대는 끝났다, 사실 모두 결혼하는 시대야말로 이상했다!”라고 전제한 두 사람은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사회적 흐름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비혼과 저출산 현상, 비혼의 증가로 폭로된 불평등한 인식과 제도의 문제,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들을 통해 결혼만 정답이라 여기는 사회보다 비혼이든 결혼이든 개인의 선택을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두 사람은 “긴 세월 동안 여성에게 결혼이란,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생활 보장재였습니다. 적어도 여성에게는 여성이 결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사회, 이혼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훨씬 더 살기 편한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라는 상식에 기반을 두어 ‘전통적 결혼관’을 재고하고, 사회를 재구성할 것을 요청한다. 물론 일본 사회에 국한된 이야기라 우리가 당면한 현실에 바로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일본 사회가 겪은 현상을 뒤이어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 담긴 분석과 통찰은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이제 ‘비혼’은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고민해야 할 사회적 과제다.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을 수 있기에 좋은 사회는 요원한데 “결혼 안 해?”라는 질문이 “아이는 언제 낳을 거야?”라는 질문으로, “하나는 부족하니 둘은 낳아야지”라는 압박으로 뻔뻔하게 번식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착오적 질문과 간섭은 “그게 어쨌다구요?!” 정신으로 되돌려주어야 한다. 이 책에 인용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을 빌리자면, 변화는 “자신의 상황에서 느끼는 고통과 불쾌함을 분하게 여기고, 여기에 짜증을 내는 일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복음과상황> 20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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