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회사원이 될 거야. 죽을 만큼 노력해서 평범해질 거야.”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청춘시대> 속 윤진명의 말이다. 진명의 삶은 치열하다. 과외와 레스토랑 서빙이 끝나면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는 대가로 받는 돈은 140만 원 남짓. 학자금 대출 이자와 월세, 생활비를 해결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그런 진명의 유일한 소망은 취업해서 평범해지는 것.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도 지루한 삶이 어떤 이에게는 '희망’이라는 추상명사로만 존재한다니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진명은 드라마 속에 존재하는 가상 인물이지만 우리 곁 청춘의 '얼굴'이기도 하다. 대학 진학률 못지않게 등록금도 성실하게 인상되어 ‘1천만 원 시대’가 열렸건만 경제성장률과 취업률 등 체감 지표는 전속력으로 하락하여 대부분의 청춘은 '학생'이 되기 위해 ‘채무자’가 된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소를 팔아 대학 보낸다”라는 말이 통했지만, 2000년대 이후는 “대출받아 대학 가는 시대”가 되었다. 많은 대학생은 ‘빛나는’ 청춘이 아닌 ‘빚내는’ 청춘 되어 존엄과 환멸 사이 어딘가를 헤맨다. 이런 청춘들의 서사는 시사 주간지 <시사인>의 ‘흙밥 보고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카레나 다시다를 끓인 물에 밥을 말아먹거나 생수로 끼니를 때우고, 창문도 없는 1.5평 방에 자신을 가두며 '미래'를 위해 '오늘'을 잃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철 모르는’ 어른들의 말처럼 “눈 높은 청년들이 노오력을 안 해서”일까? <청춘시대>의 대사처럼 청춘들은 그저 "열성 유전자 합집합” 같아서 "연체 → 절약 → 일시 상환 → 빈곤”이라는 굴레에 갇힌 존재들이 된 건가? "대한민국 최초의 부채 세대” 연구서인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는 이런 질문에 관하여 '청년 부채’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와 제도의 문제라는 사실을 성실하게 증명한다. 이 책에는 '채무자'이자 '부채 연구자'인 저자를 포함한 26명의 20~30대 연구 참여자들의 사연과 다양한 데이터가 담겨있다. 현민 씨는 왜 55분 걸리는 등굣길을 걸어 다니며 굶는 일상에 익숙해져야 했는지, 강선 씨는 왜 졸업을 유예하는 NG(No Graduation) 족이 되어야 했는지 등의 사연들은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변화 과정과 학자금 대출의 역사, 대학(원)생이 ‘학생-채무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변화와 문제 등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이 책에 담긴 청춘들의 이야기는 우리 교회 청년 A, 동아리 멤버 B, 아는 동생 C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또한, 사회 구조와 제도의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고민하며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이 책을 읽자. 지난 대선 때 대통령 후보들이 외쳤던 "최저 시급 1만 원, 청년수당, 대학 등록금 및 부채 문제 해결, 비정규직 문제 해결..." 상상만 해도 벅찬 공약(公約)들이 공약(空約)으로 변해 공중분해되지 않도록 '빚지지 않을 권리'를 가진 청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 출발하자.
이 책을 읽고 오랜만에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들었다. "유예되었네 우리 꿈들은 / 빛을 잃은 나의 공책 위에는 / 찢기고 구겨진 흔적뿐 / 몇 장이 남았는지 몰라 / 연체되었네 우리 마음은 / 완전함은 결코 없다고 해도 / 부족함을 난 견딜 수 없어(9와 숫자들 ‘유예’ 중)” 연체되고, 유예되는 삶을 버겁게 견디고 있는 청춘들이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길 바란다.
<복음과상황> 20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