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소녀를 애도하며.
아주 우연히 죽음의 단면을 보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에는 '스물 넷을 지천명이라 하면 좋으련만.' 이라는 한 줄의 문장이 있었다. 병원에서는 3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는데 자신은 이미 1년 6개월을 사는 중이라는 문장도. 그리고, 그녀의 언니라는 사람이 '오늘 아침에 동생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동안 동생의 글을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그녀 계정의 마지막이 될 글, 을 나는 보았다.
문득 책상위에 어지럽게 펼쳐진 전공서적, 이를테면 도달률, 빈도, GRP따위의 단어들이 어찌나 우습게만 보이던지 나는 그만 살기가 싫어져버렸다. 누군가는 담담하게 죽음과 대면하고 자신의 현재를 사랑하고 있(었)는데, 나는 내 남은 생에서 도무지 쓰일 것 같지도 않은 단어들과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가 한심스러워지려다가,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조차 나는 부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_ 라는 생각에 조금 무서워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를 것없이 삶을 지속해나갈 것이다. 아침이면 간신히 눈을 뜰 것이고, 많이 웃고, 또 울면서 여하튼 생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내가 지겹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하는거야!' 라고 자신을 다잡을 내 모습이, 가끔은 참 많이 혐오스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