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마음산책, 2014.
"다 똑같은 과정을 거쳐요. 청춘은 반복돼요.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한 번 뿐이고 지나고 나면 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제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사람이 나아지는 건 너무나 어렵다는 것. 예전에는 많이 배우면 나아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이 진보하진 않아요. 시간이 지난다고 세상이 진보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 p. 36
"너무 잘 살아보려고 하지 마세요. 그런 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거잖아요. 젊었을 때는 천 년을 살 수 있는 사람처럼 살았으면 해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보고 싶은 거 다 보고요. 하지만 그런 낮을 보낸 날에도 밤은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고, 그 밤에 대개 우리는 혼자겠죠. 그런 밤이면 아마 시간이 너무 많아서 버겁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거예요. 맞아요. 그래서 청춘은 무거워요. 빨리 늙었으면 싶기도 하고요. 그럴 때 저는 저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책을 읽었어요. 그러다가 마음이 동하면 잘 알지도 못하는 문장들에 줄을 그었죠. 그렇게 책에다 몇 번 밑줄을 긋다가 잠들고 나면, 또 새로운 날이 시작됐죠. 역시 어마어마하게 많이 남은 나날 중의 첫 번째 날. 누군가에게 <청춘의 문장들>은 그 새로운 날에 돌이켜보는, 지난밤의 밑줄 그은 문장 같은 것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p. 197
'넘쳐흐르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탐닉하곤 했던 일본의 영화와 드라마엔 주인공이 밥을 먹기 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いただきます." 하고 식사 기도를 하는 장면이 늘 있었다. 캐릭터가 느끼고 있을 주된 감정과는 별개로, 따뜻히 차려진 한 끼의 식사 앞에서 모두 조금씩 경건해져버리고 마는 것이 참 자연스러웠다는 기억.
아직 읽지 못한 그의 책과 마주했을 때의 내 마음이 바로 그렇다. 김연수 - 라는 세글자가 나로 하여금,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하고 말해버리게 만드는 것. 천천히 아껴 읽고 싶은 욕망과 마지막 장을 넘길 때의 그 떨림을 어서 느끼고자 하는 욕망이 수차례 갈등을 빚으며 책장을 넘겨나가다보면, 어느새 정하고도 따뜻한 상차림을 대접받은 기분이 된다. 그러니까 종내엔, "ごちそうさまでした." 라는 감사와 훗날을 기약하는 인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