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법칙』, 편혜영, 문학동네, 2015.
'파국에서 시작되는 인물들의 궤적, 다른 점(點)에 가닿으려는 안간힘으로 그려지는 선(線)' 이라는 뒷표지의 두 줄 카피를 읽자마자 어쩐지 '편혜영스럽지 않다' 라는 생각이 앞섰다.
편혜영, 이라는 세 글자를 머릿 속에 떠올려보면 '피 비린내', '삶의 맨 얼굴' 같은 것이 먼저 맡아지고 또 보여지는 듯 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유약한 편인 나는 그녀의 전작들을 읽는데 꽤나 많은 시간과 마음을 들여야만 했다. 그녀의 소설은 내면의 무언가가 소모 혹은 소실되었다는 강한 느낌을 주었고 여러 날에 걸쳐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편혜영스럽지 않은' 카피와 표지를 내고, 선(線)에 대해서 제법 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니, 왠지 믿어보고 싶어졌다. 처음 맞닥뜨린, 순백에 가까운 하얀 표지는 적어도 빨간 혈흔을 연상시키지 않았으니까.
지하철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짧은 호흡으로 끊어가며 책을 읽어내는 동안 선(線)이 되고자 했던 점(點)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것이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곤 할 때엔, 책을 오래도록 매만지다 가슴께까지 끌어 안아야만 했다. 책장을 덮으니 그제야 하얀 표지에 드문드문 까만 때가 타있는 게 보였다.
선(線)이 선(善)으로 곧장 이어지길 바라는 희망은 분명, 곧 들이닥칠 씁쓸함과 헛헛함을 감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먼저 선(線)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일부터 시작할 것. 철저히 홀로 살아가는 것 같대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연대의식, 그것을 믿으려 애쓰며 살아갈 것.
모두가 아프지만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지금. 타인의 건조한 얼굴 뒤의 슬픔을 발견하고 (신기정이 동생의 부음을 듣고 가장 먼저 느꼈어야 할) 애틋함을 느끼는 일. 그것이야말로 선(線)의 법칙이 선(善)의 법칙으로 치환되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음을.
사람에 대하여, 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어떤 감정(마음)을 갖는 일. 그 일을 게을리하지 않겠다.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언제고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연은 원할 때는 못 본 척하지만 원치 않을 때는 조력을 베풀기도 하니까. / p. 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