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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Oct 05. 2015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은 대체로 침울하다

『나의 소중한, 침울한 이여』, 황인숙, 문학과 지성사, 1998




그녀는 '고통만스럽고 진실은 없는' 것이 인생이라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 또한 타인이 붙여놓은 촛불 앞에 서서 재빨리 '지극히 속된 기도'를 올려야 했다. '고단하지 않으면 구차한' 것을 인생이라 정의했지만, 연정을 품은 이에게 '달의 냄새'가 난다고 수줍게 이야기 했고, '침울한, 소중한 이'에게 비가 내리거든 그 비가 되어 당신을 흠뻑 적시겠노라 고백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은 대체로 침울하기 마련이다. 사랑은 하나의 삶만을 살아오다 갑작스레 두 개의 삶을 살게 되는 것. 하나의 좋음이 두 개의 좋음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를 침울하게 만드는 일에 더한 마음을 내어주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이니까. 


그러나 그런 침울함까지도 사랑이 수반하는 불가피한 책임과 같다면, 그렇다면 나는 끝끝내 그 침울함을 짊어지기로 결심할 것이다. 






비가 온다.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

비가 온다구!


나는 비가 되었어요.

나는 빗방울이 되었어요.

난 날개 달린 빗방울이 되었어요.


나는 신나게 날아가.

유리창을 열어둬.

네 이마에 부딪힐 거야.

네 눈썹에 부딪힐 거야. 

너를 흠뻑 적실 거야.

유리창을 열어둬.

비가 온다구!


비가 온다구!

나의 소중한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황인숙 /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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