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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Sep 06. 2015

가짜 눈으로 하는 눈맞춤






그녀가 말했다.


 "오빠, 아무래도 K가 오빠를 좋아하는 것 같아." 귀가하는 지하철 안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온 동생인 J가 말했다. "응? 나는 전혀 모르겠던데, 왜? 게다가 나는 우선 못생겼잖아..." / "아니 그러니까 좋아하는 거랑 오빠가 못생긴 거랑은 별로 상관이 없을 수 있지."


나는 생각했다. 내가 그녀에게 특별히 호의를, 적당한 온도 이상의 다정함을 나도 모르게 내보인 적이 있던가.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학교에선 내가 아는 한 늘 권태로운 표정을 짓고, 강의실에는 정확히 강의 시간에만 앉아있으며 가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시시한 농담 같은 이야기 밖에 하질 않으니까. 내가 진짜 말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선 입을 열지 않는다. 어차피 이해받지 못 할 걸 아니까. 정확히는 이해받고 싶은 마음조차 없으니까.


"K는 오빠가 자기랑 비슷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왜 처음 봤을 때 책이니 영화니 이런 저런 이야기 했었잖아." / "그게 뭐?" / "그냥 그런 거 좋아하는 남자애들 자기 주변엔 없으니까, 오빠에게 관심을 갖게된 게 아닐까." / "그 때 잠깐 뿐이었는데 그런 대화는..."


그제야 요며칠 K의 행동들이 조금 이상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내 옆자리에 앉던 J가 늦게 왔던 날, 이상하리만치 먼저 내 옆에 앉기를 꺼렸던  일, (나는 진심으로 내게서 무슨 냄새가 나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먼저 물어온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던 날 밤에 내가 카톡목록에 뜨질않는다며 늦은 밤 채근하여 J로 하여금 나를 채팅방으로 초대하게 했던 일, 몇몇 짧은 대화들.


"어떻게 해야해, 이럴 땐? 마음 두고 있는 사람이 이미 있다고 말해야하나." / "아니 왜 오버하고 그래, 아직 걔가 무슨 고백을 해온 것도 아니고..." / "맞네. 그럼 모르겠다. 괜히 너 이상한 소리하고 다니고 그러면 안 돼." / "이상한 소리는 무슨... 촉은 그래. 아마 맞을거야. 무튼 공강일에 연락오면 이건 백 퍼센트다. 오빠, 연락오면 꼭 말해줘, 알겠지. 응? 나 간다." / "뭐야, 정말... 응, 잘 가."


마치 예정된 일인양, K에게서 연락이 왔다. 강의 교재에 관한 물음이었다. 감정 표현에 몹시 서툴던 어린 날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때문에 그녀가 안쓰러웠지만 사실, 그보다 지난 날의 나를 더 안쓰러워하기 바빴다. 언젠가 자신이 사는 동네에 놀러오라고, K는 말했다. 나는 언젠가 연애를 했던 사람과 가본 적이 있던 곳이라고 대답했다. K는 메신저 상으로 한참을 웃더니 '어디어디 갔었는지 캐묻고 싶지만, 참을게요.' 라고 했다.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한번도 나를 드러낸 적이 없다. 아니, 드러낼 필요에 대해 생각해본 적 조차 없다. (그녀가 그 두터운 페르소나를 뚫고 내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내게도 어떤 느낌이 분명히 전해졌을테니까.) 그렇다면 그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을, 아니 어쩌면 좋아한다고 말해도 부족함 없을 그는 도대체 누구일까.


결코 나일 수 없다.



사진, 글 / 시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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