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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Sep 06. 2015

젊은 사랑에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녀가 말했다. 


"오빠, 나 좋다는 사람이 생겼어." 


나의 여동생은 사람 만나기를 꺼리고 집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이십대 초반의 집순이였다. 연애 한 번 못해본 그녀가 어느날 대뜸 네게 말해왔다.


"약국에서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인데, 며칠전부터 나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더니만 갑작스레 생일선물을 건네는거야. 설마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나, 싶었는데 며칠 후에 정말 고백을 해오더라고. 근데 나랑 너무 다른 사람이라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려. 그래도 우선은 만나볼까봐. 어때 오빠 생각은?"


"그래? 음... 근데 그 사람은 네가 왜 좋대?" 


"뭔가 다르대. 나와 달리 꽤나 경험이 많은 사람 같은데, 만나온 사람들과 나는 좀 다르대. 그래서 궁금해만 하다가 갑자기 좋아졌다는데..."


당시의 나는 '나와 정서적, 문화적 교류가 충분히 가능한 사람에게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허할 수 있다.' 라는 연애관을 가졌었기에 여동생의 말에 회의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의 생각이 틀렸음을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취향이라는 것은 그저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고, 사랑은 그런 것쯤이야 쉽사리 껴안고도 남는, 그야말로 위대한 것임을 여동생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욕심이 들어버렸다. 때문에 조심스레 입을 떼며 말하길,


"뭐... 좋은 사람이고, 너도 호감이 있다면 연애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근데 솔직히 말해봐. 이렇게 털어놓았다는 거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는 마음을 굳혔다는 거 아냐?" 


"사실 맞아. 우린 이미 사귀고 있어."


대답을 듣자마자, 그들이 빚어낼 사랑과 그 유효기간에 대해 잠깐 생각해봤다. 그리고 말했다. 


"조금 오지랖 넓은 말일 수 있지만, 그래도 한 가지만 말해두고 싶다. 그 사람이 너의 어떤 면에 호기심을 느꼈고, 너의 어떤 면을 보고 네가 좋다고 말할 정도로 마음이 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너를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해. 네가 듣는 음악, 너의 말투, 네가 주로 쓰는 단어들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해. 지금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너도 그 사람이 점점 더 좋아질테고, 그 마음에 눈이 멀어 한참 좇다보면 결국 스스로를 잃게 되고 상대는 너를 재인식하게 돼. 나는 얘의 어떤 면을 보고 좋아했지? 이제껏 만나온 여자들과는 별반 다를 것이 없는데, 하고 말야. 그때부터 너의 연애는 결말만 남게 되는거야. 호기심으로 시작된 사랑은 대개 그렇게 끝나."


그 후 여동생의 귀가시간은 점점 늦어졌고, 자기 방의 문을 걸어 잠그고 통화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가끔 얼굴을 보면 분명 웃고 있지 않음에도 어딘가 밝은 기운이 느껴졌었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 모든 이별이 그렇듯 그녀의 이별도 갑작스럽게 왔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보였다.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는 오래였지만.


그렇다면 아직도 당신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쌓아가는데 있어 취향만이 그 기반이 되어야만하는 사람인가,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생의 절반에도 훨씬 못미치게 살아온 남녀가 만나 호기심과 섹스만으로 사랑을 해나가기엔 그 한계가 잔인하리만큼 분명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때문에 젊은 사랑에는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호기심과 섹스 너머의, 형언되지 않은 따뜻함 같은 것들을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그런 자연스러움 속에서야 비로소, 사랑의 맨얼굴과 마주할 수 있다. 


꼭 취향에 관한 것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취향이 일정부분 겹친다면 이야기가 불어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고, 이것이야 말로 사랑에 있어 내가 취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글, 사진 / 시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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