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옷 Sep 10. 2015

『스페인 야간비행』, 정혜윤, 북노마드, 2015









우리는 각자 홀로라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우리를 진정으로 매료시키는 것의 일부가 되기를 열렬히 원하는 순간도 있어. / p. 45



마리오와 내가 황금 성배나 황금 양털, 하얀 고래를 찾는 위대한 모험을 한 것은 아니야. 그러나 그는 일상적인 눈빛과 태도만으로 삶의 모험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줬어. 그의 불타는 눈은 이렇게 말했어. 우리는 그저 탐색이 어렵다는 것을 발견한 것뿐이고 탐색을 계속할 의무가 있다고.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어려울 뿐이라고. 해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해답을 아직 못찾았을 뿐이라고. 포기한다는 말을 쉽게 해버리지 말라고. 먼곳을 보라고. 더 먼곳. 더, 더, 더, 먼곳...... 그러다가 가장 먼 곳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 되어버리라고. / p. 48



시간은 우리를 덮치기만 하는 것은 아닐 거야. 우리는 시간의 강물에 휩쓸리고 있지만은 않을 거야. 우리는 고유한 시간을 만들 수도 있어. 그 시간 속에서 과연 우리는 누구였던가? 과연 서로를 어떻게 대했을까? 서로 어떤 행동을 했던가? 우리는 시간에 관해서라면 오직 이것만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이제 잘까? 내일도 함께 있자. 함께 시간을 보내자. / p. 69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이란 점 때문에 슬퍼하곤 해. 왜 그렇게 되었을까? 만약 모두가 자아를 내세우는 것도 그 이유 중 한 가지에 넣을 수 있다면 말이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넘치도록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방인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 / p. 77



1936년, 1937년 인생의 휴지 기간, 이전의 어떤 시기와도 달랐다던 그 특별한 시간은 이후 조지 오웰의 인생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있었을까 궁금했어. 그의 글을 이것저것 찾아봤어. 그리고 궁금증을 풀었어. 대답은 이거야. 

'나는 내가 어디 서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 이후에 쓴 그의 모든 글은 전체주의와 싸우고 불의에 눈을 감지 않는 것과 관련되어 있어. 그는 '나는 내가 어디 서 있는지 알게' 된 그곳을 출발점으로 삼았어. <1984>, <동물농장>은 바로 그런 사람, '내가 어디 서 있는지' 아는 사람이 쓴 거야. 그는 다른 식으로는 쓸 수 없었어. / p. 115



언젠가 반딧불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었던 것 기억해? 그때 우리에게 반딧불이는 하나의 은유, 특히 희망에 대한 은유였던 것 기억해? 끝없이 운동하면서 자유를 누리는 것, 고립이 아닌 것, 희미하지만 사랑할 때만 깜빡거리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을 추는 것, 사라지면서 빛을 남기는 것,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은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인간적 존엄을 지키기 위한 본능을 닮은 것. / p. 199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만남'일 거야. 우리는 우리일 때 나는 나로부터 벗어나는 동시에 나는 나일 수 있어. 나는 나이면서 동시에 나 이상일 수 있어. 나 스스로 나 자신의 친구가 될 수 있어. 타인에게서 나를 빌려오고, 기쁘고 영광스럽게도 나를 타인에게 빌려줄 수 있기도 해. 나의 정체성이나 나의 의미라는 것도 그들과 함께한 시간과 삶 속에서 만들어지고, 그들과 함께한 기억 속에 자리잡을 거야. / p. 203



우리는 고독한 개인이라는 말을 참 많이 쓰고 있지? 이제는 원자화되었다고 하고 분자화되었다고 하지? 너무 많이 써서 고독한 개인으로 사는 것이 당연한 것 같기도 하지? 고독해. 분명히 고독해. 어떻게 고독하지 않을 수가 있겠니? 누구나 각자의 삶 안에서 고독한 순간들이 있어. 그렇지만 나는 돈키호테의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안다'라는 말을 우리 또한 할 수 있게 될 때,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게 될 때, 그때가 되면 우리는 더이상 '그냥' 개인이 아니라, 뿔뿔이 흩어져 닫혀 있는 개인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우연과 모험의 한복판에 떨어져 공통의 일을 개별적으로 겪어내는 '그저' 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어 / p.  213



『스페인 야간비행』, 정혜윤, 북노마드, 2015




매거진의 이전글 『선의 법칙』, 편혜영, 문학동네, 201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