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패션드 - 잔에 담긴 각설탕 1 piece 위로 앙고스투라 비터스를 2dashes 드롭. - 소다수나 미네랄워터 3/4oz를 넣고 바 스푼 또는 머들러로 각설탕을 으깨어 섞어준다. - 얼음을 채우고 라이 위스키 3/4oz를 넣고 스터. - 오렌지 또는 체리 가니쉬를 올린다.
여인은 설탕을 뺀 올드패션드를 시키며 테레즈에게도 이거나 셰리주를 권했다. 테레즈가 망설이자 여인은 같은 것을 주문하며 웨이터를 돌려보냈다. 여인은 모자를 벗고 손가락으로 금발 머리를 이쪽저쪽으로 한 번씩 쓸어내렸다. 그리고 테레즈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카드를 보낼 그런 깜찍한 생각을 했어요?"
- 파트리샤 하이스미스, 『캐롤』
손끝으로 전해지는 글라스의 묵직하고 안정적인 감각. 잔을 들어 올릴 때 번지는 오렌지 필의 싱그러운 향. 입 안을 채우는 충분한 바디감. 목을 타고 넘어가는 위스키의 달콤함과 그 뒤로 자리 잡는 비터스의 쌉싸름한 아로마. 만약 칵테일의 정수가 복합미에 있다면 올드 패션드는 단연코 가장 완벽한 칵테일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니 칵테일을 즐기면서 올드 패션드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수밖에.
칵테일의 명칭이기 전에 올드 패션드(Old-fashioned)라는 단어는 '구식의', '보수적인'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실제로 이 단어를 듣거나 말할 때면 그런 일차원적인 의미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감정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구식이거나 보수적인 것들에는 보통 미련이 남지 않는다. 낡고 불편한 것으로 치부하면 그뿐, 덧대어 무언가 상기할 만한 대상이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올드 패션드하다고 부르는 것들에는 일종의 향수가 있다. 돌아가고 싶다거나 절절히 보고 싶다는 식의 격정적인 그리움은 아니지만, 지극히 일상적인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밤 소파에 기대면 살며시 떠오르곤 하는 잔잔한 그리움과 같은 종류의 것이.
'붉은색 전화부스'의 이미지는 대표적으로 내게 올드 패션드한 것 중에 하나이다. 술자리 대화의 주제가 '여행'으로 이어질 때면 나는 종종 공중전화 부스가 드물게 서 있던 오클랜드의 한적한 길거리에 대해 얘기하곤 한다. 별이 많은 밤이었다. 그다지 밝지 않던 가로등과 그 아래로 선 새빨간 공중전화 부스는 이상하리만치 서글펐다. 분명 비가 오지 않았음에도 어딘지 젖은 듯한 아스팔트 위를 걸으면서 나는 조금 외롭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의 풍경을 말할 때면 함께 있던 누군가는 홋카이도의 눈 덮인 시골길에 놓인 자전거를 떠올렸고, 또 누군가는 이국의 호텔 방에서 낡은 수화기 너머로 이별의 소식을 전해 듣던 순간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하나의 이미지를 두고서 비슷한 그리움을 공유했으며 그 점이 별안간 내게는 안도가 되었다. 그리움은 개인적인 정서인 경우가 많지만 가끔 타인과의 유대 위에 서기도 한다. 잠시나마 공적인 그리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올드 패션드한 것들은 자주 거기에 함께 있다.
올드 패션드가 만들어진 것은 1880년 무렵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펜데니스 클럽'이라는 바에서부터로 알려진다. 루이빌은 경마로 유명했던 지역인 만큼 펜데니스 클럽의 단골손님들 역시 대부분 경마꾼들이었다고 한다.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달리는 말들에게 쏟아지던 함성, 환희와 좌절, 그리고 술에 취한 손님들로 가득한 소란스러운 바. 그런 풍경들 역시도 앞선 누군가에게는 개인적인 그리움으로 점차 흐려졌으리라.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앉은 테이블에 놓인 올드 패션드 한 잔은 이후에도 쭉 어김없는 위로와 친밀감을 건넸을 것이다. 아직 살고 있는 내게도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