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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하 Dec 29. 2021

시작이 있었듯 끝맺음이 있는 거겠지만

1. 반려동물의 안락사에 대하여

중학교 때 키우던 반려동물이 새끼를 여럿 낳아 그중 한 마리를 친한 친구가 키우게 되었었다. 벌써 20년 전 일. 우리 집에서 자란 두 마리 자매들은 올해 초 나란히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강아지 수명이 15년에서 20년 정도인데 거진 20년을 살다 갔으니 호상이라면 호상이었을까. 노화로 인해 여기저기 병든 강아지들을 끝까지 케어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나는 결혼을 하고 독립한 후라 친정에 사는 강아지들을 케어하며 죽는 날까지 보살펴 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부모님과 여동생의 노력이 컸다. 만약 내가 오롯이 돌봐야 하는 환경이었다면 난 해낼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든 과정이었음을 깊이 이해한다. 친구가 데려간 반려동물도 비슷한 시기까지 꽤나 장수했지만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 오늘내일한다는 소식을 들은 최근, 고통스러워하는 반려동물의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고 이런 모습을 이어간다는 게 본인의 욕심만이 아닐지 고민된다며 더 이상 견주로서 무언가를 더 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 아픈 나머지 진지하게 안락사를 고려하고 있다며 나의 조언을 물어왔다. 우리 가족의 경험에 기대어 자연사로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끝까지 곁을 지켰다는 조언은 내 친구가 듣고 싶었던 조언이 아니었을까. 만약 안락사를 하기로 결정한다면 동짓날 이전에 보내주는 게 미신을 믿는 친구네 부모님의 사업에 액운을 제거해 줄 거랬다는 말에, 시간에 쫓겨 결정하는 그런 차원의 문제는 아니라고 대답했던 나. 그 뒤로 마치 내가 건넨 조언 때문에 힘든 과정을 겨우겨우 더 선택해 지내고 있다는 듯이 날을 세우는 그녀는 내게 어떤 대답을 기다렸던 것이었는지 되려 묻고 싶다.


2. 훌훌 털어 보세요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인간관계는 정말이지 때론 지독할 만큼 지겹고 어렵다. 가까워질수록 좋은 점은 왜 열의 하나라고만 여기게 되는 순간이 늘 찾아오는지! 그래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짧디 짧은 시간 동안 소용돌이처럼 강하게 들이닥쳤다가 홍수처럼 한동안 잠겨있었다가 결론적으로는 벼락처럼 반짝 사라져 버린. 한때의 감정에 빠져 즐겼던 잠시 동안의 추억 만들기 놀이 정도로의 끝맺음이 결론인 관계. 가볍게 그냥 적당히 냉랭하게. 너무 다정하지 않도록. 너무 다정한 건 좋지 않다. 과도한 다정함은 시간이 흘러 그 다정함으로 인해 기대한 누군가에게 아픈 상처를 주거나 받게 되기도 하니까. 원천봉쇄하고 싶다. 나의 생각이 짧지만은 않았길 바라본다. 미워하는 마음의 시작에도 끝이 있겠지? 완전한 끝이 아니더라도 시작의 끝일뿐일지라도 끝은 끝이라 여기고 싶다.


3. 다소 피곤한 쾌활함

난 나 자신이 밝고 활발하고 명랑하다는 형용사를 설명하는 예시가 된다고 여기며 살았었다. 근데 이런 나는 될 것도 아니었구나 하고 깨달을만한 타인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다. 굉장히 에너제틱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힘을 주곤 한다는 점에선 반박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그런 모습이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만을 주지는 않을 수도 있구나 라는 걸. 쾌활함 속에 담긴 다소 감당하기 힘든 피곤함은 누구의 몫이란 말인가! 에라이 적당히 해야겠다 다짐한 순간이었다.


4. 베이비 잇츠 콜드 인사이드!

너무너무 추운 날이었다. 하필 딱 하루 올 겨울 가장 추운 날 집을 비운 이래로 하루 종일 난방을 해도 20도를 넘지 않아 추무새로 보낸 지난 주말. 집의 온기가 사라지자 무엇을 해도 기운이 빠지고 삭막해 날카로워지기 딱 좋아지고 말더란. 역시 집이란 곳은 훈훈해야만 해. 겹겹의 털옷과 수면양말까지 돌돌 말아 아기를 재우고 패딩을 입고 몇 시간 동안 거실과 방의 온도를 확인하기 위해 활보하는 종종걸음, 경직된 목과 어깨, 움츠린 무릎과 발가락 끝까지 냉기가 스며들었다.


5. 작고도 작은 마음

작은 마음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아니, 비록 작은 마음일지언정 그 마음의 크기를 일일이 비교해가며 크고 작음에 연연하지 아니하고 늘 부족치 않다는 생각으로 살고 싶었다. 지난한 지난날 동안 연약함이 한뼘 다가올 때마다 단단한 미소로 울곤 하였다. 작고 작은 마음의 조각이 여기저기 치이고 부서져 이토록 큰 세계를 채우는 빛의 궤도를 이룰 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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