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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하 Aug 29. 2023

벌을 주고 벌을 받는 사이

이토록 수직적이고도 가혹한 처사


스승과 제자도 아니고 부부의 이야기다.

이 시대의 부부가 상하관계가 어디 있겠느냐만 우리부부는 어느 정도 수직관계가 존재한다. 늘 잘못하는 편인 나와, 늘 타박하는 편인 남편과의 사이가 그렇다. 사실상 부부란 평등하며 권력의 배분이 어울리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상식적으로나 이론적으로는.


그런데 늘 잘못을 하는 편인 내게도 할 말은 있기 마련인데, 나는 늘 그런 의도를 가지고 싸움을 걸거나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게 느낄 줄은 몰랐다는 게 나의 핑계라면 핑계인 것인데 남편은 늘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나의 이런 행동이 반복되다 보니 그럴 낌새가 느껴지기라도 하면 갈등의 비교적 초입인 시점에서도 이미 넌 또 그럴 것이다라는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더 크게 화를 내고 내가 행할 앞으로의 언행의 방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무조건적으로 막기 위해 다소격앙되고 이따금 강압적이게 저지하는 남편의 언행. 이것이 패턴이다


평소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면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인격차이인데 처음엔 나도 어떻게 이 모습을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고 마음도 힘들어서 내가 먼저 사과하는 편을 택했던 것 같다. 일을 더 크게 키우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러다 보니 나는 늘 죄인, 남편은 늘 판단하고 벌주는 역할을 도맡게 되었다. 그냥 나만 아니면 괜찮겠지. 대외적으로는 저 사람이 늘 이기는 방향으로 져주자,는 게 내가 내린 그나마 나에게 덜 피곤한 결론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미 나라는 사람에 대한 바꿀 수 없는 고정관념이 지배적인 남편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넌 또 시작이야, 역시나 넌 변하지 않아라는 식으로 언쟁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가혹하게 혼을 낼 것이 안 봐도 비디오처럼 그려진다.


누구보다 독립적인 성향을 가졌고, 냉정하다면 냉정한 성격인 나는 결혼 전에는 이런 나의 결혼생활의 일부분인 모습을 절대 상상도 할 수도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같은 회복 불능의 돌이킬 수 없는 관계란 게 바로 이런 걸까.


근데 우리 둘 만의 문제일 때는 그냥저냥 참을 수 있었고 힘들겠지만 나만 수용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문제는 세 살 아기 앞에서도 이런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게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이 생긴다는 점인데 그 점이 나를, 그리고 아이의 우주인 우리 부부의 모습을 건강하지 않은 모습으로 각인시키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고 싶지 않고 그러지 않기로 사이가 좋은 시간엔 늘 다짐 또 다짐한다. 하지만 막상 감정이 고조되고 나면 그 약속은 온데간데 찢겨 사라진다. 오은영의 영상들을 찾아보며 아이에게 미칠 나쁜 영향들은 이미 거의 모든 영상을 다 봤을 만큼 전문적인 지식과 행동양식을, 그리고 그 참담한 결과까지 모두 학습했지만 현실은 늘 가차 없이 삼엄한 살얼음판같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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