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프로이센의 루이제 울리케Luise Ulrike von Preußen는 스웨덴의 아돌프 프레데릭과 결혼해서 스웨덴의 왕비가 되었으며 스웨덴 식 이름인 로비사 울리카 Lovisa Ulrika라고 더 잘 알려져있습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스웨덴에서 매우 활발한 정치 활동을 했으며 심지어 남편인 스웨덴의 국왕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치 활동을 했었습니다. 이렇게 할수 있었던 것은 로비사 울리카의 성장 배경이 한몫하고 있습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프로이센의 공주이자 영국 국왕의 외손녀였습니다. 아버지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였고 오빠는 "대왕"이라고 알려지게 되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였습니다. 또 외할아버지는 영국의 조지 1세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가족의 연결 고리는 로비사 울리카가 스웨덴의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할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로 스웨덴 내의 상황에 대해서 외부적으로 로비사 울리카를 지지해줄 세력이 존재했었던 것입니다.
로비사 울리카가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던 가장 큰 이유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대 스웨덴은 다른 유럽 대륙의 국가들과 달리 왕권은 약해져있었으며 대신 신권이 더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왕권이 약화되기 시작한 것은 울리카 엘레오노라 여왕이 왕위를 얻으려 했던 시점부터였습니다. 팔츠-츠바이브뤼켄 가문 출신의 마지막 스웨덴 군주였던 울리카 엘레오노라 여왕은 오빠인 칼 12세의 확고한 왕위계승자가 아니었습니다. 울리카 엘레오노라 외에도 울리카 엘레오노라의 조카였던 홀슈타인-고토로프 공작이나 친척이었던 팔츠-츠바이크브뤼켄 공작이 역시 왕위계승후보자들이었습니다. 이때문에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왕위를 얻기 위해서 신하들에게 국왕을 선택할수 있는 권리를 주었으며 이것은 당연히 신하들이 국왕의 세력보다 더 강력해지는 바탕이 됩니다. 게다가 울리카 엘레오노라와 그녀의 남편인 프레드릭이 후계자가 없었기에 다시 신하들이 스웨덴의 왕위계승자를 선택하게 되면서 더욱더 왕권은 약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런때 선출된 인물이 바로 로비사 울리카의 남편이었던 아돌프 프레드릭이었습니다. 당연히 아돌프 프레드릭은 신하들의 눈치를 볼수 밖에 없었는데 당대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절대 왕정을 추구하고 있었으며 군주의 말이 절대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은 프로이센에서도 마찬가지였었는데, 이런 프로이센의 궁정에서 자란 로비사 울리카는 남편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며 이것이 그녀가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오래도록 스웨덴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상황은 도리어 가족간의 불화를 빚게 만듭니다. 특히 며느리인 소피아 마그달레나 왕비와의 마찰은 심했으며 또다른 며느리인 헤드빅 엘리자벳역시 로비사 울리카와 그다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로비사 울리카가 며느리들을 못마땅하게 여긴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정치적 이유때문이었습니다. 로비사 울리카가 원하던 며느리감은 다른 여성이었지만 정치적 이유로 덴마크 공주나 홀슈타인-고토로프 출신 가문의 며느리들을 맞이해야했습니다. 결국 로비사 울리카는 아들들의 결혼마저 자신의 뜻이 아닌 신하들의 뜻을 따라야한다는 것에 불만을 품게 되었으며 이런 불만은 며느리들에 대해서 냉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손자인 구스타브 4세 아돌프가 태어날때 상황에서 잘 드러나게 됩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오래도록 생기지 않다가 처음으로 얻은 손자의 출생에 대해서 기뻐하는 감정보다는 의심부터하는데, 이런 상황은 단순히 며느리가 못마땅해서 부정을 의심한 것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이유가 더 강해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아들인 구스타브 3세와 로비사 울리카가 크게 반목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친정인 프로이센이나 다른 유럽의 여러 국가들처럼 스웨덴도 국왕이 통치하고 나라를 경영해야한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로비사 울리카는 남편이 통치자로 스웨덴을 다스리길 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웨덴 상황은 그렇지 못했으며 로비사 울리카의 남편은 의회에 의해서 선출되었기에 의회의 눈치를 볼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로비사 울리카는 "나약한 남편"을 대신해서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했었습니다. 로비사 울리카는 결국 자신의 뜻을 이루지는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인 구스타브 3세가 의회에 대해서 쿠데타를 일으켜서 권력을 뺏은 것은 결국 로비사 울리카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것입니다.
로비사 울리카의 적극적인 정치 활동은 당대는 물론 오래도록 사실 그리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았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남편인 국왕이 수긍한 사항에 대해서 로비사 울리카가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것입니다. 하지만 로비사 울리카 입장에서는 나약한 남편을 받쳐주기 위해서 자신이 나설수 밖에 없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이야기에서는 로비사 울리카가 왜 저런 선택을 할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그녀의 삶을 따라가면서 살펴볼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