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부여행
사무실 책상에 앉아 달력을 들춰봤다.
1년은 52주다. 토일 쉰다고 했을 때 1년 중 104일은 기본으로 쉰다. 거기다가 11개 이상의 연차와 10개 이상의 공휴일까지 더한다면 1년에 1/3은 쉴 수 있는 것이다. 체감상으로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지만 이론상으론 그렇기에 회사에 안가는 휴일만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했다. 이번 주말은 남편이 예전부터 가고 싶어한 한탄강주상절리길을 가기로 했다.
비둘기낭폭포를 네비에 찍고 출발했다. 그런데! 내부순환로를 타야하는데 길을 한번 놓쳐서 그만 강변북로를 따라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성수 방향으로 향하게 되었다. 토요일 오전 꼼짝없이 멋진 한강 풍경만 바라보게 생긴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갔다. 그리고 성수에서 나와 월곡ic쪽으로 향하는데 월곡 ic 앞이 어찌나 막히는지… 집에서 출발한지 1시간이 넘어가는데 여전히 서울을 벗어나지도 못했고, 네이게이션의 시간은 계속해서 늘어나 아직도 도착하려면 2시간이나 더 달려야 한다고 했다. 아침도 제대로 안먹고 출발한터라 배는 고프고 계속 나아가는데도 도착 예정시간은 줄어들기는 커녕 늘어나니 짜증이 났다. 토요일 오전이 가장 행복한 시간에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이 고생을 왜 해야한담?! 결국 남편과 집에 돌아가기로 하고 차를 돌렸다. 근데 다시 집까지 네비에 찍힌 시간은 1시간. 너무 배고파서 밥이라도 먹고 가자는 얘기가 나왔고, 밥도 먹고 원래 보고 싶어했던 오펜하이머도 볼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미아 cgv로 네비를 찍었다.
출발한지 10분만에 영화관에 도착했다. 영화시간을 찾아보지 않고 무작정 온 건데 표를 사려고 보니 바로 5분 뒤 영화 시작! 그래서 핫도그랑 음료 하나씩 사서 바로 영화보러 들어갔다. 나이스 타이밍~!
영화 러닝타임은 3시간이 넘었다. 워낙 지쳐있었던 터인지, 영화가 재밌던 것인지, 영화가 다 끝나고 나오는데 더 자세한 뒷얘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일어서는 것이 아쉬웠다.
여기까지 왔는데 영화만 보고 집에 가는 것이 아쉬워 지도어플을 켰다. 가까운 거리에 정릉이 있었다. 요즘 평일 점심시간에 선릉 산책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는 터라 정릉은 어떨지 궁금했다. 남편을 꼬셔 정릉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정릉은 선릉과 다르게 동네 아주 깊숙한 곳에 숨어있었다. 이런 좁은 골목 속에 숲과 무덤이 숨어있단 말이야?! 싶은데 바로 그곳에 매표소가 나온다. 주차는 매표소 앞에 사선으로 차를 세울 수 있게 해두었다. 칸이 많지 않았는데 토요일 오후인데도 차 세울 수 있는 칸이 꽤 남아 있었다. 차를 세우고 입장표를 사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남편과 같이 감탄을 했다. 시원한 바람, 높고 울창한 나무에 한순간에 도시를 벗어나 숲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사람도 많지 않았다. 있는 사람들도 그저 조용히 자그만한 자갈 밟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산책하고 풍경을 구경할 뿐이었다.
우리는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재실과 정릉을 구경했다.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했다. 무엇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나설명이 없더라도 그 공간이 정말 멋진 공간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남편과 나는 연신 여기 정말 좋다를 외쳤다.
정릉을 구경한 뒤 본격 정릉응 한바퀴 도는 산책에 돌입하였다. 정릉의 산책길은 두가지 길로 나뉘는데 우린 보다 긴 코스를 걸었다. 작은 등산로 같았다. 꽤 오르막을 올라야했고 숲도 정말 컷다. 또 선릉과 다르게 길 옆으로 작은 계곡도 흘러 공원이라기 보다는 정말 작은 산같았다. 집 근처에 정릉이 있다면 최소한 일즈일에 한번은 와서 산책을 할 것 같았다. 실제로 정릉 안에는 동네 주민들이 대부분인 것 같았다.
늦은 오후에 온터라 낮고 길게 내려앉는 노란 햇살이 참 좋았다. 아무 말 없이 걷기도 하고 방금 본 영화 얘기를 나누기도 하며 걸었다. 여행지를 바꾸길 참 잘했다고 둘다 만족했다. 다음여행지로 바로 한탄강을 또 시도하지 말고 반대편으로 가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차가 덜 막혀 금방 왔다. 치킨과 맥주를 사들고 돌아와 예능을 보며 나름의 여독을 풀었다.
세상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생은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어도 즐거운 하루였다.
end